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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잃은 자의 슬픔 / 권현옥

잃은 자의 슬픔 / 권현옥

 

 

 

밥벌이의 지겨움이나 밥하기의 지겨움, 밥벌이를 찾고 있는 지겨움이 삶의 질긴 고리라지만 잠깐의 휴식으로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앉아있기만 했던 두 다리에 대한 예의를 위해 걸었다. 느끼지 못했던 호흡에 대한 겸손을 표해야 했고 심장에 대한 순종도 배우며 걸었다. 몸으로 땀으로 지겨움을 밀어내며 걷는 일은 순수한 노동이었다.

연 이틀 걷게 해주었던 고마운 발은 퉁퉁 붓고 불어 이제는 걷기에 거북한 존재로 붙어 있었다. 떠나기 전 마음에 뭉쳤던 지겨움이 땡땡한 근육으로 변형되어 종아리에 가서 뭉쳐있다. 이제 며칠이면 그것도 어디론가 풀려 사라지리라.

폭우는 여전하였고, 그만 걷자 마음먹고 잠시 포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언덕 위에서 우비를 걸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안면이 있긴 해도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식당에서 본 사람이군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한다.

“예, 그러네요. 또 낚시 가시나 보죠?”

우리가 보말 수제비를 먹고 있을 때 그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우비를 걸진 채 보말 수제비를 시켰다. 주인 여자에게 어젯밤에는 한치 다섯 마리를 잡았노라고 얘길 했는데 왜인지 측은해 보였다. 식당 여주인이 그 남자의 말 몇 개를 무시하고 넘어가서인가 보다.

포구 쪽으로 가는 남자를 지나치며 우리도 낚시점에서 낚싯대를 빌렸다.

다행히 비는 조금씩 멈추어 방파제와 빨간 등대가 있는 풍경에 낚싯대를 던져 놓았다. 낭만을 즐기려던 참인데 언제 왔는지 그 남자가 다가와 서툰 우리의 낚시를 순식간에 바로잡아 주었다. 빠른 손동작만큼 빠른 것은 말이었다.

우리가 서울서 왔다는 대답을 끌어낸 것 말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자기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말했다. 우리나라 웬만한 자동차는 자신이 다 만들었다고 했고 연구소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일했는데 바른 말을 해서 잘렸다는 것과 미국으로 가기 전 잠시 쉬기 위해 이 포구에 와 한 달이 되간다는 것과 한치를 잡으면 함께 소주 한 잔 꼭 하자는 것이었다. 얼마나 빠른 동작으로 방파제 위를 걸어 다니는지 아슬아슬한 마음에 되레 나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우리의 낚시 바늘이 바위에 걸려 계속 끊어지고 있을 때 그는 순식간에 3마리의 한치를 잡아 올렸다.

‘저희는 갈 테니, 하고 가세요’라는 인사를 끝내자마자 갑자기 그는 낚싯대를 접으며 회를 쳐서 함께 먹자는 것이었다. 빠져나갈 틈도 없이 바싹 다가온 그를 거절하기엔 인정에 약했다.

먹물을 잔득 뿜어낸 한치 3마리를 낚시점 수돗가에서 손질을 하고 소주를 나눠놓고 앉았다.

무슨 말을 할까, 참으로 어색한 만남인데 그는 아닌가보다. 방파제에서 하던 말을 다시 했고 진언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던 그 시절, 잠도 못 자가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일했던가를 추억했다.

듣기만 하였다. 취기가 오르자 차츰 그의 말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는 부인 때문에 어렵게 모은 재산도 다 날리고 지금 빈털털이고 가족과 헤어졌고 직업도 잃었다. 그토록 열심히 일한 그는 이제 막 50인데 한국에서는 써주질 않아 미국으로 갈 거란다.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자꾸 그의 슬픔을 많이 알 것 같아 그만 가보겠다고 했다. 나오다가 뒤를 바라보니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무리 떠들어도 직업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슬픔을 공유할 수도, 덜어갈 수도 없는 타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모습 같았다.

다시 포구로 나가보니 수평선에는 떠오른 해처럼 집어등의 불빛이 일렬로 서 있었다. 밤바다의 낭만으로 보이는 저 배들의 밤 작업은 어부의 직업이다. 새벽에 한치를 처분하고 얼마의 돈을 쥐고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생업이지만 지금 포구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는 아름답기만 하다.

25년을 넘게 일한 남편은 요즘 밥벌이의 지겨움을 내려놓고 싶은 속내를 비치는데 이제 대학을 졸업한 딸애는 취직 때문에 처절하다. 전업주부인 나는 책과 글에 마음을 많이 내놓고 살지만 작가라 하기엔 집안일이나 건강이 몸을 묶어 놓아 지쳐있던 중 이곳에 왔다. 그래서 우리도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한치잡이 배들처럼 멀리서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는 단순함이 그간 복잡했던 마음을 쓸어내린다. 두고 온 직업을 바라보는 짦은 휴가의 행복한 시선, 이 단순함의 행복을 우린 맛볼 수 있는데 그는 그렇게 바라볼 직업을 잃었다.

인생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수록 밥벌이의 중요성은 살아난다. 그래서 직업을 갖게 되고 좋든 싫든 적응해야 한다. 공평하지 않은 대접과 결과 안에서도 끊임없이 찾고자 하는 것은 또다시 공평함의 진리가 아닐까.

열심히 일하여 공평함의 진리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 그것이 직업의 길이겠지만 불공평을 느꼈다면 누구든 붙들고 말이 많아진 그처럼 슬픈 일이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서울의 길 위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차량을 보니 혈관을 도는 피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 무언가를 해서 먹고 살겠지’ 생각하니 먼 바다에 밝힌 집어등처럼 아름답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