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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가을 손님 / 김윤희

가을 손님 / 김윤희

 

 

 

이제 막 처서가 지났다.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더 이상 풀도 자라지 않고 여름 장마에 눅눅했던 옷가지며 이불과 책들을 포쇄해도 좋을 때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는데 모기 입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보다. 아니, 어쩌면 입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악스럽게 달려드는 것인지 모기 극성은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늦더위는 무엇에 연연하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끈끈하게 매달려서 눈치를 먹고 있는지 측은하다. 눌러 붙은 여름 찌꺼기를 박박 문질러 닦고 있으려니 어느 틈에 어디로 들어왔는지 귀뚜라미 한 마리가 눈앞에서 통통 튀어 지나간다. 파리채를 집어 들고 탁, 내리치려다 그만 두었다. 나도 미처 느끼지 못한 이 가을, 절기 맞춰 찾아온 첫 손님인 까닭이다. 시절이야 어찌 되었든 제 구실을 다 하기 위해 처서가 지나기 무섭게 이렇게 찾아 왔구나싶어 반갑고 신통하다.

귀뚜라미는 겨우 한해살이 일생인데 일곱 달이나 땅 속의 어둠을 견뎌내고 늦은 봄 애벌레로 깨어난다. 그 연약한 몸을 무려 일곱 번이나 껍질을 벗고 벗으며 몸 다듬기를 거친다하니 어디 그 일생이 그리 호락호락하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 저녁에 살그머니 다가와 가을 문지방을 넘고 있는 것을 보니 문득 가련하게 느껴진다. 이 녀석 자신은 과연 얼마만한 삶의 가치를 느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귀뚜라미가 내는 소리는 수컷이 자기 짝을 찾기 위해 암컷을 향해 사랑을 구하는 노래라고 한다. 무리 중에 우렁차게 우는 수컷을 소리꾼이라고 하고, 소리꾼 주변에 모여 사는 수컷을 들러리꾼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들러리꾼이 있다는 게 웃음이 나온다.

삶이라는 것이 어느 무리이건 그렇게 저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을 진대 사람만이 유독 불만을 품고 으르렁대며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귀뚜라미는 보통 한 마리가 한밤중에 4시간 반 동안 96데시벨 정도의 똑같은 소리를 40,000번쯤 반복해서 낸다고 한다. 가정생활 소음이 40데시벨 정도로 볼 때 이는 노래라기보다 고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인종마다 언어가 다르고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는 것처럼 귀뚜라미 소리도 종류마다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한 마리가 노래하면 모두들 같이 따라 하는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가을 정취와 낭만을 느낀다. 귀뚜라미 사회에서는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끌리는 녀석이 찾아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에 가까울 만큼 혼신을 다하여 노래하면서도 정작 소리를 내는 그 자신은 자기의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섬돌 위 귀뚜라미 그 소리가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인가 보다.

어쩌면 욕심 많은 사람들의 잣대로 보아 애처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리꾼이 되어서든 들러리꾼이 되어서든 목청껏 소리를 내어 제 몫을 다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면서 그것이 바로 행복한 생임을 이미 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함 속에 살고 있다. 그런 한편에서는 주어진 생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끓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목숨까지 동반하여…….

불과 60년대까지만 해도 그저 단순히 배부르고 등 따습기만 하면 더없이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점점 굵어져가는 허리통과 비례하여 그토록 험악한 일이 자행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물질 만능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이 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할 뿐 자신이 들러꾼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연유에서라고 볼 수도 있다.

밤새 혼신을 다하는 귀뚜라미 소리는 비록 들러리꾼의 삶일지라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주어진 입장을 잘 받아들이는 순명의 소리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몸짓,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끼며 듣는 이 밤 귀뚜라미 소리는 더 이상 애처로움이 아니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가을밤 그윽하게 울려퍼지는 비이올린의 선율로 가슴을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