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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분심(分心) / 정여송

분심(分心) / 정여송

 

 

 

더러 재력 있는 사람이 운명하면 시끄러운 집안이 있다. 재산 이권 문제로 형제간에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시신 앞에서 빼앗고, 빼앗기고, 자르고, 나누는 활극이 벌어진다. 용광로의 불같은 소유욕이 아귀다툼으로 변한다. 그때는 이미 형제가 아니다. 적이 되어 맞선다.

그런 일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속에서 불쑥 솟아오르지 않는다.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 이야기로, 책으로,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 알려진다.

이웃에서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차라리 나눠 가질 것이 없으면 생겨나지도 않을 일이다. 가난한 집안일수록 형제들의 정이 돈독한 것도 알고 보면 이유가 있다. 가지려는 힘보다 서로 주어야 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들이 많고 강해서이다. 남에게 빌리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이라고 하는 예삿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는 얘기도 된다.

예전과 달리 지금의 법은 형제간의 서열이 없다. 맏형이나 동생이나 아들이나 딸을 구분 없이 동등한 위치에 세워놓았다. 해서 다툼이 일어날 소지가 더 많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런 사고로 운명할 땐 더 큰 회오리가 분다, 다만 살아생전에 몫을 나누어 분배하면 천만다행으로 형제애를 나누며 살아가기도 한다.

상식적인 도덕윤리와 인정 체계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버젓이 일어난다. 옛날처럼 자연스럽고 정겹게 되기는 어려운 제상으로 바뀌어 간다. 변화하는 세월 속에서 사람들의 욕구는 점점 비대해지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접근과 시도만은 열심이다.

사람들은 소유하는 데 많은 것을 건다. 소유라는 게 무엇일까. 자기가 갖고자 하는 바를 수중에 넣는 것, 그 힘을 일방적으로 행사하고 지배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주는 우월감 때문에 사람들은 ‘갖는다’는 것에 목을 매듯 연연한다. 편하고 너그럽고 아름다운 것의 요체가 무소유라 하여도 소유만큼은 못되나 보다. 하긴 무소유의 매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마는, 갖고자 하는 욕망 이상으로 버리는 행위가 어렵다는 점을 먼저 알기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여전히 소유 쪽에 집착한다.

돌아가신 지가 20년이 넘는 마당에 친정 아버지 소유의 조그마한 땅이 불거져 나왔다. 그 땅은 이미 오빠의 땅 안에 포함된 일부인데 공교롭게도 서류상 이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친정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자투리땅도 한푼의 돈도 없다. 그래서 가끔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게 여기기도 했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지 않으니 그냥 잠깐 해보는 망상일 따름이었는데… 우연히 굴러든 땅에 대한 욕심이 자꾸만 싹을 키운다.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그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아예 머릿속에 들어앉아 꼬드기지 않는가. 그 꼬드김에 솔깃하여 어렵잖게 속아 넘어간다.

고통과 눈물은 커다란 무엇으로 변하여 기쁨과 행복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곤란함을 뛰어넘고, 괴로움을 거치지 않는 환희가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테 밖에 있어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 테 안으로 들어와 횡재가 되어 준다면 밀어낼 사람 누구일까.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 흔한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어찌 넉넉함에 비하리.

달콤하게 부풀린 말들이 바람소리에 섞여 다가와 귓바퀴를 툭툭 친다. 기회를 엿본 눈이 점점 크게 뜨인다. 비굴한 희망이 뱀 머리처럼 기어오른다. 딸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말을 만든다. 그 땅을 펼쳐보며 맛난 음식을 앞에 둔 식도락가의 게걸스런 눈빛을 닮는다. 숫처녀를 넘보는 호색가의 느물스런 눈빛도 가진다. 자부심은 프리미엄까지 얻은 것처럼 소용도 없는 곁가지를 친다. 내 안에 찾아든 바르지 못한 심보와 그렇게 타협을 하고 있다.

언감생심이다. 평소에 받은 오빠의 고마움을 기억하며 생각을 고친다. 꿈속의 일이라고, 내 자리는 언제나 객석이 아니었냐고, 없었던 일이라고, 잊어버리자고 다짐을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잊혀지지도 않고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가. 이상야릇한 욕심의 촉수. 한바탕 파랑을 일으켜 나를 얼룩지게 하는 고약한 분심의 형체. 그것이 나를 그림자처럼 물고늘어진다. 그럴수록 냉정해져야 하는 건 알지만, 바른 나를 찾으려 애를 써야 하는 건 알지만 왜 그것이 잘 안되는지 모르겠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던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다. 분심에서 스스로 벗어난다. 몰아내고 쓸어내어 비워놓으면 그 자리에 평정이 찾아들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머리를 흔들어 턴다.

나는 주고받음에 에누리 없는 오빠의 정확한 경우를 때로 차갑게 여겼다. 오빠에게서 아버지를 찾으려는 안간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묘한 섭섭함도 누르지 못했다. 돌이켜 본다. 오빠의 그것은 나의 정신을 바르게 해 주는 거멀못이었고, 휘청거릴 때 잡을 수 있는 지지대였다. 무르고 여린 성품 속에 강인함의 싹을 틔워 준 자양분이었다.

그 동안 나를 괴롭힌 분심을 노려본다. 분심은 버리지 못하는 미련의 소산이다. 계략에 걸려들게 하는 올가미다. 결국에는 파도가 왕성하게 밀려와서 남긴 한낱 힘없는 거품이다. 잘못된 습관만큼이나 고약한 분심을 외면하고자 촛불을 켠다.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흔적을 없애고자 묵주를 손에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