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수목원을 읽다 / 윤승원
봄, 수목원은 만연체다. 온갖 나무와 풀들이 저마다 화려한 문장을 쓰느라 술렁거린다. 노랗고 빨갛고 흰 색깔들이 나의 독서를 유혹한다. 나는 청명의 안개 속을 걸어 만화방창 꽃의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병아리 깃털 같은 햇살이 민들레처럼 피어나는 낮 시간도 좋고, 청자 빛 하늘이 노을로 채색되는 저녁 무렵도 좋지만 나는 푸르스름한 이내가 깔린 여명의 수목원을 좋아한다.
제비꽃, 족두리풀, 목련, 명자꽃들이 새 명찰을 달고 제 이름을 불러달라는 듯 손을 흔들고 서있다. 문고판 같은 야생화며 전집류의 나무들이 수목원도서관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이 푸른 도서관의 사서는 잠시 출타중인 모양이다. 바람이 먼저 책을 읽으려는지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는 서둘러 달려온 마음을 옆에 내려놓고 형형색색으로 단장된 신간들을 골라 읽는다. 사춘기 때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앉아 있던 생각이 나서 설핏 웃음이 난다. 깨알 같은 글씨들을 놓치지 않으려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굽혔다 발뒤꿈치를 들었다하면 그 때마다 나무와 풀꽃들이 내 불편을 덜어주려 같이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폈다 키를 낮추어준다.
제자백가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이만큼이나 할까. 초신성처럼 노란별을 마구 터트리는 생강나무, 자주색 튀밥을 펑튀기처럼 튀겨내는 박태기나무, 개 불알을 덜렁덜렁 매달고 있는 개불알꽃, 초롱모양의 귀걸이를 흔들고 있는 히어리. 나는 꽃과 나무가 전하는 휘황찬란한 문장에 주-욱, 밑줄을 긋는다. 문장들은 내 마음의 텃밭에 새겨진다. 꽃의 문장은 화려하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형이상학적이지만 난해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무량한 깊이를 가진다.
꽃의 문장은 넉 장이다가 다섯 장이다가 홑받침이다가 더러는 겹받침이다가 변화무쌍하다. 꽃들의 배색은 어떤 단청보다 곱고 정겹다. 어느 채색가나 디자이너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다. 현호색은 보라의 농담(濃淡)이 아름답고 꿩의 바람꽃은 흰색과 노랑의 어우러짐이 다정하고, 깽깽이풀은 금방이라도 여우울음소리를 낼 것 같다. 꽃을 꺼내는 줄기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꽃받침과 꽃잎의 황금비율의 기울기 등은 인위적인 힘으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없는 천연의 아름다움이다.
야생화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동물원처럼 야생의 식물을 가두어둔 것에 대해 내심 못마땅해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렇게나마 꽃을 가까이 두고서야 각박한 현실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을 바라볼 때의 마음엔 악이 없다. 사람들은 꽃을 보는 순간 선해지고 샘물처럼 맑아지게 된다. 잠시 꽃을 바라보면서 세파에 찌든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꽃들은 피어날 때를 알고 져야할 때를 제대로 지킨다.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한다. 명예와 부에 집착하지 않고 시들어 사라지는 것에 애달파하지 않으며 타자와 더불어 대동(大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가지면 더 가지려하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만을 고집하며 주변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한낱 풀과 나무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 사람이다. 그러니 꽃과 나무들은 우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책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수목원에 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삶의 고비를 넘어오느라 받은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 받는 것이다. 추위와 강풍을 인내한 꽃들이 피워 올리는 환희의 시간들을 보면서 내 삶의 고단들도 어느 순간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저 풀과 나무처럼 매순간마다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내가 나를 반성하는 때도 바로 이곳 수목원에서이다.
혹, 도연명의 도원기(桃園記)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기가 아닐까? 나는 고기잡이가 되어 길을 잃고 여기 수목원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도 가도 온통 꽃으로 덮여있는 화원의 심연. 꽃잎은 푸른 잔디 위에 펄펄 눈처럼 날아 내리고 나는 그만 속세에서 실종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꽃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꽃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이제 꽃과 합일하여 한 몸이 된다.
다산(茶山)은 죽란시사(竹欄詩社)를 만들어 친구들과 함께 시를 나누었다고 한다. 조선조 책벌레인 이덕무는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자신의 방을 소완정(素玩停)이라 불렀다. 풀벌레며 새들의 죽란시사에 귀를 귀울여본다. 꽃책으로 울타리를 삼은 이곳을 가만히 나의 소완정이라 불러보기도 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라 했다. 무릇 글씨에서는 향기가 있어야 하고 서책에서는 기(氣)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다. 벌, 나비며 햇살과 바람, 사람까지 찾아들게 하는 꽃들이야말로 자연이 쓴 최고의 금석문이 아닐까?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꽃잎 끝에 매달려 있던 이슬 꽃들이 반짝 마지막 문장을 남기며 사라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살다가는 꽃. 생과 사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저 촌철살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묘미 때문에 나는 여명의 수목원을 즐겨 찾아오는 것이다.
봄, 수목원은 싱그럽고 향기로운 도서관이다. 저마다 제 몸 속의 붓을 꺼내 혼신의 힘으로 일필휘지하는 꽃과 나무들. 나의 독서는 초록의 묵향에 흠뻑 물이 들었다. 나는 무슨 문장으로 이 봄을 기록할까? 수목원을 걸어 나오는, 오늘은 내 몸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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