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마음의 절제 / 정인보

마음의 절제 / 정인보

 

 

 

 

 

세상에 제 일을 남이 알까봐서 능청스럽게 속이려는 무리가 많다. 남을 속이려 하는 그것이 벌써 제게 용납되지 못한 증거다. 철인이 별 사람이 아니다. 나 혼자만 아는 속에 부끄러울 것 없는 분이다.

이퇴계(李退溪) 선생이 젊었을 때 종로거리를 지나가다 관기(官妓) 한 패가 ‘보교바탕’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혼잣말로,

“이 마음이 나를 죽이는구나.”

하였다고 한다. 다른 말이 아니다. 저기를 보고 마음을 그리 끌리니 내가 나를 주장하지 못한 것이요, 잠깐이라도 내가 스스로 서지 못하게 되면 내가 없다, 내가 없어지도록 되고 보면 죽은 이나 다르지 아니하므로, 이 마음이 나를 죽인다고까지 한 것이다. 철인일수록 작은 외유(外誘)에 대하여서도 큰 도적같이 보이는 법이다.

남이 모르고 나 혼자만이 아는 이것이 수행(修行)하는 추요지대(樞要地帶)다. 아무리 잘 속이는 무리라도 저는 못 속인다. 속일 길이 없는 이 한 자리가 사람으로서 사람 노릇하는 학문을 하는 다시 없는 외길목이다. 퇴계선생 같은 어른은 지나가는 관기를 바라본 것을 곧 민란이나 막지 못한 것같이 알았으니, 모르는 사람에게는 귀에도 아니 들어갈 이야기일는지도 모르나, 내가 나를 아무것도 아니게 안다면 말할 것이 없거니와 그렇지 아니 하면 내 속이 외물(外物)에 끌리어 스스로 서지 못하는 것을 관계치 아니한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털끝만한 일에도 저같이 삼엄한 것을 보라. 과히 용렬하지 아니 한 사람일진대 제 옷자락에 쌓여 있는 먼지를 한 번 털어버리고 일어서 볼 만도 하리라.

중국 북송(北宋) 때 조변(趙G)은 외방장관(外方長官)으로 있을 때, 연회에서 가희(歌姬) 하나를 마음에 두어 저녁에 하졸(下卒)을 시켜 불러오라 하고, 이내 내심상(內心上) 절제가 풀어진 것이 한편으로 편치 못하여 얼마 동안 방 안을 돌더니 와락 큰 소리로,

“조변아, 네가 어찌 예(禮)가 없느냐?”

하면서 아까 보낸 그 사람을 급히 쫓아가서 도로 불러오라 하였다. 이러한 즈음에 아까 보낸 그 사람이 장막 뒤에서 나와,

“소인 여기 있습니다.” 하였다.

“어찌하여 아니 갔느냐?”하니까,

“평일에 하시던 바를 미루어 보건대, 얼마 아니하면 도로 부르라 하실 것 같기로 애초에 가지 아니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이분의 이 일이 또한 너무 심한 것 같기도 하나, 그러나 수행이 무엇인 줄 모르는 유속인(流俗人)으로 보면 심하고, 뜻있는 이로서 보면 좋은 자취의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140~150년 전 영조 때 명상(名相) 서문청공(徐文淸公 : 志修)은 수상으로 있을 때 여러 대신들과 궐내에 모여서 집에서 해 들여온 점심상들을 받는데, 서문청공의 집에서는 겨우 호박죽 한 그릇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그 집이 가난할수록 이 마음은 넉넉하였을 것이다.

나라가 이지[脂]고 내 몸이 여위[瘠]면 여윈 속에 광휘(光輝)가 있다. 이러한 분들은 일생에 유쾌만이 있을 것이다. 온몸에 더러운 것만 잔뜩 채워가지고 그래도 남의 눈을 가리려는 무리야말로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러니 제 일을 남이 알까보아서 속이려 하는 것도 오히려 실낱만한 무엇이 있는 연고다. 지금으로 보면 알까보아 하는 그것조차 아울러 옛날 일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