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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고드름 / 송복련

고드름 / 송복련

 

 

 

벼랑 끝이다. 유전자 속에는 아래로만 흐르는 결코 솟아오르지 못하는 숙명적인 길이 저장되어 있나보다. 그래서 마음은 맺히고 맺혀 처마 끝에서 자꾸만 칼날이 되어 수염처럼 자란다. 차갑게 벼리는 몸은 단단하지만 유리처럼 쉽게 금이 간다. 아주 맑아지면 끝내 추락하여 제 몸을 던져버릴 것이다.

거꾸로 자라다보니 몸은 점점 비수를 닮아가는 것 같다. 흐름이 멈춘 뒤 소통 없이 경직된 몸은 깨질지언정 타협을 모르고 찌를 듯이 날카롭기만 하다. 눈물이 얼음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처마 끝에서 점점 차갑고 독해지기만 하니 안타깝다. 곧게만 자라서 수직으로 뛰어내리려니 아득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인가. 뾰족하게 굳은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서고 보면 제 무게만큼이나 마음 바닥에 깊은 홈을 파고야 말 텐데. 몸이 투명하게 되어 용서하는 시간이 어느 때쯤 오려나.

산촌의 봄은 고드름 녹는 소리로 시작된다고 했던가. 눈 덮인 산간마을은 처마 끝의 그늘로 겨우 집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순백의 무게와 부피가 처마 끝마다 고드름으로 흘러내릴 때의 풍경은 겨울의 이빨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하다. 그렇게 한나절 아니 얼마간이면 독한 마음을 녹여내고 말 텐데. 마음이 녹아야 땅에 닿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될까.

스미지 못하는 것들의 서릿발 같은 그 냉기는, 풀렸다 맺히는 서운한 마음 끝에서 매달리는 집착 덩어리와 같다. 내몰리다가 벼랑 끝에 서서 위로 솟아올라 보지 못한 시간들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인가. 봄은 늘 가까이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그동안 왜 겨울만을 느끼고 살았을까. 오래전 자신이 물이었던 날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는지. 물의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해를 기다리며 물방울의 기억을 떠올려야 하리. 얼음이 풀리고 맺히는 날이 거듭되는 걸 보면 햇빛이 먼 곳에 있지 않은 것 같은데.

고드름은 폭설 뒤에 많이 자란다. 엷은 햇살에도 처마 끝에서 죽순처럼 돋아난다. 폭포, 아니 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자라는 고드름은 얼음 수염, 얼음 국수, 얼음 주렴, 얼음 악기와 닮았다. 끊겼던 길이 열리면서 개구쟁이들이 절벅거리는 마당으로 뛰어나올 때, 장난감 같이 되어 눈부시게 깨지는 소리가 듣기 좋다. 가슴이 뜨거운 처녀들이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오도독 씹히는 소리와 함께 어깨를 움츠리며 자지러지는 모습도 귀엽다.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각시방 영창에 달아놓아요.”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똑, 똑.’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명징하게 정신을 일깨우며 가슴에 작은 웅덩이를 담고 있을 지도 모른다. 흥건하게 고인 물 위의 동그라미를 보며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듯하다. 그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짐들을 훌훌 벗어 버리고 물의 몸이 되어서 둥글게 풀려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아픈 무게만큼이나 가슴에 깊은 심지 하나 심어진 것을 보게 되리라.

얼었다 녹아내리기를 거듭하는 애증의 시간을 지나 투명해진 고드름은, 전신을 던져 투신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녹아 스며들어서, 작은 풀꽃에서부터 땅과 하늘 위의 모든 생명을 키우는 물처럼 윤회의 시간을 거치리라. 비록 얼음의 시간이 온다 하더라도 다시 녹아내릴 것을 믿으며 견딜지도 모른다.

어디서 ‘똑, 똑.’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다. 내 마음도 따라 녹아내리고 싶고 스미고 싶고 흐르고 싶다. 누군가의 창가에 낙숫물처럼 듣는 음악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