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 고수부
지난 주 종로 2가를 지나 청계천을 건너 걸어갔다. 봄기운이 가득 찬 천변(川邊)에 젊은이들이 짝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온 천지가 단풍으로 물들여져 있다며 가을 노래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찾아 왔으니 세월이 이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세월과 함께 흘러간 추억의 편린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나에게도 저런 추억이 있었던가?
추억,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이라 한들 지나가고 나면 그만인 것을,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했다. 우연히 을지문고에서 책을 고르다가 산 책, 미국 LA에서 거주하는 S씨 수필집을 읽으며 눈이 머무르는 곳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눈보라와 천둥 번개를, 살을 에는 칼바람을, 그리고 뼛속 깊은 외로움 까지도 다 견디렵니다. 사랑이란 아픔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지요. 지나간 날은 아름다운 것. 꿈은 즐거운 것.
이 작가에게도 그리웠던 추억이 있었나보다. 아니 누구에게나 애틋한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센티멘털해졌다. 추억과 감성이 이우러져 음악이 탄생된다더니 이럴 땐 음악 감상이라도 젖어볼까…. 한참 걷다가 정신이 바짝 났다.
‘아웃라이어!’
문우 C가 소개해 준 책, 요즘 베스트셀러로 인기 한창인 미국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쓴 것으로 좋은 글들이 많았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문구가 있다.
“성공은 무서운 집중력과 반복적 학습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의 천재성은 어른이 된 후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아웃라이어(Outlier)란 보통사람들의 범위를 뛰어넘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헨리 포드, 앤드류 카네기, 존 록펠러처럼 성공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편안하게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살펴본 성공사례 중 어느 누구도 동료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그 결과를 얻은 사람은 없었다.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중독되어 모니터 앞에서 살았다. 성공하는 모든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지금 청계천 흐르는 물을 보고 감상에 젖어 지나간 추억을 더듬어 본들 한 번 흘러간 과거를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톨스토이가 그랬던가. ‘인생에 있어서 소중한 것은 지나간 과거도 앞으로 올 미래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며, 현재 하고 있는 일이다.’라고.
현실을 직시하자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 60고개를 훌쩍 넘어 70을 향하여 달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탄 인생열차는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고 한다. 나이 30은 30마일로 달리지만 50세가 되면 50마일로 달리고 60세는 60마일로 달린다고 말이다.
나의 인생열차의 속도는 60마일을 넘어 질주하고 있다. 한 눈 팔다가는 순식간에 수십 마일이 지나가버린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 남산을 산책하던 때가 바로 어제만 같은데 한 해가 훌쩍 지나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으니 조금 있으면 또 무더운 여름이 오고 가을은 금세 내 앞에서 서성거리겠지. 오늘 이라는 시간은 한번 지나가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센티멘털한 감정을 추스르고 빠른 걸음으로 청계천을 지나 서점으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 낸 창작물들, 세기의 철인과 현인 그리고 대 문호들이 살아온 인생을 만나보기 위해, 그리고 철학을 배우기 위해 책을 골랐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갔을까? 앞서간 선각자들의 책속에서 작가들의 삶을 만나보면 숙연해진다. 까뮈의 <이방인>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고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도 마음이 끌린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사색하는 일이 내가 현재 직면한 과제다. 책을 한 아름 사가지고 전철 안에서 생각해 보았다. ‘인생은 낭만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존재’라고.
현실을 무시한 낭만은 허무맹랑한 공상이나 망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낭만을 무시한 현실은 무미건조하다. 목석같은 사나이는 매력 없다. 현실은 육신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주지만, 낭만은 예술과 꿈을 키워주는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에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황하거나 갈등해선 안 된다. 지나치게 낭만에 치우쳐도 안 되고 지나치게 현실에 치우쳐도 안 된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중용(中庸)의 지혜를 발휘해야겠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중심을 지키며 사는 것, 즉 자신의 마음을 자제할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이야 말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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