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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솜이불 / 류영택

솜이불 / 류영택

 

 

 

 

베란다에 내놓은 이불을 바라본다. 겨우내 내가 덮고 자던 이불이다. 홑청이 뜯겨져 누렇게 빛이 바랜 속통에는 군데군데 얼룩이 져 보기에도 불결해 보인다. 이것을 왜 여기다 뒀지? 뚤뚤 말아놓은 것을 보니 햇빛에 말리려고 내놓은 건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이불 홑청을 뜯던 아내는 가벼운 이불 놔두고 솜이불을 고집하는 사람은 당신뿐일 거라며 못 마땅해 했었다. 시위라도 하듯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에 놔둔 걸 보니 내게 불만이 있어 그러는 것 같았다.

 

삽 십여 년 전, 형수가 시집을 오면서 신혼 예단으로 이불을 두 채를 가져왔다. 원앙금침자신들이 덮고 잘 이불과 어머니께 드릴 예단 이불이다. 당시만 해도 출가 시킬 딸이 있으면 목화농사를 지었다. 이불 한 채를 만들기까지는 손이 많이 간다. 씨를 뿌리고 삭이 나면 잡초를 뽑고, 물기를 머금은 다래를 따먹을까 번을 서고, 하얀 솜이 탁 터져 나오면 말리고. 마치 갓난애를 키워 시집보내는 것처럼 정성을 들였다.

예물로 받은 이불은 너무나 커서 방에 다 펼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이불을 두 채로 만들어 한 채는 당신께서 사용하고 한 채는 농 안에 간직해오다 결혼을 앞둔 내게 주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형수와 달리 빈손으로 시집온 아내가 측은해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겨울만 되면 어머니가 준 솜이불만 고집했다. 아내도 불평 없이 그 이불을 덮고 잤다.

작년겨울 아내는 솜이불이 무겁다며 가벼운 캐시미론 이불을 내놓았다. 나는 그러마. 하고 별 생각 없이 새 이불을 덮었다.

솜이불에 길들여진 나는 아내와 달리 캐시미론 이불이 몸에 맞지 않았다. 너무 가벼워 이불을 덮었는지 실감이 나지 않고 왠지 가슴이 허전하고 마음이 불안정해서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솜이불처럼 몸을 적당히 누르는, 아늑한 기분에 젖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나는 각자의 이불을 갖게 됐다. 다시 솜이불을 덮으니 좋긴 한데 또 다른 고민꺼리가 생겼다. 나는 아내를 팔베개해서 눕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혼 후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다. 한 방에 자면서도 각방을 써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각자 이불을 뚤뚤 만 채 '여보, 자나?' 안부를 묻게 되고 이산가족도 아니면서 이불을 경계로 서로를 그리워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전함은 더해왔다. 나는 아내와 이불,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직면 하게 됐다.

어느 것을 포기하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둘 다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손이 허전해 올 때마다 팔을 뻗었다. 하지만 이불의 간격만큼 아내의 머리는 멀어져 있었다. 몸을 바짝 붙이고 팔을 내밀었지만 아내의 머리는 겨드랑이가 아닌 팔목에 놓였다.

"여보, 당신이 내 이불속으로 오면 안 될까?"

"솜이불이 무거워서 숨을 쉴 수가 없으니 당신이 내 이불로 오세요."

처음에는 애원이 가득담긴 목소리가 어느새 논쟁으로 바꿔갔다.

"부부란 한 이불속에 자야지. 퍼떡 건너오지 못하겠소!"

"큰소리칠게 따로 있지, 안 말릴 테니 당신이 건너오세요."

목마른 사람 샘 판다고 나는 아내의 이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새벽녘 잠에서 깼다. 언제 내 이불속으로 건너왔는지 아내와 나는 각자 이불을 덮고 있었다.

게임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재미가 없다. 아무리 내가 아쉬워 찾지만 아내도 양심이 있으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남의 집 담장을 넘나드는 것도 아니고 나만 손해 볼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여보, 이럴게 아니라 내가 두 번 찾으면 답례로 당신이 한 번은 와주는 게 예의 아니겠소?"

"누가 찾아 달라 했어요. 나는 아쉽지 않으니 오든지 말든지 당신 알아서 하세요. !"

"참말로 이칼끼가!"

"누가 뭐라 했어요. 잠이나 잡시다."

내가 보기에도 아내는 하나도 답답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오기가 있지. 나는 끝까지 책임 지지 못할 말을 하고 말았다.

