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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기억 저편의 냄새 / 이윤경

기억 저편의 냄새 / 이윤경

 

 

마당으로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올케 언니와 어머니가 마주 앉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큰오빠는 땀을 뻘뻘 흘려 가며 아궁이에 불을 지펴 돼지고기를 삶고 있었다. 나는 차를 몰고 읍내 방앗간에 가서 미리 맞춰 둔 떡을 찾아오는 길이었다.

 

그날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지방을 쓰기 위해 펜을 찾느라 서랍을 뒤지다가 오래된 작은 통 하나를 찾아냈다. 오래 전에 숨겨 두었던 보물 상자를 찾아낸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통 속에는 바싹 마른 나무 조각 몇 개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무 조각은 수십 년 동안 서랍 안에 갇혀서 화석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나무 조각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희미하지만 분명 향나무 냄새였다.

 

그 향나무 조각 속에는 내가 기억하는 오래된 냄새들이 향수처럼 조합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가끔씩 그 통을 열어 놓고 나무의 냄새를 맡았다. 무슨 비밀스런 의식이라도 치르듯 아무도 없을 때면 서랍을 열고는 했다. 그 냄새를 통해 나는 아버지와 만났다.

 

잿빛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향나무를 잘게 쪼개고 있는 아버지의 등이 보였다. 작은 구멍이 빽빽하게 뚫려 있는 은색 향로에서 향나무 조각들이 타들어 가면 은은한 향내가 연기가 되어 방 안 가득 퍼져 나왔다. 두루마기 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제기에 수저 부딪히는 낮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제사가 끝나면 양손으로 향로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향냄새도 사라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해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작은 어깨에 책가방을 메고 나서는 내가 안쓰러운 듯, 아버지는 날마다 마을 어귀까지 나를 업어 주셨다. 쉰이 지나 얻은 늦둥이 딸이라 늘 곁에다 끼고 다니셨다. 동네 어른들이 혀를 차며 애 버릇 나빠진다고 걱정을 해도 아버지는 언제나 내 앞에 등을 내미셨다.

 

봄비가 제법 굵게 내리던 날 오후였다. 아침에 우산을 준비해 가지 못했던 나는 비를 맞으며 교문을 나서려는 참이었다. 교문 앞에 까만 우산을 들고 아버지가 서 계셨다. 언제부터 거기 계셨는지 바지 자락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쭈그리고 앉아 내 앞에 등을 내밀었다. 나는 우산을 받아 들고 등에 업혔다. 작은 우산은 비를 다 가려 주지 못했다. 아버지의 한쪽 어깨가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등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로 내 배는 따뜻해졌다. 강아지처럼 목덜미에다 코를 박고는 킁킁거리며 아버지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로 어미와 새끼를 분별해 내는 짐승처럼 나는 잠결에도 냄새를 좇아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날 빗속에서 훅 끼쳐 오르던 아버지의 냄새가 지나온 많은 날 동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내가 유난히 민감한 후각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아버지의 냄새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밤이면 자리에 누워 비 오던 날의 장면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넘게 그려 보았다. 사람을 만날 때 첫인상을 중요하게 여기듯 나는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냄새에 의해 호감을 갖기도 하고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냄새는 내게 단순한 감각만이 아니라 기억을 끌어 오는 도구였다.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우리 곁을 떠나 아버지가 먼 곳으로 가셨다. 그날도 마당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잔칫날처럼 솥을 걸어 고기를 삶고 전을 부치느라 마당이 분주했다. 진한 향냄새가 빈소가 차려진 안방을 가득 채웠다.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는 길에 냇가에서 옷가지와 아버지가 쓰시던 이불을 태웠다. 나는 조금 떨어진 방천 위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하늘로 솟구치는 냄새를 맡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한동안 아버지의 냄새는 집 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지고 다니시던 지게의 등받이에도, 미처 태우지 못했던 초록색 새마을 모자에서도 아버지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모자를 끌어안고 거기다 코를 박고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내가 없는 사이 어머니는 활활 타는 아궁이 속으로 모자를 던져 버렸다.

 

모자를 대신해 준 것이 서랍 속의 향나무 조각이었다. 아버지의 손으로 다듬어 놓은 나뭇조각들을 누가 쓸지도 몰라 내 앉은뱅이책상 밑에다 꼭꼭 숨겨 두었다. 혹여 어머니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문을 꼭 닫아걸고 향나무 조각을 만졌다. 손끝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는 거친 나무의 느낌과 냄새 속에서 아버지를 기억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냄새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가 않았다. 내 속에 각인된 아버지의 냄새. 그 냄새로 인해 내가 살아온 많은 날 동안 아버지가 나와 함께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향이 나는 물건들을 모으는 걸 좋아한다. 예쁜 유리병에 담긴 향수를 사 모으고 한 번씩 뿌려 본다. 아로마 향초를 피우고 잠이 들기도 한다. 사철 푸른 향나무를 제일 좋아해서 오가는 길목에서 향나무를 만나면 꼭 손으로 잎을 만져 본다. 손에 남는 은은한 향냄새와 자잘한 풀꽃들의 냄새를 좋아한다. 막 씻겨 놓은 아이에게서 나는 비누 냄새, 퇴근한 남편이 벗어 놓은 와이셔츠에서 나는 땀 냄새를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 모든 냄새의 밑바닥에는 기억의 저편에서 마르지 않고 솟아나는 아버지의 냄새가 묵직하게 깔려 있다.

 

엷은 향냄새가 제상이 차려진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의 아버지처럼 회색 두루마기를 걸친 큰오빠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께 술을 올린다. 절을 하는 내내 두루마기 자락이 바스락거린다. 나는 눈을 감고 아버지를 기억해 내려 애썼다. 향로에서 새어 나오는 향냄새 사이로 아버지의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