깜보네 / 공월천
우리가 외가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결혼식은 끝이 나고 뒤풀이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어머니는 꼭두새벽부터 서둘렀건만 결혼식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듯 유월 땡볕 아래 십 리 길을 걸어온 어린 딸을 외갓집 대청마루에 앉혀 놓고는 옆집으로 가 버렸다. 그곳에는 대낮부터 얼큰하게 취하여 목소리 톤이 한껏 높아진 하객들이 멍석 위에 앉아 웃고 떠들며 잔치판을 벌이고 있었다. 유월의 모란꽃잎처럼 피곤했던 나는 어머니를 따라붙일 힘이 없었다.
여남은 채의 초가집이 모여 사는 외가 동네는 그 시절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라 꽤 오지였다. 돌배기 키 높이도 채 안 되는 토담을 사이에 둔 옆집 깜보네 딸들과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친자매처럼 지내는 사이여서 그집 선반 위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인지조차 알고 있었다. 그 깜보네 셋째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다.
그날 새벽 어머니는 곤하게 잠든 나를 서둘러 깨워 단장을 시켰다. 꾸벅꾸벅 조는 나를 앞에 앉히시고 머리카락을 솜씨 좋게 양쪽으로 갈라 꽈배기처럼 꼬아 핀으로 고정시키고 하얀 바탕에 딸기 무늬가 있는 ‘간다호크’라 부르던 원피스를 입히셨다. 간다호크가 일본 말인지 그데 올바른 발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옷을 입을 때가 참 좋았다. 뒤로 끈을 살짝 당겨 리본 모양으로 묶고 나면 나는 늘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딴엔 그 옷에 어울리는 품위 있는 표정이라 생각해서였다. 남동생을 업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시내 합승 정류장까지 갔을 대 그제야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 왔다. 열 명도 안 되는 승객을 싣고 흥해 읍내에 도착했을 때 마침 장날이었는지 장터엔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인산인해에 어리둥절해 할 틈도 없이 십 리 길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그곳이 종점이었고, 외가인 ‘봉님이’까지는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굽이굽이 손길은 어찌 그리 멀던지, 유월 햇살은 보드라운 나의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소나무 아래서 동생에게 젖을 물릴 때를 빼고는 쉬다가 가자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걸 보아 어머니 마음이 몹시 바쁜가 보았다. 제법 자라 넝쿨이 진 콩잎들이 새들새들 말라 몹시 목말라 보이는 들판이었다.
잠이 왔다. 왁자지껄하던 사람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사람 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와 잠결인지 꿈결인지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소리 나는 쪽으로 가 보니 옆집 잔치집에서 난리가 났다. 멍석 위의 소반들이 내동댕이쳐지고 주전자가 찌그러져 있었다. 고함소리와 부추기는 소리, 뜯어말리는 소리로 그 곳은 잔치집이 아니고 난장판이었다. 술 취한 하객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은 승복을 잘 갖추어 입은 스님이었다. 어찌나 입이 걸고 힘이 세던지 넘어진 사람 배 위에 턱 걸터앉어 주먹으로 내리치는 본새가 영락없는 싸움꾼이었다.
스님이 저렇게 술을 잘 마시고 저렇게나 싸움을 잘하는 사람인줄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어른이 되더라도 절대 스님한테 시비 거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내가 다시 외가에 간 것은 깜보네 셋째 딸 결혼식이 있은 다음해 외할머니 병이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였다. 어머니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깜보네 큰딸이 친정에 왔다. 인근 마을에 살아서 자주 들락거리는 눈치였다.
저녁상을 물린 후 먼 길을 걸어와 피곤하기도 했지만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자꾸 잠을 재촉했다. 꿈속에서 호롱불 심지의 불꽃이 파랬다 붉었다 마녀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심한 요의를 느껴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차마 어머니한테 변소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직나직하고 은밀하게 들려오는 어머니와 깜보네 큰딸의 이야기 소리 때문이었다.
“그때가 언제고?”
“내가 시집가기 전이니까 몇 년 되었제?”
“그 얼라가 너거 아부지 씨가 아닌 거를 니가 우예 알았노?”
“보면 모리나? 울 아부지 병든 지가 어디 한두 해 되었나? 남자 구실 몬 한데이. 그 아제가 우리 집에 하도 들락거리니께 동네에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카더라. 남사시럽다.”
“그라믄 그 스님 얼라라 말이가? 이이고 낯짝도 두껍다. 얼라는 우쨌노?”
