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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2

[좋은수필]빈손 / 장생주

빈손 / 장생주

 

 

눈을 딱 감고 버리기로 했다.  

평생을 모아 온 내 소중한 장서를 내놓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한가. 밤이 이슥하도록 도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생각하면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던 내 인생이다. 설령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다 버린다해도 손해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허욕을 버릴 수가 없으니 안타깝다.  

언제부터인가 아내는 집에 있는 책들을 버리며 살자고 했다. 그녀도 누구 못지 않게 책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나를 만나게 된 것도 책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한 때문이었다.

 

그 러나 이젠 내 작은 아파트 방안이나 앞뒤 베란다, 심지어는 침대 밑이나 옷장 위까지도 책들이 점령해버리고 나자 그녀로서는 화장대 하나 놓을 자리가 없이 꽉 차버린 책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는 굳이 종이책이 아니라도 읽고 싶은 글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사실 집안은 늘 책으로 어수선했었고 한 번 모으면 좀처럼 버릴 줄을 모르는 내 소유욕도 문제가 있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생각이었다. 그러면 그럴듯한 서재 하나를 꾸며놓고 지금까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좋은 글을 실컷 읽으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젠 아흔 다섯 되신 어머니마저 당신 방에 쌓아둔 책을 살며시 내 앞으로 갖다 놓는 실정이었다.

 

사면초가였다.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고 하니 아까운 게 너무 많았다. 책마다 사연도 많았다. 어떤 책은 어느 작가가 첫 창작집을 친필 서명 날인까지 해서 보내주기도 했고 어떤 건 가난한 문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만든 동인지도 있었다. 아내가 시집 올 때 가져온 손때묻은 세계명작이며 신병으로 8년 간을 병마와 싸우면서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었던 책들이며 마을문고운동을 할 때 고향청소년들과 함께 구했던 책 등 참으로 추억 어린 책들이었다. 어찌 보면 책은 내 삶의 흔적이 긷든 자산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 가난해서 책 한 권 살 돈이 없었으면서도 책에 반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기도 하고 학교 다닐 적엔 도서관에서 살았다. 게다가 유년시절 내 꿈은 방안 가득 책을 쌓아놓고 평생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책도 읽을 수 있을 만큼 모았다. 어쩌면 어렸을 적의 내 소박한 꿈이 이루어졌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젠 책이 하나의 짐이 되고 있다. 버리자. 버리는 게 순리가 아니겠는가.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버리는 삶을 사셨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송두리째 버리셨다. 끝내는 목숨까지도 버리셨다. 어찌 예수님뿐이던가. 부처님 또한 한나라의 왕으로 온갖 부귀영화 권세를 맘껏 누리고 살 처지였다. 그러나 그 분도 왕의 자리도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자식까지도 버리고 스스로 고행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끝내는 부처가 되셨다. 정녕 버리는 게 더 큰 것을 얻는 것인가.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좀처럼 따르기 힘든 고행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우리 주변에도 악착같이 많이 벌어 많이 쓰며 살자던 사람들이 이제는 적게 벌어 적게 쓰자는 가난한 걸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말하자면 많이 버리며 살자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스코트니어링 부부는 50년을 해로한 부부란다.  

그런데 그들은 20년 간을 버몬트 시골농장에서 자급자족의 독립 경제를 실천. 일종의 귀농일기인 「조화로운 삶」을 집필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자연개발이다. 뭔가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시대착오라 했다. 소유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은 끝없이 경쟁하고 소비하고 소유해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때로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까지 정해 소유억제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마크트웨인은 "문명이란 불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끝없이 늘려 가는 것이다"라고 불평하기도 했다. 또한 법정 스님은 그의 수필 「무소유」에서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고 했다. 어쩌면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는 올곧은 생각인지도 모를 일이다. 버리자. 버린다는 것은 비우는 것이요 비운다는 것은 내 본심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던가.

 

내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한 권의 책이 없어도 행복했었다. 그 시절 내겐 꿈과 사랑이 넘쳐 났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비록 부귀영화는 누리지 못할지언정 꽤 많은 책을 소유하고 있다. 그 소유는 어렸을 때부터 평생을 간직한 내 소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 게 짐이 되고 고민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뭔가 넘치면 버리는 게 순리일 게다.

 

결국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나는 내 고향에 있는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 '제가 평생 소장했던 책을 마을문고나 고아원 아니면 도서관에 보내고 싶습니다. 혹 지금도 책을 읽고 싶어도 책이 없어 읽지 못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들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왜 그 많은 책을 내놓으려고 하십니까?"  

'글쎄요. 굳이 밝히자면 지금으로부터 40여 년전 나는 고향에서 마을문고 운동을 했었지요.

 

당시 서울신문에 시골 청소년들에게 책을 보내줄 독지가를 찾는다는 기사를 써 보냈는데 하루는 여고를 졸업하고 수녀원으로 간다는 어느 소녀로부터 한 박스의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책 속에는 소녀가 모아 둔 갖가지 꽃잎이랑 나뭇잎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소녀의 꿈들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나는 너무 감격해서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면 나도 책을 누구에게 인가 보내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 약속을 지키게 되나 봅니다." 

 

신문사 기자가 칭찬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며칠 후엔 신문에 기사를 실어 주었다. 그러나 내 어찌 칭찬을 받자고 한 일인가. 그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언젠가는 다 버리고 갈 게 아니던가. 결국은 다 버리고 갈 인생. 그 날 그 날 누구에게 인가 작은 기쁨이라도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