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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오래된 라디오 / 박기옥(小珍)

오래된 라디오 / 박기옥(小珍)

 

 

 

집안 물건을 정리하다보니 라디오가 3대나 있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이 초, 중등학생일 때 쓰던 것들이니 대충 20년은 넘긴 물건들이다. 어느 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이는 4명인데 라디오는 3대이니 당연한 일이다.

 

라디오의 성능을 점검해보니 거기가 거기였다. 라디오 A는 대체로 FM이 잘 나오는 대신 AM이 시원찮고 라디오 B는 그 반대였다. 라디오 C는 소리는 제일 시원치 않은데 셋 중 모양이 가장 세련되고 예뻤다. 나는 분야별로 라디오의 채널을 고정시켜 놓았다.

 

식사시간이나 신문을 볼 때는 라디오 A에서 클래식을 즐긴다. 청소를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는 라디오 B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적당하다. 무슨 규칙같이 정해진 것은 아니나 나의 생활패턴이 대체로 그러하다.

 

나에게 정해둔 규칙이 없듯이 그 녀석(라디오)들 또한 마찬가지다. FM이 잘 나오던 A가 어느 날은 오케스트라가 헝클어지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AM으로 체널을 옮겼더니 순한 양처럼 깨끗한 소리를 내 보낸다. B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번은 발코니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밖에서 들어온 아들이 물었다. 엄마 요즘 미국방송 듣느냐고, 라디오 B가 방송 도중 제멋대로 미국으로 건너간 모양이었다.

 

보다 못한 아들이 오디오를 하나 사라고 돈을 조금 주었다. 백화점에 갔더니 오디오의 종류가 많기도 할뿐더러 책 한 권 분량의 사용설명서가 나를 질리게 했다. 포기하고 돌아와서 라디오 한 대를 켜니 그 어느 때 보다도 상태가 좋았다. 나머지 두 대도 의논이라도 한 것처럼 소리가 깨끗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커피를 뽑다보니 오래 전 친구의 남편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대단한 클래식 메니아였다. 70년대 결혼했을 때 신혼집에 자신의 음악 감상실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벽을 꽉 채운 레코드판에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음향기를 갖춘 그 방에서 나는 단 한 대의 고물 라디오를 보물처럼 끼고 사는 나의 초라한 삶을 슬퍼했다.

 

집 구경하느라 그의 서재에 들렀을 때 책상 위에 오래된 라디오 한 대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애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렇게 좋은 감상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물 라디오를?

 

나의 표정에서 의문점을 발견했는지 그가 말했다.

“결국은 모노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감상실은 아주 가끔 이용합니다. 오늘처럼요, 하하”

 

나는 순간 학창시절에 읽었던 임어당의 에세이 한 편을 기억해 냈다. 제목도 생생한 '치약은 왜 샀던가'이다.

 

주인공은 양치할 때 소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를 본 한 친구가‘치약’이라는 것이 개발되었으니 써 보라고 권유한다. 시키는 대로 하다가 신문에서 치약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저것이 좋다 한다. 권하는 데로 온갖 치약에 끌려 다니던 중 어느 날 한 연구결과에서 치약 성분의 대부분이 결국은 소금 성분임을 발견한다. 주인공은 다시 소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젊은 날에‘모노(mono)’를 이해한 그의 혜안이 놀랍다.  

나도 한 때 휴대폰 액정에 'Simple is Beautiful' 이라고 새겨 다닌 적이 있었다. 간절히 '단순한 삶'을 지향한 것도 사실이지만 일말의 허영심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단순'은 수많은 '복잡'의 단계를 거처야 가능한 것인데 나는 늘 '복잡'의 첫 단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오래된 라디오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복잡'을 본다. 너무 많은 채널과 기능을 가진 녀석들은 나의 손가락이 전원을 누를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1밀리의 착오만 생겨도 지지지직 아우성을 치고, 두 개의 방송이 섞여서 시장터를 방불하게 할 때도 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름이 없으리. 내 속에 너무 많은 나를 가지고 있어 조금만 어긋나도 상처를 입는다.

 

언제쯤이면 위풍당당하게 모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래된 집에, 오래된 라디오와 오래된 사람이 서로의 '복잡'에 발목을 잡혀 낑낑거리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