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가 아프리카노 / 김인기
내가 몇몇 사람들과 어울려 커피전문점에 들어가 차림표를 보았다. 카페라떼·카푸치노·비엔나……. 또 내가 잊어버린 무엇무엇……. 이렇게 커피 종류가 많은 데에도 다 이유가 있으렷다. 연인이 그저 좋아서 함께 마시는 커피와 친구들이 심심해서 마시는 커피가 같을 수야 없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좀 둔감한 작자도 뭘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분위기도 윤택해질 테니까.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누가 아메리카노를 시키기에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덩달아 이렇게 주문하고 말았다.
“아, 나도 아프리카노!”
그러자 곁에 있던 분이 그게 ‘아프리카노’가 아니고 ‘아메리카노’라고 했다.
“아, 아메리카노!”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는 이랬다.
‘아프리카노나 아메리카노나 그게 뭐 대수인가…….’
누가 그랬던가? 무식한 게 용감한 것과 통한다고. 이것도 지극히 의심스러운 속설이겠으나, 나도 때로는 이렇게 믿고 편하게 지나친다. 그래도 내가 변명을 하자면, 오늘 내 ‘아프리카노’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으니, 그건 내가 아침에 아내와 장모님 이야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퉁가! 퉁가! 퉁가리 퉁가 퉁퉁가…….”
나는 아내 앞에서 장모님을 이렇게 놀려먹는다.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느냐?”
철딱서니가 없어도 너무 없다며, 누가 이렇게 힐난하면, 나로서도 할 말이야 없다. 그러나 사람들아! 누구나 나이에 따라 다 음전해야 한다면, 이것도 무척이나 따분하지 않을까? 특히나 나와 같은 성격의 인물은 이것도 고역이다.
‘그러니까, 철은 나중에 들기로 하고!’
그래서 나는 때때로 아내한테 이런다.
“퉁가리 퉁가 퉁퉁가 어르신께서는 잘 계신답디까?”
장모님은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 사는 원시부족 사람들과 닮았다. 시골 미용실에서 보글보글 말아버린 머리카락이나 대체로 햇볕에 그을려 시커먼 얼굴이나 또 그 옷차림에서 풍기는 느낌이 바로 그렇다. 원주민들이 긴 창(槍)을 잡고 자루를 땅에 탕탕 치며 주위를 빙빙 돌던 영화의 한 장면도 떠올랐다. 더군다나 장모님의 둥근 턱도 남방인의 특징을 오롯이 드러낸다.
“퉁가리 퉁가 퉁퉁가!”
이러니까 이 퉁가리는 민물고기와 무관하다. 내가 어릴 적 고향에서 그 놈들을 맨손으로 잡다가 가슴지느러미 가시에 찔려 피도 제법 흘렸는데, 무엇보다 장모님한테는 그런 가시가 없다. 나는 다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억양이 그런 가락으로 흐를 거라는 터무니없는 억측에 따랐을 뿐인데, 혹시나 그들이 이런 내 소리에 서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마음에도 역시 가시는 없다.
“그런데…….”
장모님한테는 이렇게 가시가 없는 게 난점이었다. 얼마 전 처가에 좀도둑이 다녀갔다. 이 동네에 낯선 사람이 없다. 장모님은 나이가 스물이 되기도 전에 이리로 시집을 와서 일흔이 넘도록 살았다. 이 어른은 새삼스럽게 문을 잠그고 말고 할 게 없었다. 그 직감도 거의 틀림이 없다.
‘이 인간이 이러고도 스스럼없이 이 집에 드나들고, 또 언젠가 이런 짓을 되풀이할 거야.’
이렇게 잘 알면서도 장모님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그 여편네를 매정하게 내치지도 못한다. 장모님한테는 가시가 없으니까. 그러면서 모녀가 수시로 송수화기를 들고 통화한다. 그래서 나도 이런저런 소식에 밝아서 한 달쯤 전에 있었던 사건도 안다.
‘삶은 달걀도 아니고 구운 달걀이라니?’
그런데도 장모님이 따로 사는 장남의 집에서 그걸 뻔히 보고도 며느리한테 한번 먹어보자 말을 못하였고, 며느리도 그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두루마리 화장지 한 개 값도 되지 않는 그 ‘구운 달걀’을 여태 맛보지 못했다니…….
‘아하, 그게 그렇기도 하구나.’
그렇다면 우리들한테 할 일이 있다.
“퉁퉁가 어르신이 여기로 오시면 일단 구운 달걀부터 사서…….”
내가 아침에 이러다가 저녁에 커피전문점에 들어갔으니, 그 ‘아메리카노’가 그만 ‘아프리카노’로 둔갑한 것이다. 더구나 이 어르신한테는 커피와 맺은 각별한 인연도 있었다.
그게 아마도 1970년대 어느 날이었으리라. 장인어른은 읍내에도 더러 다녔지만, 장모님은 그러지도 않아서 그런 요상한 걸 몰랐다. 그런데 이 집에 손님과 함께 이게 온 것이다. 장인어른이 이장(里長)이 된 바로 그 즈음이었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장모님은 알 수가 없어서, 이웃에 사는 새댁한테 자문을 구했는데, 그 결과가 인상적이었다. 두 여자가 커다란 양푼에 시커먼 물을 가득 담아 낸 것이다.
“이때 아버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게 아내의 증언인데, 여러 정황으로 보면, 이건 당연하다. 농촌에서 일하다 말고 조그만 잔에 커피를 담아 우아한 자세로 마신다는 것도 사실은 우스꽝스럽거나 요사스럽다. 그런다고 나도 정말 고상해질까? 에이, 치워라, 치워! 그러느니 나 차라리 대접에 막걸리나 부어 마시고 매운탕이나 한 솥 끓이겠다. 누가 이렇게 알고 당장 그 자리에서 그런 커피 따위야 내쳐버려도 그만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나름의 바탕이 있어야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려니, 방금 주문한 그 커피 아메리카노를 누가 내 앞 탁자에 얹어준다. 그런데 그 잔이 너무나 크다. 야아, 장모님이 손님들한테 내었던 그때 그 그릇도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커피의 양도 많아서, 이게 맹물이라면, 라면 한 개는 너끈히 끓이겠다. 퉁퉁가 어르신의 사위는 여전히 적성에도 맞지 않게 고상해질 뜻이 없다. 남들의 취향이야 의당 존중하겠지만, 내가 뭐 그러랴. 그래도 혹시 자신이 뭐라고 해야 한다면, 나는 가만히 한 손을 들고 천천히 흔들며 이럴까 싶다.
“퉁퉁가 아프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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