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낚시 / 최태준
펜실베이니아의 휴양지 포코노의 여름은 싱그러웠다. 우리 가족은 처제 부부와 숲속 펜션에 묵었는데 인근에 연못이 하나 있었다. 유리같이 맑은 물, 거기 비친 주변의 풍광은 몽환적이었다. 월든가의 소로우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도시의 번뇌가 일순간에 날아가는 듯했다.
연못가에 앉아 동서에게 빌린 낚싯대를 드리웠다. 미끼를 던지면 붕어가 입질을 했고, 당기면 은빛 배를 퍼덕이며 공중에 포물선을 그렸다. 그렇게 신나는 낚시는 처음이었고, 하찮은 나의 조력이 무색했다.
저녁에 요리를 잘하는 동서가 푸짐한 붕어 매운탕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행의 포만감 때문인지 무슨 이유인지 매운탕 맛이 형편없었다. 조리법에 의심을 두고 이튿날 다시 연못을 찾았다. 그러나 분위가가 사뭇 달랐다. 수면 아래 무슨 경계령이라도 내려졌는지 붕어가 입질을 하지 않았다.
사춘기의 어느 초여름날, 낚시를 몹시 하고 싶었다. 이웃 형에게 낚싯대를 빌려 산자락의 저수지로 내달렸다. 낚시래야 어깨너머로 구경한 게 전부였는데 그날은 내가 무엇에 홀린 게 분명했다. 주변 산이 수면에 잠기고 하늘도 흰 구름도 물에 갇혔다. 그 도취된 풍경이 나를 어딘가로 마냥 이끌었다. 휘익 휘파람을 불면 물속 세상이 일렁거렸다. 이산 저산에서 암수가 서로 화답하는 뻐꾸기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을 두드렸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비릿한 체취가 훈풍을 타고 날아와 코에 달라붙었다. 외로웠다.
찌를 둘러싼 물속의 산들이 꿈틀거려 고개를 드니 명화 속 나신의 여인이 저만치 비스듬히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풍만한 산등과 후미진 계곡은 사춘기 소년의 상상력을 부추겼다. 머릿속에 누드를 그리고 지우는 가운데 리비도가 고개를 들었다. 몸을 관통하는 묘한 기운 속에서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열기를 식히려고 저수지에 풍덩 뛰어들었다.
피라미 하나 낚지 못하고 귀갓길에 올랐다. 나의 첫 낚시는 허무하게도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옷을 추스르며 초록빛 벼가 무성한 논둑을 걷자니 따가운 햇살이 등짝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날은 거듭 벌을 받았다. 낚싯대를 돌려주려고 담 너머로 이웃 형에게 던졌는데 바늘이 내 왼쪽 검지에 꽂혔다. 깊게 박힌 완강한 바늘을 달고 보건소로 달렸다. 마취약도 없는 돌팔이 의사가 맨살을 헤집고 펜치로 바늘을 뽑는 바람에 평생 잊지 못할 통증과 함께 검지에 지문 파열의 상흔을 남겼다.
두 번째 낚시는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후 낙동강 하류의 남지에서 있었다. 법학을 공부한 직속 상사가 사사건건 까다로워서 뻑뻑한 관계에 기름이나 칠 요량으로 일박 이일 주말 낚시에 그를 따라나섰다. 하룻밤을 함께 지새우면 정이 든다는 세상 이치를 따른 것이었다.
그해 여름은 강수량이 많아 가장자리까지 올라온 강물이 도도하게 흘러내렸다. 강변 둔덕에 텐트를 쳤다. 미끼로 지렁이를 끼우곤 떡밥을 붙여 강의 중심을 향해 낚싯줄을 힘껏 내던졌다. 팽팽한 줄에 두 눈을 고정하고 방울이 울리길 기다렸다. 연신 신호가 왔고, 중의 끝에서 강하게 잡아당길 때 힘껏 낚아챘다. 월척 전후의 잉어를 열 마리 남짓이나 낚았다.
낚시 경험이 많고 이미 전문가 수준인 상사가 무슨 비법이라도 있느냐며 흘낏 내 자리를 넘겨다보곤 했다. 그날 저녁, 나만의 레시피로 잉어 매운탕을 끓였는데 그가 맛있다고 여러 번이나 칭찬을 했다. 나의 낚시 실력과 매운탕 솜씨에 그가 감동했다면 내가 그를 제대로 낚은 셈이었다. 자정쯤에 잠을 청했다. 수면 사이로 그의 헛기침 소리가 가끔 들려왔다. 그는 밤새 낚시에 매달렸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아스라한 강의 수면 위로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알 듯 말 듯 어떤 정조가 가슴속에 어렴풋이 차오름을 느꼈다. 그날 나는 맞선 약속이 있었다. 상사에게 미리 말하지 못한 게 마음에 결렸다. 퀭한 눈으로 다시 투지를 다지는 그에게 어렵사리 말을 꺼냈더니 흔쾌히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 강을 떠나며 그는 그물을 친 어부한테서 월척 잉어 여러 마리를 샀다. 나의 잉어도 모두 그의 어롱에 넣어 주었다.
그날 오후 햇볕에 탄 새까만 얼굴로 맞선을 보았고, 나는 첫눈에 상대 여성에게 반했다. 우리는 몇 번 만났지만 궁합 문제로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2년이 경과한 어느 날 우리는 우연처럼 다시 만났고, 나는 곧 청혼을 서둘렀다. 일단 던진 낚싯줄에 조급증을 내지 않고 느슨하게라도 잡고 있으면 기회는 오는 법이다.
포코노에서 휴가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마음은 한결 거벼웠다. 도도히 흐르는 델라웨어 강을 옆에 끼고 우리는 멀고 먼 길을 달리고 달렸다. 어이해 우리 가족이 이렇게 먼 곳까지 흘러왔다는 말인가. 나의 주재원 근무가 좋든 싫든 간에 가족의 삶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음악 사이로 들뜬 목소리가 들려 백미러로 뒷좌석을 흘끗 보았다. 내 소중한 포로들! 저수지에서 홀로 미끼 없는 낚싯대를 드리웠던 소년이 반세기가 지난 후에 지구의 반대편 도로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태우고 달리다니. 낙동강에서 어롱 가득 잉어를 담아 가던 그 상상의 포만감이 이랬을까. 가속기에 올려놓은 오른발에 힘이 들어갔다. 아서라, 서둘 필요가 없다. 어롱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저 간교하고 잔혹한 게임은 그만두자. 내게 든든한 가족이 있는데 무엇을 더 바라고 낚으랴. 이틀간의 포코노 낚시가 일러 준 따끔한 교훈은 과욕 부리지 말고 순연하게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모두들 낮잠에 빠져들어 스피드를 줄이고 핸들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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