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장의 오후 / 곽흥렬
아버지의 몸에선 언제나 쇠똥 냄새가 배어났다. 그 냄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장철 소와 함께 방방곡곡을 떠돌아야 했던 아버지의 고단한 세상살이의 체취였다. 그때 나는 그림자처럼 당신을 따라다니던 그 야릇한 냄새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제법 철이 나서까지도 어딜 가든 아버지가 하는 일을 한사코 숨긴 채 살았다. 그 체취가 우리 가족의 생계를 걸어메고 있던 끈이었음이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한참이나 지나온 지금에야 비로소 헤아려진다. 이렇듯 삶의 깨달음에 있어 나는 늘 지각생이다.
시골장의 정취 가운데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우牛시장 풍경이다. 사람들의 왁자한 소란스러움이 없다면 정작 장場다운 맛이 있을까. 생짜로 뱉어내는 거간꾼들의 걸쭉한 욕지거리가 외려 정겨움으로 다가오는 곳, 그곳이 바로 삶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시장이다. 특히나 거기서 오가는 대화는 대화라기보다는 숫제 싸움질에 가까워 투박하기가 뱃사람들의 악다구니에 못잖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버지는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길을 나서야 했다. 뿌연 입김을 푸푸 내뿜는 어미소를 앞세우고 굽이굽이 산길을 타고 넘을 때 송아지는 꽁무니에 달라붙어 종종걸음을 친다. 놈들은 잠시 뒤의 자기들 운명을 모르는 슬픈 종족이다. 그저 고분고분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처럼 주인의 뒤를 따라 꾸벅꾸벅 걸음을 떼놓는다. 이윽고 희붐하게 동녘이 밝아오면 워낭 소리가 정적에 싸인 산골의 아침을 깨운다.
소를 사와서 시장에 내놓기까지 짧으면 며칠, 길어야 보름을 넘지 않는 기간이지만 아버지는 그동안에도 부지런히 빗기고 쓰다듬으며 정을 붙이셨다. 아마 그래서였으리라. 팔려가는 소들의 뒷등을 보면 늘 마음이 짠하다 하셨다. 미혼모의 아기를 맡아 돌보다 입양 가정으로 넘겨주는 위탁모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움머움머 새끼를 부르는 어미 소의 느릿한 여음 뒤로 음매음매 어미 소를 찾는 송아지의 여린 울음소리가 메아리되어 울려 퍼지는 우시장의 오후, 생이별한 어미 소의 연신 껌벅거리는 커다란 눈망울에 맺혀 있던 그렁그렁한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부디 크고 맑은 눈에는 정情을 주지 말지어다. 가슴에다 우물 속 같은 공동을 내어놓는 까닭에.
소를 사서 파는 일은 아버지에게 하나의 신앙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장이 서는 날이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외양간의 불을 밝히고 정성껏 쇠죽을 끓였다. 걸쭉한 쇠죽으로 소의 배가 어지간히 불러졌다 싶으면 등허리와 목덜미의 잔털을 쓸고 다듬으며 곱게 손질했다. 반들반들 윤기가 나야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의 생계와 형제자매의 학비는 고스란히 아버지의 손을 거쳐간 그 소들이 맡았던 셈이다. 오늘은 어떤 작자가 나타나서 흥정을 붙여올는지, 매번 장을 맞이하 ㄹ때마다 당신의 마음은 설렘 반 걱정 반이었으리라.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대강 두량하고 난 아침나절이면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장구경을 나서곤 했다. 그리곤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우시장이었다. 우리 모자母子는 멀찍이서 아버지의 흥정 장면을 지켜보았다. 한참을 알 수 없는 대화가 오가고 밀고 당김이 거듭되다 마침내 돈다발이 건네졌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쉬움인지 만족감인지 모를 미소가 번져가고 초조하던 내 마음도 덩달아 파도를 탔다.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내 손을 이끌어 아버지께 다가갔다. 뜨끈뜨끈한 장국밥에다 걸쭉한 왕대포 한 사발로 장판의 열기는 후끈 달아오르고 기분이 거나해진 아버지로부터 어머니 손에 지폐 몇 장이 쥐어졌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난전을 돌면서 다음 장도막까지 쓸 찬거리와 생필품을 구입하고 내 운동화며 누비바지며 학용품 몇 점을 사 주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시절의 시장 풍경은 이처럼 따뜻하고 정겹고 애틋한 모습으로 내 기억의 곳간에 고이 갈무리되어 있다.
지금도 어쩌다 고향집을 들를 때면 장터의 정취가 그리워서 우시장으로 발길이 닿곤 한다. 아직도 여기저기에 아버지의 치열했던 삶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듯싶어 눈으로 쓸며 지나간 세월을 더듬어 본다. 아버지의 부푼 꿈과 쓰디쓴 좌절, 설레는 기대와 아쉬운 한숨이 교차했던 곳, 당신으로선 이곳이 평생을 바쳐 가족이란 등짐을 짊어지고 거친 세파와 싸웠던 삶의 터전이 아닌가. 아버지는 만일 소란 동물이 없었다면 세상살이의 의미 자체를 잃고 마셨을지도 모른다. 재래시장 장꾼들이 두세 평 남짓한 점포에 자리를 틀고 앉아 꿈을 일구듯 아버지도 우시장을 당신의 점포 삼아 팍팍한 삶을 설계해 가셨으리라.
거친 세월의 물살을 어찌 이곳인들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인가. 이제 우시장도 개방화의 파고에 떠밀려 지난날의 흥성했던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드문드문 박혀 있는 주인 잃은 빈 말뚝 사이로 휙 한줄기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해질 녘의 쓸쓸한 장터 풍경에서 어머니와 사별死別하고 홀로 늘그막의 외로움을 달래며 조용히 생의 끝자락을 마무르고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다.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장꾼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착찹한 마음을 안고 돌아서 나오는 발걸음 뒤로 소들의 길고 느릿한 울음소리가 환청 되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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