“그 아를 내가 안 받았나. 엄마한테 닦달하이까네 그 아제 아라 카더라. 엄마를 쥐어뜯을 수도 없고 기가 딱 차더라. 암만 생각해도 안 되겠더라. 나오자 말자 보자기로 덮어 뿌렸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녁을 너무 먹었는지 아침에 탔던 차 때문에 그때서야 멀미가 나는지 자꾸 속이 매슥거리며 토하고 싶었지만 잠이 깬 기척을 할 수가 없었다.
“야야! 우얄라꼬 그랬노?”
은근히 재촉하는 듯한 어머니의 물음에 깜보네 딸은 더 낮아지고 더 음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양철 다라이에 죽은 얼라를 담아 가지고 삽을 들고 그 밤에 건넛산에 갔지 뭐.”
“아이고 세상에! 어둡지는 않더나?”
“열나흘 밤이라 천지사방이 훠언하데. 조막만한 거 하나 묻는데 땅 많이 팔거 뭐 있노? 대충 파 놓고 보자기 벗기니까 얼라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 거 같더라. 얼매나 놀랬는지. 등에 식은땀이 주룩 흐르더라. 얼라 묻고 빈 다라이 이고 오는데 와 그리 무겁던지. 머리도 천근만근, 다리도 천근만근. 이거는 아무도 모린다. 사람들은 엄마가 노산이라 죽은 얼라 놓은 줄 안다.”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절대로 깨어나서는 안 될 것처럼 인상을 쓰면서 눈을 꼭꼭 감느라 눈 주위가 뻐근했다. 갓난아기의 까만 눈 두 개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느라 으스스 몸이 떨렸다. 외삼촌이 초저녁 내내 군불을 지폈을 만도 한데 자꾸 추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이후는 애 기억에 없다. 혼이 달아나 까무러쳐서 잠들었는지 이불에 지도를 그렸는지 말았는지…….
그 후, 나는 제법 자라 사춘기가 끝날 때까지도 자주 가위에 눌리곤 했었는데, 다 그놈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꿈속에서 반들거리는 눈동자 두 개가 천장에 붙어 조금씩 내려와 반듯하게 누워 있는 내 코앞까지 왔을 때 나는 그 천장을 밀어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아무리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천장은 점점 내게 더 가까이 내려오고 눈동자 두 개는 시퍼렇게 빛을 내며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해 그것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옷은 언제나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그런 후면 나는 며칠을 앓곤 했다. 어쩌다 학용품을 사고 남은 돈을 어머니한테 돌려주지 않고 달걀 아이스케이크라도 하나 사 먹는 날엔 밤새 눈동자 두 개가 시뻘겋게 불을 뿜으며 나를 쫓아다니는 꿈에 시달려야 했다.
몇 해 전 어머니한테 지나가는 말로 슬쩍 깜보네 소식을 물어보았다. 할머니라 부르기엔 너무 젊다 싶어서 한 번도 할머니라 부르지 못했던 외가 옆 집 할머니의 이름은 진짜로 깜보라고 했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의 막내로 태어나 까만 피부 탓에 이름이 깜보라 불리자 무지한 그녀의 아버지는 호적에 그냥 ‘깜보’ 라고 올렸다고 한다.
깜보네는 열여섯 어린 나이에 논밭 몇 마지기 친정에 떼어 주는 조건으로 마흔이 다 되어 가는 홀아비한테 대를 이어 주기 위해 재취로 시집을 왔다. 연년생으로 내리 딸을 셋이나 낳고 결국엔 아들을 낳았지만 오냐오냐 키운 통에 개망나니로 자라 열일곱, 열여덟 살에 벌써 노름판에서 재산을 다 탕진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친구인 큰딸 역시 중풍으로 수족을 못 쓰다가 얼마 전 세상을 등졌다. 나는 그 갓난이의 눈동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내가 크게 죄를 짓지 못하고 장년의 세월까지 그럭저럭 살아온 건 아마 그 눈동자 두 개가 나를 감시하며 따라다녔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내 안에 고스란히 존재한다는 걸 나는 지금도 느끼고 있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아침술 / 백정혜 (0) | 2011.09.10 |
---|---|
[좋은수필]구름이 가고 있는 곳 / 김시헌 (0) | 2011.09.09 |
[좋은수필]축하하네 / 이향아 (0) | 2011.09.07 |
[좋은수필]벌초(伐草) 단상(斷想) / 이태호 (0) | 2011.09.06 |
[좋은수필]술꾼, 글꾼 / 노정숙 (0) | 201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