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위에 / 김여진
전철역이다. 줄지어진 몸놀림이 일상적이다. 빠르게 스치는 얼굴과 얼굴들이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나는 서 있다. 전쟁터를 향한 무장된 자세, 경직된 표정 안에 작은 심호흡이 들린다. 이내 전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들린다. 내리고 타고 서로 엇갈린다. 인기척 없이 기계음만이 귓등을 때린다.
다섯 손가락을 펴들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듯 다른 세상으로 향해 간다. 온자 웃음 짓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작은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펼쳐진다. 무장 해제와 동시에 안정된 숨고르기, 안면 근육이 풀리고 뭔가에 집중한다.
열심히 손가락이 움직이며 가끔은 히죽거리다 혼잣말을 한다. 말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상의 삶은 지루하기만 하다. 어제와 오늘 내일 그저 그날이 그날이다. 가족 간의 대화도 별로 할 말이 없다. 필요한 말만 할 때가 더 많다. 핵가족화로 서로 만나는 일도 많지 않다. 각자가 머무르는 장소가 서로 다르다. 한 동네에 일가를 이루던 시절은 옛 이야기다. 큰댁 작은댁 서로 이웃하며 조석으로 마주하던 얼굴이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소리 지르며 “건너 오슈. 참 같이하게…” 그게 언제 들어본 소린가.
손바닥 위에 펼쳐진 대화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드르륵 신호음이다. ‘어머니 뭐 하세요. 점심은 드셨나요?’, ‘그럼. 너는?’ 주고받는 대화가 손위에서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며 시시각각으로 전해 들려오는 소식은 손바닥 위에서 이루어진다. 방 안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밥상 위에서 이루어지던 대화였다. 빠르고 바쁜 생활 속에서 거리로 나들이 나온 대화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는다.
문화 혜택을 적절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듯 발전하는 문화로 인해 대화가 단절되고 세대 차가 난다고 한다. 한쪽에선 페스트 식품이, 다른 한쪽에선 스로우 식품이 시소게임을 한다. 선택은 모두에게 자유다. 손바닥 위에 즐거움은 색다르다.
서로에게 안부를 전하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 한 상에 둘러앉아 밥 먹으며 킥킥거리듯 손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띠리릭 말을 걸어온다. 옆방에서 자고 일어나 엄마를 부르듯 이국땅에 살고 있는 아들이다. 한때는 궁금하고 답답해도 참아야 했다. 보고 싶어도 마음으로만 그리워해야 했다. 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모두 참아야 했다. 엄마니까 자연히 많고 많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하고 그저 잘 있겠거니 하며 많은 날을 보냈다.
옆방에 누워 자는 아이들을 깨우듯 ‘띠리릭’ 말을 걸면 지체 없이 ‘띠리릭’ 대답이 온다. 엄마의 잔소리는 여전히 새롭게 시작된다.
어느 한 사람의 집념으로 만들어진 도구의 발전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 아닌가? 문명이 활발한 시대를 살아가며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 좋은 세상에 좀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먹고, 느끼고 갈 수 있을 텐데….” 하며 먼저 떠나야함을 아쉬워하던 할머니의 쓸쓸함.
구십을 넘게 살다 가신 할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이십 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다르다. 또 앞으로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변화되어 문화가 바뀌어 가는 것을 볼 게다. 어떻게 변하여 가든 지금 여기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세상이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다.
간접적으로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거나 영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을 통해서 볼 때는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크게 다가오는 것은 없었었다.
우리 가족이 서로 다른 곳에 앉아 한 밥상에서 있듯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인간의 상상이 현실로 다가와 실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이요, 자다가 벌떡 일어날 일인 것이다.
사람에 의해 문화는 날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미처 따라 가지 못하면 세상 속에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세대가 된다. 언제부터인가. 글로벌시대라고 외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동떨어진 말로 들렸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이 말이다. 누군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 했던가.
실생활에 깊이 관여하고 가족과의 대화를 이어지게 하니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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