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주꾸미의 반란 / 김재희

주꾸미의 반란 / 김재희 

 

 

일상에서의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의 얼굴들이 희희낙락하다. 요즘 한창인 주꾸미 철을 맞아 부안 나들이를 나선 것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어딘가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몇 대의 차로 끼리끼리 나누어 탄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짭쪼롬한 바닷바람이 코에 스며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격포항이다.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발걸음들을 잡는 호객이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다. 하여 바다도 식후경이라며 식당부터 들렀다. 그곳에는 부안 분들이 먼저 와서 주인인 듯 우리들을 반긴다. 이미 준비된 식탁 위엔 먹음직스런 음식이 즐비하다.

 

냄비에서는 육수가 끓고 있고 그 옆엔 아직 살아 꿈틀거리는 주꾸미가 접시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나가 보았자 부처님 손바닥이다.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몸부림이고 사람들의 눈엔 그것이 그저 구경거리다. 가만히 하는 꼴을 보고 있다가 간간이 저들을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는다.

 

다리 빨판의 흡인력이 대단하다. 몸통을 잡고 들어 올리려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을 상하로 늘이는 것처럼 길게 늘어나면서도 발은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접시가 들먹인다. 어쩌다 가만히 있는 동안엔 사람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꿈쩍 놀라 힘껏 움츠러들었다가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터미네이터? 같다.

 

저들은 잠시 후면 사람의 먹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이탈을 꿈꾸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을 알 수가 없으니 저들의 행동은 이탈이 아니라 자신이 있었던 본연의 자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일 것이다.

 

다리에 힘을 주고 힘껏 밀어붙이면 한없이 넓은 공간으로 떠다니던 자유를 갈망하고 먹이사슬 속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도 공생하며 살았던 팽팽한 삶을 찾고 있는 것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덫에 걸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뛰어든 세상에서 갈 길을 몰라 허둥대는 것이 저들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거부할 수도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삶의 한순간이 되어 버렸다.

 

저들에게 잠시나마 남아 있는 시간은 참으로 짧고도 귀한 시간이다. 그러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저들은 삶의 끝임을 알지 못하리라. 다만 전처럼 자유롭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을 뿐이다.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가 무언가가 몸체에 닿은 듯싶으면 반사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어떤 놈은 까만 먹물을 쏘아 댄다. 아주 당차고 야멸친 반란이다. 자신을 찾고자 하는 반란, 그것은 살아 있는 생명에게 주어진 본능이리라.

 

 

종족을 번식시켜야 하는 본능,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 더 나은 생활을 위한 경제적 자립, 남보다 잘나가고 싶은 욕망 등의 울타리 안에 갇혀 우왕좌왕하고 있는 우리 또한 어느 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삶이다. 우리가 주꾸미의 앞일을 알고 있듯 우리 또한 신이 알고 있는 주어진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이 어느 쪽인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맞이하는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생명이다.

 

이제 지나온 시간보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나이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그리 어긋나지는 않았던 세월이다. 되돌아보면 마음 아픈 일도 많았지만 몇 가지 좋은 일에 그것들은 깊이 묻어 둘 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만하면 잘 살아온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나이이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폭풍이 불어올지 모르는 일이다. 잘되어 간다고 믿었던 일이 어느 순간에 구멍이 날 수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설령 그렇더라도 나름대로 대처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한 나이라고 자위해 보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객관적인 입장에 서 있을 땐 누구나 긍정적이고 너그러운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당하는 일 앞에선 이성을 잃기 쉽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인성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언제나 하찮은 감정 앞에서도 우왕좌왕하는 인간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쩌면 지금 어느 막다른 골목에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고 헛된 욕망과 절망과 질시와 미움으로 기운을 다 소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 주꾸미를 닮은 몸짓으로 어설픈 반란을 일으키며 갈 길을 찾아 더듬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