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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뻐꾸기, 신문에서 울다 / 윤주홍

뻐꾸기, 신문에서 울다 / 윤주홍

 

 

 

산에 녹음이 짙어지고 아카시아 꽃이 피면 그 속에 숨었던 뻐꾹새가 우짖는다. 가슴에 옛 고향집 뒷동산이 그리움으로 펼쳐지고 보리밭머리 숲에서 울어대는 뻐꾸기 울음 마디마디 들리는 듯하다. 할머니의 한이 서린 한숨 꺾이듯 보리 고개를 몰로 넘어와도 보리이삭은 아직 설었던 고향 뻐꾸기 울음.

애당초 뻐꾸기는 둥지를 틀 작심도 없다. 같은 후조인 꾀꼬리나 개개비, 오목눈이가 새로 둥지를 틀고 산란의 때를 시계처럼 꼭 맞추어 자기 알을 섞어 낳는 속임수로 본색을 드러내고 멋쩍은 노래만 울어댄다. 보다 더 기막힌 일은 겨우 탁란(托卵)으로 남의 체온을 빌려 5일 먼저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아직 눈도 뜨지 않은 빨간 알몸으로 숙조(宿鳥) 새끼나 알을 등에 업고 둥지 밖으로 밀어 추락사 시키는 혐오한 짓은 목불견이다.

그리고 독점한 둥지에서 먹이도 독식하는 악업(惡業)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개개비부부는 둥지에 가득 찬 뻐꾸기새끼를 보며 껌벅일 뿐 음흉한 흉계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먹이를 졸라대며 벌린 큰 입을 채우느라 혼신의 힘을 다한다.

수고란 겨우 노래뿐 남이 키워놓은 새기가 못내 궁금하고 보고 싶어 뻐꾸기는 뻐뻑 뻐국! 뻐꾹! 절절한 모정을 담아 새끼를 불러낸다. 염치도 없이 근처 숲에 앉아 새벽부터, 소낙비 속에서도 울음이 얼마나 절절하기에 사람들의 마음까지 건드려 정서를 우려내어 봄을 함께 울게 한다.

그러기에 어느 시인은 아침 뻐꾸기울음을 저승의 소리처럼 가물가물 들리는 / 아침 뻐꾸기 소리라 노래했다.

 

<뻐꾸기 둥지 위에>라는 옛 영화 생각이 난다. 평생을 바쳐 이뤄놓은 남의 부와 공명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취한 사람이 오히려 더 잘 산다는 부조리한 세상을 고발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오늘 아침 신문을 펴들었다. 결혼반지는 물론 평생을 다 바쳐 키워온 사립학교를 반객위주(反客爲主)하려 드는 뻐꾸기 소리가 요란하다. 뻐꾸기 같은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