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점(死點) / 은종일
“끝까지 올라가야하나?”라는 말에 발목이 잡히어 팔공산 팔부 능선에서 점심보따리를 풀었다. “무리한 운동은 도리어 건강을 해친다.”는 핑계가 여론몰이를 한 셈이다. 평생직장의 친구였던 일곱 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는 정례 산행에서였다.
3백회를 넘어가는 동안 줄기차게 정상까지 올랐건만, 언젠가부터 사점(死點)에 이르는 고통을 기피하려는 현상이 서서히 나타났다. ‘사점에 이르는 고통’은 오름에 따르는 신체적 고통의 극치를 일컫는다. 달리기나 등산 등 유산소운동을 심하게 하다보면 호흡이 급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순간에 이른다. 그만하고 쉬고 싶어진다. 쉬지 않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은 무서움이 인다. 이 순간이 사점[dead point]이다.
다년간의 등산을 통해서 이 죽을 것 같은 사점 너머엔 처절한 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제 2의 정상상태[second wind]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산쟁이들이 “산행 초반은 힘들어도 바짝 땀 흘리고 나면 몸이 풀린다.”고 얘기하는 바로 그것이다.
사점을 5분 정도 견디어 일단 넘어서면, 넘기 전까지 고통스럽고 답답하고 어지러웠던 상태는 서서히 사라지고 호흡이 안정되고 정신이 맑아지지 않던가. 누구나 이 상태에서 절정의 즐거움과 만나게 된다. 숙명적으로 만나는 오름의 고통을 극복하고 만나게 되는 이 즐거움을 맛본 사람은 즐거움 자체에 깊이 빠지게 되고,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끊임없이 산으로 달려 가게 된다. 그러나 사점에 이르는 고통의 고비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이처럼 중도에 포기하여 산을 내려오거나 아니면 목표했던 코스가 아닌 진로 바꾸기가 불가피하다. 정상으로의 코스가 보증하는 사점을 기피하고픈 생각들은 아마도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는지.
일행 가운데는 ‘30분 걷고 5분 쉬고’를 페이스 조절의 왕도라며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저마다의 체력에 차이가 있고, 그날의 컨디션들이 다르고, 등산로의 오름의 조건이 다르고, 지역적으로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일정 간격의 휴식을 통한 걷기속도 조절은 분명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단체 산행의 성패는 리더의 역할에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사점에 이르기 전에 휴식을 갖는 등산패턴을 자동차에 비유하여 과속-엔진과열-운전정지를 거듭하는 꼴이라며 비하하기도 한다. 등산으로 체력이 다져지면 같은 속도에서는 난이도가 더 높은 오름으로, 같은 난이도에서는 더 빠른 속도로 사점이 이동됨을 체험하게 된다. 등산이 허락하는 육체적 쾌감에 이르기는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사점에서의 고통이 필수적 전제이다.
등산은 정상에서 느끼는 정신적인 쾌감보다 어쩌면 사점을 넘어서 만나는 육체적 쾌감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것이 보다 맞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굳이 정상에 오르려는 고집보다 사점을 넘어서려는 육체적 쾌감 찾기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이처럼 등산의 목적이 사점 너머의 육체적 쾌감 찾기라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덜 고통스럽게 사점을 넘어설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내남없이 사점의 고통을 덜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산행엔 왕도가 없다. 나는 그 방책을 자기최면뿐이라고 여긴다. 초기에는 선두에 서는 것이었다. 일행의 산행 속도가 나로부터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목표 걸음을 정해놓고 100보씩 끊어가는 방법을 써왔다. 목표에 몰입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지난 6년간은 기도를 하면서 오름의 고통을 줄여왔다. 가톨릭 신자로서 신약성경의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를 묵상하는 묵주기도를 바친다. 고통 중에 드리는 기도가 오름의 고통을 희석시키기 때문에 가장 큰 효험을 얻는다.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점이라는 것이 어찌 유산소운동에만 해당되겠는가는 생각이 든다. 육체적인 사점이 있다면 정신적인 사점도 있기 마련다. 육체적인 고통보다 어쩌면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견디기 어렵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함께하는 사점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각종 수험생에겐 해당 시험의 합격이, 직장인에겐 승진이, 농부에겐 알찬 수확이, 상인에겐 큰돌벌이가 각자의 사점 너머에 있는 목표물이 아닐는지?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점은 바로 사점에서 이미 차이가 났다고 여겨진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사점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성공이 사점 너머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이라면 사점의 고통은 달게 받아들여야 할 대상임이 분명하다. 내가 하는 공부, 내가 하는 일, 심지어 내가 하는 봉사활동까지 사점을 느끼고 사점 너머의 희열을 맛보고 있는가 이다. 행여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집중하여 사점을 감내하려했는지를 되돌아볼 일이다. 사점, 성공으로의 길라잡이이자 반드시 넘어야할 깔닥고개이기 때문이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만남과 떠남의 사이 / 김진태 (0) | 2013.02.08 |
---|---|
[좋은수필]변비 체험기 / 정호경 (0) | 2013.02.07 |
[좋은수필]겨울 바다, 그 쓸쓸함에 대하여 / 구 활 (0) | 2013.02.05 |
[좋은수필]겨울 벚꽃 / 한명숙 (0) | 2013.02.04 |
[좋은수필]지상의 방 한 칸 / 김애자 (0) | 2013.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