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동전 / 임만빈
고개를 숙이고 길을 걷는데 무엇이 보인다. 허리를 굽혀 들어 올리니 10원짜리 동전이다. 한 면에는 다보탑이 서있고 반대편에는 1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다. 왜 이렇게 버려진 채 초라하게 누워있는가? 황금 만능시대라는데 돈이 어찌 내 눈에 뛸 때까지 초연(超然)히 누워있을 수가 있는가?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야기 했다. 10원짜리 동전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액면가 보다 훨씬 많이 드니 제발 회수율을 높여달라고. 어떤 머리 좋은 사람은 동전을 모아 녹여 팔아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을 가공하여 액세서리를 만들어 돈을 많이 번다는 기사도 있었다.
고등학교시절, 10원짜리 동전 몇 개만 가지면 시내버스를 탔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유유자적 나설 수도 있었다. 군것질을 좋아했던 어린 동생은 꿀밤을 머리에 맞을 각오를 하고 어머니를 귀찮게 조르게도 하던 10원짜리 동전이었다.
무엇이든 천대받기 시작하면 나중에 잊힌다. 10원짜리가 언제부터 천대받기 시작했을까? 물건을 마트에서 살 때,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탈 때, 세금을 은행에서 낼 때, 카드로 결제하고 지로용지로 납부하고 나서 부터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전, 경제가 풍요로워지고 삶의 눈높이가 오르자 하찮은 것에는 눈길이 머물지 않는 오만함이 생길 때부터인가? 그렇게 되어 지금은 10원짜리 동전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졌는가?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낼 때 10원짜리 동전의 위력을 경험한다. 10원이 모자라면 절대로 수취인 쪽으로 우편물은 떠나지 않는다. 세금을 현금으로 지불할 때도 10원이 부족하면 완납이 되지 않는다. 꼬장꼬장한 노인처럼 자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알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듯이.
가만히 손에 든 동전을 바라본다. 누르스름한 구리 색은 검게 변해있고 표면은 오랫동안 마찰을 받아서인지 여러 개의 줄이 그어져있다. 오래되면 낡고 상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처의 흔적을 보니 무척 애처롭고 안타깝다.
문득 주위에 10원짜리 같은 사람들이 없는지 생각해 본다. 하찮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 액면가보다 실제의 가치가 더 나가는 사람들, 가공하고 다시 녹이면 몇 배의 가치가 나가는 사람들, 상처받아 마음에 긁힌 자국을 가진 사람들, 국보인 다보탑을 가슴에 담고도 말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어찌 내 주위, 병원에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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