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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하지 못한 말 / 한 영

하지 못한 말 / 한 영

 

 

 

숙소로 올라가는 언덕길이 예전보다 많이 완만해졌건만 조금 걸으니 벌써 숨이 차온다. 한국을 방문하여 숙소를 찾던 중에 친구의 도움으로 모교의 기숙사 게스트 룸에 묵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외부에서 숙소로 향하는 제법 가파른 이 길을 전에는 언덕인 줄고 모르고 매일 오르락내리락했었다. 나도, 친구들도, 때로는 나의 어머니도 걸어올라 갔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걷다가 고개를 드니 옛 강의실 건물이 눈앞에 다가온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건물로, 인기척도 없이 숨어 있는 것처럼 서 있다. 바랜 회색빛 시멘트 건물도 그 임무를 다한 듯한데, 나에게는 아직도 마무리짓지 못한 일이 있는 것인지, 이 건물은 내 꿈에 요즈음도 자주 등장한다. 어쩐 일인지 꿈속에서 나는 늘 강의에 지각한다. 아니 지각할 지경에 이른다. 허두지둥 계단을 뛰어올라 강의실 문을 열면 강의는 이미 끝났거나 휴강이 되어서 맥없이 주저앉고는 꿈에서 깨어난다.

길 왼쪽으로 무성했던 나무들과 수풀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는 장례식장이 서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문상을 마치고 나오는 듯하다. 마침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어깨를 웅크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옛 모습이 그립고, 변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해도,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누이는 곳이 되었으니 평안과 안식과 위로의 터가 되면 좋겠다.

모든 것이 변했으나 내게는 여전히 변치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강의실 앞의 잔디밭에서 봄을 즐기고 있는 여자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다. 숲을 등진 벤치 위에는 싱그러운 젊은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소곤소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눈다. 스무 살을 갓 넘은 그들의 맑은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옛 기숙사 건물이 있고 그 뒤로 내가 묵고 있는 새 건물이 있다. 숙소가 비좁아서 새로운 건물을 크게 지었나본데 다행스럽게도 건물 외벽의 모습과 색깔이 전과 같아서, 편하고 익숙한 느낌이다. 옆길은 오직 하나 뿐이어서 새 숙소로 가려면 언제나 그 옛 숙소 앞을 지나가야 한다.

이제는 어쩐지 적막하고 허전한 느낌을 주는 그 건물 앞을 지나 걸어가노라니, 잊고 있던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난다. 선배와 같은 방을 써야했던 대부분의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동기끼리 한 방을 쓰게 된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창문 없는 구석진 방, 그 안에서 몰래 작당하여 끓여먹던 라면의 맛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특별한 것이었다. 성년의 문턱을 넘고 있던 친구들은 서로의 마음 속에 온전히 들어가고 싶어서, 마치 방문을 노크하듯, 서로의 마음을 두드려보던 시절이었다. 젊음이 너무 버거워서 친구들에게 의지하면서도 또한 상처를 주기도하고, 그런 다음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해 가며 같이 성장하던 세월들은 가슴속에 커다란 무늬를 남겨 놓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조금 많이 걸어서인지 피곤함이 몰려온다. 옛 기숙사 같이 생긴 방안의 침대에 몸을 눕힌다. 참으로 편안하다. 등을 받혀주는 침대의 감촉이 든든하면서도 부드럽다. 비록 침대의 느낌은 달라도 세월을 건너뛰어 그 시절에 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기숙사에 처음 입소할 때에는 처음으로 집을 떠나 친구들과 같이 지낸다는 생각으로 많이 흥분되고 설랬다. 그러나 막내딸을 처음 집 떠나보내는 어머니는 입소 며칠 전부터 안절부절 못하시더니 아침 일찍 짐을 들고 나보다 먼저 앞서 학교로 향하셨던 어머니께서는 같은 말을 묻고 또 묻고 하며 일어설 줄을 모르셨다.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나는 어머니의 등을 떠밀다시피 해 집으로 돌아가시게 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시작한 듯 흥분하여 친구들 방을 오가는데 나를 찾는 방송이 복도에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아니 벌써 누가 면회를 신청했담? 궁금하여 뛰어 내려갔더니 좀 전에 떠났던 어머니께서 서 계신 것이었다. 침대 크기의 합판을 옆구리에 낀 채. “짐꾼을 찾을 수 없어서”라고 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시는 어머니의 콧잔등에는 초봄의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예전에는 침대마다 스프링이 고장 나서, 자고 나면 허리가 많이 아프므로 선배들은 나무 합판을 매트래스 밑에 깔고 지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께서 어느 사이에 침대 크기를 재서 동대문 시장까지 가서 합판을 사들고 오신 것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짐꾼이 없어서,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커서, 혼자 걷기에도 힘든 그 언덕길을 늦은 저녁에 숨차게 걸어오신 것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나는 것 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드디어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엄마는 뭐 하러 이런 것을 가져오느라고 야단이야”였다. 짜증을 얹은 목소리였다.

내가 하고 싶어 했고, 하고자 했던 말은 그 말이 아니었는데 입으로는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은 끝내 하지 못했다. 해야 할 말을,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엉뚱하게 다른 이야기를 한 경우가 어디 그 때 뿐이랴. ‘부끄러워서, 자존심 때문에, 소심해서’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요하고 필요한 때 꼭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랴.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끝내 못한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하는데, 마음 속에 있었으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아니 했던 내 말을 어머니께서는 들으셨을까? 질문은 하나인데 답은 매번 다르다. 생각이 제자리에서 맴을 도니 나는 그저 돌아누워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