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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터 / 김희자

/ 김희자

 

 

 

 

태아의 터는 어머니의 태이고 물고기의 터는 바다나 강이다. 사람들에게 터는 단순히 한때 살았던 장소가 아니라 삶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터가 좋다는 것은 환경적인 요인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 터를 지키는 사람들의 심성과 인내에 의해 좌우된다.

아버지는 오늘도 바지게를 지고 삿갓배미로 향한다. 다랑논을 한 계단씩 기어오른 갯바람이 백발의 무성한 머릿결을 헝클고 지나간다. 한 해만 더하면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등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름과 끈적거리던 삶이 담겨 있다. 좁다란 논둑길을 팔순에 이른 생의 그림자가 따라간다. 지나가는 남실바람이 행여 세차게 불까봐 언덕에 선 여식의 가슴은 고빗사위다.

서러움이 흘러내릴 것 같은 설흘산 모롱이에 터를 잡은 내 고행은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해안선이 벼랑이라 배 한 척을 들일 수 없는 바닷가 마을이다. 강인한 고향 사람들은 바닷가 산비탈을 생긴 대로 깎아 터를 일구어 생계를 이어간다. 경사진 곳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는 마을의 집들도 마을 사람들처럼 낮은 지붕을 하고서 기대어 산다. 고향의 터전은 선조들이 정착을 하면서 벼랑 끝에 제비집을 짓듯 일군 땅이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는 윗대 조상들은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처럼 차곡차곡 농토를 만들었다.

바다와 잇닿은 가파른 언덕이라 터전을 일구기에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 둘씩 늘어나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산비탈의 거친 땅을 쓸모 있는 땅으로 만들어야 했다. 가족 한 사람이 늘어나면 작은 삿갓배미 하나가 생기고 또 한 명의 식구가 늘면 그 위의 산비탈을 깎아 장구배미를 만들었다. 식구 수가 늘수록 하나씩 불어난 논들이 백여덟 개의 계단을 이루어 마을 사람들의 터전이 되었다. 바닷가 터전이라 태풍을 비롯한 강한 해풍에 시달린 나락은 내륙의 벼처럼 튼실하지 못하고 농작물의 수확량도 풍성할 수가 없다. 농기구가 발달하여 농사일이 수월해진 지금도 고향 사람들은 소의 힘을 빌리거나 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어야먄 한다. 그래서 평지의 논보다 품이 많이 든다.

다랑이 마을은 아버지가 태어나서 팔십 평생을 함께했던 터전이다. 장손으로 태어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며 목수 일까지 배워서 마을의 노후한 다리를 없애고 차와 경운기가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놓았다. 또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마을 사람들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상수도를 이었다. 물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던 동네 아낙들의 불편함을 덜어 주었고 가뭄이 들 때는 물의 양을 조절하여 마을 사람들의 타는 목을 적셔 주었다. 상수관의 물을 조절하기 위해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연장을 들고 사립문을 나섰고 마을이 꽁꽁 언 한겨울에는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흐르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집수리와 다리 공사를 하기 위한 자재들을 구하느라 먼 길을 다녀오기도 하셨다. 감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마당에 차려진 아버지의 작업장은 구해온 자재들과 연장으로 가득 쌓였고 대패질을 하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고사리 손으로 합판을 붙들기도 하였다. 합판을 곧게 다르기 위해서는 먹줄을 튕겨놓고 줄을 긋곤 하였는데 길게 늘어진 그 먹줄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고향집 마당에 길게 쳐져 있다. 동네일에 앞장을 선 아버지의 흔적들은 지금도 고향에 가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태어나고 자란 터에서 고향 마을과 식솔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것이다.

다랑논은 논 자락마다 이름이 하나씩 붙어서 다 헤아리기 힘들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찾지 못해 집으로 가려도 삿갓을 들었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경작지가 워낙 작아서 삿갓배미라는 민담까지 생겼지만 땅에 대한 애착은 여느 농군들보다 깊다.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해야 하는 산비탈 천수답은 봄에 내린 빗물을 가두고 누렁 소를 앞장세워 써레질을 한다. 봄철에 충분한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가 늦어지고, 모를 심은 후에도 하늘의 뜻에 따라 수확량이 정해진다. 모내기를 할 때는 인근 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논도랑을 돌고 돌아 바다로 간다. 농부들은 자신의 논에 들어온 물을 다시 아래로 내려 보내줘야 이웃 논에 모내기를 할 수 있다. 부족한 것은 서로 나누고 이웃끼리 푼푼한 마음으로 돕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터이다.

육십 년을 아버지와 함께 터를 지켜오던 어머니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지난해 가을부터 농사짓는 것을 그만두셨다. 평생을 가파른 땅과 함께 해 온 분들이라 터전을 내버려 두지는 못하고 소일거리 삼아 채소를 재배한다. 힘은 부치지만 터전이 묵정밭이 되는 건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다랑논에는 마늘로 온통파란색이다.

내 유년 시절에는 이맘때가 되면 논에는 청보리가 노래를 했건만 지금은 파란 마늘의 알싸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층층이 계단을 이룬 논은 봄이면 풋풋한 마늘로 푸른 물결이 일고 가을이면 여름내 해풍을 이긴 나락이 익어 황금물결을 친다. 그렇게 터는 비우고 채우며 무수한 생명을 키워낸다. 모진 바닷바람과 온갖 고충을 다 이기며 어렵게 일군 터를 지키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하다. 그래서 고향으로 대표되는 터는 우리에게 신성하게 추억되는 장소가 되고 회상되는 장소이다. 모든 사람들은 타향살이를 하다가도 자신이 태어나 자란 터로 돌아가고픈 꿈을 꾼다.

삿갓배미에 거름을 내러갔다가 돌아온 아버지의 바지게에는 고향의 흙이 묻은 시금치가 소단하게 담겨 있다. 절벽을 생긴 대로 일구어 논둑처럼 굽이굽이 살아가는 고향 사람들. 손바닥 만 한 다랑논으로 생계를 잇는 고향 사람들의 아침은 가파른 언덕길에서 시작되고 막막한 바다로 지는 노을이 저녁이 된다. 논을 갈던 소도 한눈을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가파른 절벽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척박함을 이겨내고 비틀거리는 생존을 다랑논에 맡기고 살아간다. 고향 사람들의 투박한 사투리가 언제 들어도 정겨운 것은 발목을 붙드는 바닷가의 파도소리와 우리들 한 생의 귀퉁이에 헛디디면 한 될 절벽 한 칸씩을 껴안은 채 터를 잡고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