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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은어 / 이은희

은어 / 이은희

 

 

 

 

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파드득, 파드득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탄력 있게 두어 번 솟아올랐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녀석의 힘찬 꼬리 짓은 주기적으로 두 시간째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잠에 곯아떨어진 틈을 타 탈출을 꾀하려는가. 달아나 봐야 물속도 아닌 차 안, 양동이 안에서의 몸짓이다.

 

얼마 후, 은어의 몸부림은 허망한 몸짓임을 알렸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한 마리가 허연 배를 뒤집어 물 위로 둥둥 떠올랐다. 아이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녀석의 사체를 거두었다. 이제 남은 은어는 세 마리뿐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아는가. 아니 살아 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양 물고기들은 양동이 벽을 꼬리로 치며 솟아올랐다.

 

아침에 양동이를 들고 나서는 아이의 마음을 읽었어야 했다. 얼마 전부터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한 아이는 딴에 섬진강이 좋은 기회였으리라. 그러나 하루 코스로 하동 일대의 최 참판 댁과 화계장터, 쌍계사까지 두루 관람하기엔 빠듯한 일정이었다. 어른들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섬진강은 눈도장만 찍고 스칠 요량이었다.

 

아이는 일정을 챙기며 검질기게 고집을 부렸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아빠가 시간이 되면 물고기를 잡자고 했지 않느냐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함께 온 어린 사촌들도 한통속이 되었다. 만약 그냥 간다면 에둘러 댄 말이 자드락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어른으로 남을 순 없었다. 할 수 없이 돌아가려던 차를 돌려 강가로 향했다.

 

주변에서 급히 일회용 줄낚시를 샀다. 아들은 웃통을 벗고 팬티 차림으로 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낚시꾼처럼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무시로 튀어 오르는 은어란 놈은 한 마리도 아이에게 걸려들지 않았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놈을 쫓기라도 할 양 아이는 강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커지고 불안한 가슴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산 그림자가 길게 물 위에 늘어졌다. 물살에 투영된 반짝이는 은빛물살도 점점 스러지고, 따끈따끈하던 강 돌의 온기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떠나도 청주에 도착하려면 밤 11시가 훌쩍 넘을 것이다. 마음이 조급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고 소리쳐 보지만, 물고기를 손에 쥐지 못한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은어 낚시꾼들도 집에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물고기에 목을 매는 아이의 꼴을 보다 못한 난 낚시꾼에게 다가갔다. 물속에 들어가 있는 아들을 가리키며 사정 설명을 하며, 물고기를 두어 마리 팔면 안 되느냐 물었다. 그는 맘씨 좋은 아저씨였다. 그물 속에서 파닥대는 은어 네 마리를 선뜻 내게 건네주었다.

 

은어는 몹시 예민하고 까다로운 놈이었다. 잠시도 가만있질 않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느라 파닥거렸다. 큰 물에서 살던 물고기라 작은 양동이가 몹시 답답했으리라. 성미가 까다로운 놈이라 산 채로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낚시꾼 아저씨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결국 은어의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는 낚시꾼이지 않겠느냐고 자족의 말을 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얄팍한 판단으로 은어를 가지고 올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탈이었다. 좀 늦은 귀가면 어떠하랴. 주위가 어둑어둑하여 아이가 지쳐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았으리라. 그러면 은어의 죽음으로 아들이 가슴 아파하는 모습은 보진 않았을 게 아닌가. 나의 안일한 태도는 열대어종 구피의 출산 시에도 이어졌다.

 

배불뚝이 구피가 움직이기 힘겨운지 수조의 벽면에 머리를 기대고 끙끙거렸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릅뜬 두 눈과 온몸에 힘을 주는 듯 부르르 떨었다. 모든 출산이 그러하듯 창조의 시간은 고통이 따르는 듯했다. 드디어 꽁지 아래에서 검은 꼬리가 보이는가 싶더니 새끼가 툭, 힘차게 헤엄쳐 나갔다. 한 시간여 바라본 작디작은 생명의 탄생은 신비스런 광경이었다.

 

밤새 셀 수 없이 많은 새끼를 낳았던가 보다. 수조 안에는 치어들이 고물고물, 까만 점들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몇 마리를 낳았는지 궁금하여 세어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셀 수가 없었다. 수십 마리의 치어들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녔다. 치어는 물고기의 형체를 닮았으나, 너무나 작아 어미만큼 크려면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갑자기 부자가 된 듯 흐뭇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구피 어미는 새끼를 낳은 후, 자신의 분신을 단숨에 꿀꺽하는 게 아닌가. 눈으로 보는 이 장면이 실제가 아니길 바랐다. 섬뜩한 행위는 계속되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그런다니……. 생명을 연장하기 위하여 자신이 낳은 분신을 먹이로 삼는 아이러니한 구피의 생태(生態)라니. 틀에 박힌 수조가 아닌 자연이었다면, 과연 치어들은 어찌되었을까. 아무리 약육강식의 세계라지만, 적어도 잔인한 먹이사슬은 아니었으리라 믿고 싶다. 비로소 난 아들에게 남들이 알고 있는야박한 주문을 한다. 구피 출산 시에는 큰 물고기들과 분리하고, 치어와 어미를 가차 없이 떼어 놓으라고.

  

그날, 겨우 생명을 부지한 은어 두 마리가 아들의 수조에 들었다. 그러나 역시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섬진강에서 네 시간을 달려온 보람도, 애지중지 키워 보겠다는 아들의 살뜰한 마음도 소용이 없었다. 그건 다만 욕심이었다.

 

은어의 고향은 섬진강이다. 내 집의 수조가 아닌 끼리끼리 어울려 관계를 맺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걸 은어의 희생이 말하고 있잖은가. 강 밑바닥에는 먹고 먹히는 비애와 평화가 있다. 시원의 순결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작은 생명을 도외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격이 된다. 상대가 먼저 생명을 포기하기 전에는, 내 안에 들어온 이유만으로도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걸 잊고 산다. 은어의 기질과 구피의 생태를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이제야 뒤늦은 후회를 한다.

 

내 귀에는 아직도 은어의 파닥거리는 소리가 쟁쟁하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내 곁엔 한 마리도 없다. 그러나 아들이 고집을 부려 머물었던 곳, 은어가 활개 치던 눈부신 섬진강! 해 지는 줄 모르고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물장난과 가댁질하던 강, 그 아름다운 강물은 내 안에 고요히 흐르고 있다. 나와 은어를 품은 섬진강은 끝없이 길고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