"내가 당신 이불속에 들어가면 성을 가린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다 돼가도 아내는 늘 그대로였다. 아침밥을 차려주고 도시락도 쌌다. 잠자리만 달라졌을 뿐 아내는 변하게 없었다. 그럴수록 답답한 쪽은 나였다.

성을 가린다고 큰소리 쳐놓고 이제 와서 그 말을 번복한다는 것도 체면 꾸기는 일이고, 이 일을 어쩌지. 달리 방법이 없었던 나는 하루하루를 아내의 눈치만 살폈다.

한 달이 지날 쯤 나는 아내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서로 떨어져 자는 게 내심 걱정이 됐던지 아내는 누군가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던 것 같았다.

아내는 누가 그런다며, 부부가 오랫동안 떨어져 자면 큰일이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식으로는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솜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있는 것 같다며, 혹시 숨겨놓은 여자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잔뜩 화난 얼굴을 하고는 고함을 쳤다. 사람을 뭐로 보고 말이야! 내가 세게 나가자 아내는 아니면 됐지 그렇게 오버할 것 까진 없다며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내는 중대발표라도 할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이다. '여보, 이불솜을 새로 탑시다.' 아내는 지금 이불은 너무 무겁다며 얇고 가볍게 해서 함께 자자고 했다.

아내의 말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들떠서 대답을 하면 지금까지 그 긴긴밤을 참아온 게 아무른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나는 한껏 목소리에 무게를 실었다. 나는 무거운 게 좋다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내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당신 알아서 하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라도 아내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한동안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다니던 아내는 어깨가 축 쳐진 모습으로 '여보, 요새는 솜을 타는 데가 없데요.'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하긴 요즘 세상에 솜이불 덮고 자는 사람이 있겠는가. 오리털 이불도 마다하는 세상에 어느 누가 무거운 이불을 덮을까. 아내의 그 말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찡해왔다.

나는 그러는 아내가 너무나 안 돼 보여 위로도 해줄 겸 캐시미론이불을 찾았다. 이불이 가벼워 가슴이 허전해오면 여보, 당신 팔을 내 가슴에 올리소. 그래도 허전해서 참을 수가 없으면 얼굴까지 올려놓으소. 캐시미론이불에 즉응을 하느라 아내를 끄집어 당겼다 밀었다하다 중국에는 엎디려 내 몸으로 가슴을 누르고 잠을 청했지만 끝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을 바라본다. 정말 솜을 타는 곳이 없으면 어쩌지. 누렇게 변해버린 것을 그냥 홑청만 갈아 입혀 덮을 수도 없고, 고민에 잠긴 내 눈에 이불에 묻은 검버섯 자국이 어머니얼굴처럼 보였다.

아범아, 어쩌기는 뭘 어째 이참에 버리면 돼지. 엄마, 솜이불이 없으면 가슴이 허전해서 잠을 못자는 데도요?

아따, 별 걱정을 다한다. 그러면 한 여름에도 이불 덮고자냐? 엄마도 참, 여름에 누가 이불 덮고 잡니까.

그럼, 겨울을 여름이다 생각하고 자면 되지, 그나저나 이제 이불에서 놓여날 때도 안됐냐? 어멈 생각도 해야지 그게 무슨 짓이고 멀쩡한 서방 놔두고 생과부 만들일 있다더냐. 내 생각일랑 말고 어멈한테나 잘 해라. 그래도, 그렇죠. 이 이불이 어떤 이불인데,,,

아무리 자문자답을 해보지만 쉽게 마음을 정할 수가 없다.

 

하찮은 것일지라도 아내는 물건을 내다버릴 때는 한번쯤 내게 의논을 해왔다. 아내는 아직 이불에 대해선 한 번도 내게 물어온 적이 없다. 아내는 행여나 내가 이불을 버리면 어떻겠냐. 며 물어 올까봐 나보다 더 신경 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해온 것은 아니지만 아내는 솜이불을 원앙금침으로 생각한다. 시위하듯 저렇게 놔둔 것도 자신만 신경 쓰는 게 억울해서 내게 짐을 지우고 싶어 그러는 것이지 결코 버리고 싶어 그러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고 싶었으면 벌써 옛날에 버렸지 지금껏 그냥 놔둘 턱이 없었다. 올 겨울에도 각방 쓰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솜 타는 곳을 수소문해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