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벽 무너져 내리다 / 윤석희
천둥소리다. 우르르 꽝 천지가 흔들린다. 따닥따닥 따발총 소리로 시작되어 점점 커지더니 집채만 한 빙벽이 무너진다. 여기저기서 우뢰가 쏟아진다. 두리번거리지만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소리의 향방을 알 수 없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저 안 깊숙한 곳에서부터 만들어진 내부의 통곡이다. 비틀고 휘감아 돌면서 용틀임하며 솟구친다. 단단하게 뭉쳤던 것들이 깨져서 부셔지며 내는 파열음. 균열과 붕괴의 교향곡, 애티비티와 다이나믹의 합성음. 거대한 모레노 얼음산이 내는 대자연의 소리다. 장엄하다.
모레노빙산은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지정지로 아르헨티나의 로스글라시아레스 국립공원에 있다. 공원 안 백여 개의 빙하 중 가장 아름다운 빙벽을 자랑한다. 그 빙벽 무너지는 소리를 듣기 위해 먼 길을 왔다. 빙하 관광과 빙산 트레킹을 할 때보다 한결 설렌다. 숙소에서 만난 독일 청년이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영상 뿐 아니라 소리까지 담아두라는 당부를 한다. 눈과 귀와 사진기는 항상 대기 중이어야 한다는 거다.
조망대에 섰다. 웅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두렵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에 오르고 눈이 되어 다시 지상에 돌아온다. 눈이 얼음이 되고 얼음은 뭉쳐 빙산을 이뤘다. 한 때 뜨거운 태양과 더운 바람을 만나 가장자리나 끝자락 부분이 녹게 된다. 그 산이 다시 조금씩 빙식 되어 이동하면서 빙하곡을 만든다. 녹아내린 물이 길을 내며 흘러가면 물길 따라 균열이 생기고 다시 틈새가 크게 벌어진다. 이렇게 진행이 계속되다 마침내 빙산에서 분리되면서 무너져 내린다. 이때 엄청난 굉음을 동반한다. 녹아내린 물은 호수를 이루고 밑 부분을 물속에서 다시 녹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녹는 시기도 여름 한 철뿐 또 다시 빙벽을 이루고 빙산이 된다. 수억만 년 빙하가 흐르고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사연과 그들만의 내력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얼음이 물로 살 때는 얼마나 자유로웠으며 수증기로 살 때는 또 얼마나 가벼웠을까. 방종의 매듭인가. 순환의 질서인가. 이 빙산은 견딜 수 없는 추위와 형벌의 시간을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의연하게 인내하고 있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픔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일 게다. 얼음산이 품고 있는 고통을 인간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영원 같은 세월을 견디며 색마저 멍들어 희다 못해 퍼렇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인가. 모진 바람 탓인가. 빙하의 윗면은 찢기고 깎여서 칼끝처럼 날카롭다. 그렇게 내부를 꽁꽁 멀리고도 모자라 날을 세우고 있다. 깃발처럼 염원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영영 끝을 내지 못한다 해도 가장자리는 녹고 있다. 통곡소리와 환희의 함성을 토해내면서.
먼저 물이 된 것이 뒤 따라 합류하는 얼음조각을 호수에서 만난다. 빙산에서 떨어져 나와 물속을 뒹구는 얼음 덩어리는 참으로 편안하다. 작은 덩이로 떠다니다 서서히 물이 된다. 무사히 해산하고 난 어미처럼 지쳐있어도 평화롭다. 이 때문에 호수는 조용할 새가 없다. 새로 유입되는 얼음덩이의 환영식도 성대하다. 크기에 따라 자리를 내주며 거센 파도를 일으킨다. 파장이 무늬로 새 삶을 시작하는 무너진 빙벽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축복한다.
서로가 너무 달랐다. 한 사람은 완벽을 추구했고 한 사람은 듬성듬성 살았다. 한 이는 홀로이길 원했고 다른 이는 떠들썩한 사람 속을 좋아했다. 생각을 즐기는 사람은 섬세했고 행동을 앞세우는 사람은 무뎠다. 부지런과 게으름이 충돌했다. 논리적인 사고와 즉흥적 직관이 부딪쳤다. 소심과 무심이 한데 섞이질 못했다. 다름을 모자람이라 억지 부리며 골이 패여 갔다. 감정이 냉각되어 얼음이 되고 얼음이 점점 쌓여 벽을 이뤘다.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빙벽이 됐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벽은 견고해지고 불신은 더해갔다. 각기 빙벽 속에 자신을 가두고 날카로운 날에 벤 상처를 아파했다. 벽속에 오래 갇혀 몸도 마음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거대한 모레노의 빙벽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가. 아픈 세월 걷어차고 기꺼이 물이 되지 않는가. 응어리진 옹이를 괴성을 내지르며 풀어내지 않는가. 빙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남편과 손을 잡는다.
내 안에서도 함성이 들린다. 꼬이고 뒤틀리고 어그러진 심사가 휘휘 돌아 요동치며 퍼지는 소리가, 그저 다를 뿐이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고 맞고 틀림이 아니다. 모자람을 채우려 하지 않아도 되고 야속함을 잊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 다름, 그것만 인정하면 무너질 허술한 빙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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