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목 / 안경덕
우리 집 뜰에는 커다란 태산목 한 그루가 있다. 서른 해란 긴 세월만큼 들차다. 집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약도를 말할 때도 태산목이 있는 집이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태산목은 목련과이고 원산지는 북아메리카이다. 우리나라에는 남부 이남에만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상록 교목으로 사찰 중에도 겨울에 잎이 더 짙푸르고 무성하다. 엄동설한에도 움츠림 없이 당당하다. 의연함을 잃지 않아 생명력이 넘친다. 조락의 계절에는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여름에는 이파리에 뚝뚝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더위를 한 걸음 물러가게 하는 듯하다. 푸른 하늘이 잎사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고, 봄바람과 살랑살랑 놀고 있는 이파리가 보기 좋다.
오월부터 몇 달간 가지 끝에 새순을 틔워 꽃이 피고 진다. 목련꽃을 닮았다. 꽃은 목련보다 더 크고 향기 또한 짙다. 이파리 위에 나부시 얹혀 있다. 하얀 꽃송이는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을 연상케 한다. 진한 향이 독특하다. 탐스러운 꽃잎이 한 겹씩 보태는 과정이 배추가 속을 채워 가는 것과 흡사하다. 노란 속잎이 터져 나오면 배추의 겉잎은 누렇게 떡잎이 진다. 그것은 마치 자식을 위해 다 내어주고 늙어가는 어버이의 사랑 같다. 그처럼 태산목도 꽃을 피울 때 이파리는 누릇누릇해져 떨어진다.
혹한에도 끄떡없이 청정하고 늠름하던 기상은 어디로 가고, 가녀린 풀 한 포기도 푸름이 절정일 때 낙엽이 진다. 심한 몸살을 앓는 것처럼 보인다. 당찬 덩치 갑을 못하는 것 같기도, 계절을 역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 태산목의 흠은 그것이다.
태산목 이파리의 앞면은 짙푸른 색에 윤기가 흐르고 뒷면은 약간 갈색을 띤다. 두텁고 뻣뻣하면서 큼직하다. 비를 머금고 달빛을 머금고 있어서 더 클 것이다. 비가 잦은 계절에 네댓 달이 넘도록 이파리가 시나브로 떨어진다. 긴 장마 내내 젖은 낙엽을 치워야 하는 게 곤혹스럽다. 낙엽수와 달라 이파리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도 알 수다 없다. 일부의 이파리만 낙엽이 되므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이 보이지 않을 때 가을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앞집에서는 떨어진 이파리가 하수구를 막는다며 낙엽을 비닐봉지에 담아 담 너머 우리 마당에 툭 던져 놓는다. 또 나뭇가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음도 싫다고 한다. 그럴 때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이내 그윽한 꽃 향취에 젖고 만다. 앞집에서도 아침마다 잠을 깨워주는 꽃향기는 아마 마다하지 않을 성싶다.
남편은 이웃 간의 불편함을 모른 척 할 수 없는 모양이다. 태산목을 아주 많이 잘라야겠다며 걱정을 한다. 이런 사정을 알았던지 며칠 전 조경사가 때마침 찾아왔다. 어쩐지 해결사로 보였다. 키 큰 태산목을 팍팍 잘라내되 보기 좋게 다듬어 준다고 했다. 그러는 데는 인건비가 썩 비싸다고 하였다. 나무가 있어 그만한 애로를 겪어야 하니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나보다.
이런 저런 갈등이 많다. 딸아이와 아들은 자연 그대로가 보기 좋다고 한다. 나도 뭉텅 자르는 것은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사람도 이발을 해야 깔끔한 것처럼, 돈이 들어야 태산목이 제 인물을 찾을 것 같기는 하다. 헌집의 분위기도 한결 밝아지지 않을까.
어느 공원에 태산목이 유난히 많았다. 너른 공간만큼, 이름에 맞게 높은 키를 자랑하였다. 그 태산목들은 잎을 떨친다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이고, 잘릴까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무도 제 자리를 만나기에 따라 재덥을 받는 것도 돋보이는 것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무 이름을 보더라도 태산목은 한껏 클 수 있는 조건이면 더 좋을 것이다.
우리 집 태산목은 식구들과 앞집 사람의 마음을 읽었을까. 조금씩만 키를 키운다. 고개를 치켜들지도 못하고 양팔을 안으로 웅크리는지도 모르겠다. 숲 속에 제 집이라면 사정이 다를 게다. 원 없이 덩치를 불려 더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될 것인데. 내가 늘 바깥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태산목도 좁은 공간이 갑갑할 테다. 그래도 의젓하다. 태산목 앞에 서면 편안해진다. 나무는 나를, 나는 나무를 아끼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태산목은 내게 마음은 넓게 몸은 청청하라고 부추긴다. 태산목이 고맙기 그지없다.
원래 태산 하면 어감부터 무겁다. 어쩐지 버거운 대상이다. 태산이란 말은 주로 아주 큰 것을 비유할 때, 할 말이 많을 때, 걱정이 많을 때, 일이 많을 때 쓴다. 태산목을 들며 날며 보니까 그런 고정관념도 깨졌다. 그 정도로 내유외강(內柔外剛)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심란할 때마다 태산목에서 위안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된다. 등걸에 기대기도 하고, 두 팔을 벌려 나무의 기운을 받으면 마음이 싱그러워진다.
이른 아침 태산목 주변에서 포롱포롱 날아드는 새들이 하루를 상쾌하게 열어준다. 재재거리는 새소리로 태산목이 꽃을 피운다. 새소리에도 꽃향기가 담겨 있다. 큰 이파리에 스치는 바람도, 저 나무 위에 얹힌 달도 운치를 더해 준다.
태산목은 우리 집 가장의 무던한 모습 같다. 언제 보아도 미덥고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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