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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끈의 유혹 / 박미경

끈의 유혹 / 박미경

 

 

끈은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느낌 또한 천차만별이다.  

가늘고 긴 실부터 시작해서 줄다리기 하는 억센 밧줄까지, 여자의 머리끈이나 허리끈부터 시작해서 옷고름과 속옷의 끈 그리고 인연과 생애의 보이지 않는 끈까지 우리는 끈 속에서 매듭을 짓거나 풀며 산다.

 

엉기거나 뭉친 실타래처럼 답답한 일상은 불쾌이다가도 어디선가 툭 튀어 나오는 실마리가 있어 슬슬 풀릴 때 인생은 쾌에 대한 자극으로 바뀐다. 억지로 끊어 잘라버리고 싶은 끈도 어느 순간 막다른 골목이나 인연의 씨실이 되어줄 때는 인생의 개연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팽팽해서 잡아당기는 힘을 놓아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너무 느슨해서 확 끌어당겨 주어야 할 때도 있는 끈은 그래서 생의 원천이다.

 

맨 처음 정신이 혼미하도록 아찔한 끈을 만난 것은 산부인과에서였다. 아기는 나와 자신을 이어준 탯줄을 5센티미터 정도 달고 내 품으로 왔다 경건하면서도 뜨거운 끈이었다.

 

뱃속에서 뭉클뭉클 존재감을 말이던 신비와는 또 다른 감동이었다. 생존의 본능이 살아 숨쉰 흔적이었고 종족 번식의 신화를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결정체였다. 어미와의 끈끈한 유대감은 탯줄이 말라 떨어지고 배꼽이 커져도 변함없이 이어 흘렀다. 보이지 않았던 탯줄이 더 길고 풍성했던 것처럼 부모와 자식 사이는 모이지 않는 끈이 더 질긴 법이다.

 

아기에게 맨 처음 입힌 배냇저고리도 단추가 아닌 끈으로 여미게 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목욕을 시키고 배냇저고리의 끈을 살며시 묶어준다. 너무 느슨해서 풀리거나 너무 조여서 매듭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다정한 마음으로 포개듯이 여민다. 아기가 마음껏 움직이고 뒤척여도 아이의 몸에 닿지 않도록 그 끈은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해야 한다. 따뜻하고 온화한 끈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그 끈은 어깨의 멜빵으로 혹은 허리띠로 옮겨간다. 헐렁한 바지 품에 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끈은 간단하면서도 편리하게 아이의 움직임을 도와준다. 처음에는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풀고 채우지 못하던 끈을 뛰고 달리고 성장하는 가운데 아이는 혼자서도 너끈히 잘 해낸다. 그 끈은 아이의 키와 무게에 맞추어 길이와 넓이가 늘어간다. 조금씩 조절하는 능력이 생기고 아이는 더 넓은 세상으로 뛰기 위해 끈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천조가리가 주요 재질이었던 끈이 어느새 가죽과 쇠로 장식한 견고한 끈이 되어 몸에 달린다. 조끔씩 끈은 냉정해지고 차가워진다.

 

더 자라면 아이의 끈은 더더욱 다양해지고 끈을 연결하는 방법, 푸는 방법도 자기만의 방식이 정해진다. 신호와 기호도가 생기고 남의 끈을 볼 줄 아는 안목도 생긴다. 아울림과 조화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남자는 넥타이라는 끈에 밥줄을 매달기도 하고, 여자는 목걸이와 액세서리에 밥 품을 팔기도 한다. 끈을 더 쉽게 매고 푸는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끈이 썩 괜찮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위장도 하고 연출도 한다. 그러면서도 조금씩 끈은 무거워지고 거추장스러워진다. 복잡해지고 불편해진다.

 

자신을 묶고 있는 끈의 정체성을 알 때쯤 끈으로부터의 일탈에 집중하기도 한다. 끈에 대한 궤도이탈의 노력은 더더욱 끈에 붙들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벗어나면 벗어나려할수록 매혹적이고 뇌쇄적인 끈에 심취되는 여유이기도 하다. 존재의 가벼움은 점점 더 달착지근한 감각을 발달시키는 법이니까, 잘록한 여자의 허리끈이나 훌륭한 버클을 단 남자의 허리띠는 찬란한 유혹이며 달콤한 축복이 된다. 밥을 버는 일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 혹은 밥을 버는 일로부터 더 탈출하기 위해 더 자극적인 끈에 매달린다. 더 쉽게 튼튼한 동아줄을 얻거나 더 바르게 매듭을 풀기 휘한 끈은 때로 구속이 되기도 하고 압력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없는 끈이 되어 어둠으로 함몰해가는 올가미나 덫에 갇히기도 한다.

 

더 어른이 되면 인생은 보이는 끈보다 보이지 않는 끈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를 지탱하고 유지했던 끈은 강한 것도 질긴 것도 아닌 끈끈한 사람의 정으로 이어진 끈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우정, 사랑, 인연의 끈을 알고 놓아야 할 타이밍, 잡아야 할 타이밍에 서투른 젊은 날의 시행착오를 반성하기도 한다. 억지로 되지 않는 끈을 잡고 오열하기도 하고 우연히 다가왔던 부적 같은 끈에 감사하기도 한다. 더 굵고 안전한 끈을 잡기 위하여 끊임없는 나락의 중앙에서 까치발을 서는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근의 유혹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만큼 끈은 단단하고 매력적이다.

 

어떤 끈도 부질없고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가족과 고향의 품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 때쯤 생의 끈을 더 오래 잡기 위핸 분투가 시작된다. 굵고 힘센 끈, 강하고 질긴 끈이 아닌 자신의 몸뚱이 하나만 제대로 지탱해 주면 되는 간절한 끈, 아무리 펴 올려도 늘 빈 두레박이었던 젊음의 초상을 겨우 우물물에 비춰볼 수 있는 나이가 될 때 쯤 자신의 마음속 끈의 길이가 너무 짧았음을 깨닫게 된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던 끈은 결국 내 자신의 끈이 짧아 잇지 못했음을 깨닫지만 이미 닳고 희미해진 끈은 있는 매듭조차도 스스로 풀어버린다.

 

최선인 줄 알고 매달렸던 생의 끈도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갉아대는 데는 당할 수 없고, 시지프스의 형별처럼 끈 없는 돌덩이를 평생 굴려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까. 뜨겁고 경건했던 끈을 놓아버릴 용기가 생길 때쯤 끈은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잇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아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