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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돌매화 / 박월수

돌매화 / 박월수

 

 

나는 어릴 때 동그란 양철통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좋아했다. 가마니에 벼를 옮겨 담을 때 사용하던 한 말들이 양철통은 농사철에는 꽤 쓰임새가 많았다. 애면글면 기다리다가 말 통의 용도가 끝나기 무섭게 동그랗게 몸을 말아 그 속에 들어가곤 했다.

그 무렵의 나는 누더기를 걸친 나무통 속의 디오게네스를 알 리 없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원했던 그의 철학적 행동은 더더욱 나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단지 두꺼운 양철통 속에 폭 싸여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틈만 나면 그 속에 들어가 지냈다. 두 팔과 얼굴만 내 놓은 채 과자를 먹었고 혼자 이야기도 하면서 놀았다. 몇 해 동안 그 재미난 놀이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양철통 속이 비좁아진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갑자기 서글퍼졌다. 내 몸이 자꾸 커져서 통 속에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피터 팬 증후군’ 같은 걸 좀 일찍 앓았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양철통 속에 들어가는 일을 그만두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성적이 나쁘게 나온 날은 통 속에 들어가 오래도록 웅크리고 있기도 했으니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버릇은 여전했던 것 같다. 아이들은 별나게 크는 것이라 생각했던지 어른들도 나의 이상한 행동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자라기 싫었던 철없을 적 소망 때문이었을까. 내 키는 무던히도 마디게 자라더니 이른 시기에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어릴 때도 그랬지만 여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두 번째 줄에 서 본 기억이 없다. 그 무렵 어머니는 부쩍 내 키에 관심이 많아지신 듯했다. 교복을 입고 대문을 나서는 내 등 뒤에서 “제발 한 주먹만이라도 더 자라면 좋을 텐데.”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때 나는 속으로 그랬던 것 같다.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요.’

 

나는 키 작은 꽃들을 유난히 좋아했지만 작은 것이 다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입사면접에서나 맞선 자리에서 항상 불이익을 당하는 쪽은 키 작은 나였다. 최선을 다해 치른 서류심사에서 어렵게 합격하고 나면 늘 면접에서 키 때문에 좌절하고는 했다. 더구나 맞선 자리에서 내 키에 대해 묻는 남자를 만났을 땐 갑자기 땅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점점 주눅이 들어가고 있을 즈음 그를 만났다. 이미 혼기가 꽉 찬 나이에 ‘비록 작지만 사랑스럽다.’ 고 말해주는 그 남자로 인해 결혼도 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모퉁이 곳곳에서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경험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내게도 여유시간이란 게 주어졌다. 오래도록 벼르던 카메라를 장만하고 좋아하는 작은 꽃들을 찍으러 다녔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나무를 알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다 자란 키가 한 치도 되지 않는 이 나무는 우리나리에선 유일하게 한라산 정상에서만 볼 수 있다. 바위틈에서 피는 꽃이 매화를 닮아 돌매화(巖梅)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주로 백록담 화구벽에 붙어서 자라는 돌매화 나무는 제가 살아남는 법을 안다. 기후변화가 심한 한라산 꼭대기의 거센 바람 속에서 자신의 키를 키우려고 우쭐대지 않는다. 몸을 한껏 숙이고 땅으로 기는 줄기에 다닥다닥 가지를 모을 줄도 안다. 그 위를 빽빽하게 잎으로 덮는데 두꺼운 잎은 마치 짐승의 가죽 같은 질감을 가졌다. 저를 지키기 위해 한 군데서 뭉쳐나는 돌매화는 초여름부터 순백의 꽃을 피운다. 종 모양처럼 생긴 다섯 장 꽃잎을 다 모아도 어른 엄지손톱 크기만 하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한꺼번에 붉은 꽃대를 밀어 올리며 하얗게 웃는다. 사람 손마디 하나 크기의 작은 나무에서 눈부시게 피어 나는 꽃의 아름다움에 끌리고부터 나는 키 작은 것에 대한 울분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단 한 번 짧게 경험했을 뿐이지만 한라산의 추위와 바람을 나는 안다. 몇 해 전 초가을 무렵 한라산 영실코스로 산행을 한 일이 있었다. 해발 천육백 고지 가재 바위쯤에서 산 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는 운무를 만났다. 처음 보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져 셔터를 누르는 건 잠시였다. 볼이 차갑고 손이 시리더니 온 몸이 얼붙는 듯 굳어왔다. 구상나무 숲 지대에서 겨우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윗세오름 초입에는 눈보라로 하여 대피소를 지척에 두고도 찾지 못해 동사한 사람들의 비(碑)가 있다. 한라산은 그런 곳이다. 산 아래엔 꽃이 피었는데도 정상 부근엔 상고대가 가득 맺혀 있어 사계절이 공존하는 곳, 그곳 최고봉에서 살아남아 우아하게 꽃피우는 키 작은 돌매화. 어떤 이가 그토록 사랑스런 나무에 빠지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벗어 던진 건 아니다. 하지만 극한의 기후를 견뎌내고 험준한 바위틈에서도 꽃피우고 열매 맺는 돌매화를 알게 되면서 내가 가진 겉모습에 대한 편견은 많이 줄어들었다.

모든 생명은 필요해서 그 자리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돌매화 나무가 그러하듯 어떤 상황에서든 성의를 다해 익숙해지려 애쓰다보면 그 모습이 곧 눈에 띄는 아름다움으로 빛나게 되리란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