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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1

[좋은수필]칸나의 담장 / 김채영

칸나의 담장 / 김채영 

 

 

 

길을 가다가 담 너머로 눈을 맞추려 애쓰는 칸나를 본다. 울안에 여러 꽃들과 함께 심겨졌으련만 칸나꽃은 뿌리만 울안에 담그고 무료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 은근하게 곁눈질을 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새빨간 꽃잎을 보라. 영락없이 농염(濃艶)한 여인네의 입술이다. 칸나는 덩쿨 장미처럼 무모하게 담을 넘지는 않는다.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어 의식너머의 세상을 은밀하게 넘보다 몰래한 사랑에 저리 꽃잎이 애처롭게 고운가 보다. 한동안 내 안에 합류하지 못한 체 수없이 반란을 일으키던 사랑니도 저러했을까. 한철 불꽃처럼 피어 담장 밖을 수없이 넘겨보다 동면하는 칸나처럼 내 잇몸에는 사랑니의 뿌리가 있다.

지혜를 알만한 나이에 발육된다는 사랑니. 그러나 치아 중에 가장 늦게 나서 맨 먼저 뽑히는 게 사랑니의 서글픈 운명이다. 이가 올라올 적에 사랑의 열병처럼 아프다 하여 사랑니라고 불리었는지도 모른다.

사랑니가 나기 전 모든 치아들은 이미 자리를 잡혀있다. 비좁은 틈새로 눈치를 보며 뿌리를 내리기에 그것은 애초부터 화초 속에 잡초처럼 천덕꾸러기였는지 모른다. 설자리를 확보하지 못해 사랑니는 수없이 모반을 일으키다가 결국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인류가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거친 풀뿌리 같은 것을 주식으로 삼던 사람들이 불의 발견이후 익힌 음식을 먹게 되자 턱은 더 이상 발달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의 턱은 좁아지고 본시 44개였던 치아가 32개로 줄었지만 아직도 여분으로 남은 사랑니의 퇴화 과정이 도래(到來)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 때 어렵게 갖게 된 사랑니가 서른이 넘어서야 병이 났다. 치통을 산고의 고통에 비할 수 있겠냐만 여러 날 밤낮을 천장의 꽃무늬가 해체되어 내려앉는 듯 정신이 혼미했다.

이를 뽑으러 치과에 갔는데 마취가 쉽게 되지 않는 체질이라 여러 번의 주사가 소용이 없었다. 이앓이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의사의 만류에도 결국 생니를 빼는 위험한 선택을 해야 했다. 사랑니는 예상보다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지 긴 시간의 실랑이 끝에 뿌리가 도중에 절단되고 말았다. 의사도 긴장하고 나도 모든 기력을 소진(消盡)했다. 볼은 파랗게 멍이 들고 잇몸은 헝겊처럼 엉망으로 헤졌다. 며칠을 덧나서 치료하다가 사랑니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체 지금껏 잇몸 속에 묻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식별하게 힘들 정도로 조용히 잇몸인 척하고 매복되었다가 어느 날 불현듯 드러낼 수 없는 사랑처럼 애리하게 아파 오기도 한다.

'오는 사랑을 어찌 막으리' 근엄하기로 소문난 원로 수필가의 말씀이다. 제자들과의 담소에서 스캔들이니, 로맨스니 하며 중년의 사랑 얘기가 화제로 등장했다는 데 뜻밖인 그분의 말씀을 전해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선배님은 못생긴 남자하고는 커피 한잔도 마시기 싫다고 단호히 말했다. 세상일을 달관(達觀)했을 것 같은 은발이 성성한 연세에 나르시스 같은 이성상을 가슴에 묻고 사시는 듯해 그 정열이 어여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말씀을 생각할 때 왜 하필 붉은 칸나가 떠오르는 것인지. 32개의 치아 속에 아무 일 없듯 결속되어 있지만 불현듯 지근지근 잇몸을 쑤셔대며 일탈을 도모하는 사랑니도 칸나빛 같은 정열을 가졌나보다.

고야의 그림 '검은 상복을 입은 초상화'는 화려한 검은 레이스의 상복을 입은 여인이 슬픔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가에 서있다. 젊은 미망인의 암울한 표정 속에 비애 (悲哀)와 고뇌(苦惱 )가 담겨 있어 연민을 자아낸다.

동전의 양면은 다른 그림이듯이 검은 상복차림인 여인의 표정관리는 작품을 위한 하나의 장치임을 알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미망인이었지만 고야의 애인이기도 했다. 모델인 알바 공작부인의 손가락 끝에는 숨은 그림 찾기가 흥미롭게 살짝 노출되어 있었다. 그녀가 모래사장을 은근히 가르키며 서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반지 낀 그녀의 손가락을 보았지 달을 보지 못했으리라. 육안으로 설명되지 않는 희미한 그 글씨를 훗날 세인들의 호기심이 그대로 둘 리가 없었다. 엑스레이 촬영으로 판독(判讀)한 그 글씨는 '오직 고야 뿐'이라는 알바 부인의 대담한 고백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지 검은 상복 속에 미망인은 뜨거운 관능을 내밀( 內密)하게 숨기고 있었다. 담 너머로 시선을 던지는 칸나처럼, 매복된 사랑니처럼 그녀는 용의주도한 잠행(潛行)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운명처럼 사랑이 찾아온 적이 있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니 앓이 같은 애절한 사랑이 기억나지 않는다. 사랑니가 날 때나 뽑을 때처럼 온몸을 다 앓았던 그런 사랑이 있었다면 추억만으로 지금도 행복할까. 문득 오래 묻어두었던 사랑니를 뿌리를 뽑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할일 없이 고민해본다. 곰삭은 사랑니의 무덤을 파헤친다면 비밀이 없는 곳간처럼 허전할 것 같다.

이제 칸나가 뿌리만 남아 동면할 계절이다. 칸나가 보이지 않는 담장은 겨우내 쓸쓸할 것이다. 칸나는 도발적인 꽃빛과 그 많은 방황을 어떻게 숨기고 한겨울을 날까. 칸나가 싹틀 무렵 나는 잇몸을 간지럽히며 사랑니가 올라오는 상상에 다시 젖을지도 모른다. 사랑니의 조화, 어찌 감당하려고 그러는가. 변화는 항상 두려움과 기대감을 양립(兩立)하여 찾아오니 참으로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애당초 사랑니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한 게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