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만수래 만수거 / 박태선

만수래 만수거 / 박태선

 

 

 

올해 일흔한 살 되시는 아버지의 생신은 여동생 집에서 식구들끼리 조촐하게 지내기로 하였다. 마침 매제 남동생부부도 와 있었는데, 그네들에게는 세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보는데 소파 등받이에 기어올라 말타기 자세를 취한 녀석의 손에는 빼빼로가 들려 있었다. 손을 벌리자 아이는 냉큼 팔을 움츠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이더니 얼른 한입을 깨물어먹고는 내게 주었다. 중간에 끼어있던 아이 아빠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뜸,

한입 깨물고 줬죠?” 한다.

내가 그렇다고 고갤 끄덕였더니 그럴 줄 알았어요. 재는 절대 하나 있으면 통째로 안 줘요. 줘도 지가 한입 깨물어 먹고 나서 줘요.” 했다.

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저 녀석은 커서 굶지는 않겠어. 그리고 많이 벌면 남한테 베풀 줄도 알겠는데.” 하였다.

산부인과엘 가보면 아기들이 모두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꼭 움켜쥐고 있잖아요. 인간의 욕망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말예요. 그런데, 장례식장에 가보면 죽은 이들은 죄다 손을 벌리고 있고요.”

그러자 과일을 깎고 계시던 엄마가 고갤 들어 하시는 말씀,

너는 손을 펴고 태어나서 욕심이 없는가 부다.”

금시초문이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를 낳아놓고 보니 배짝 말라가지고 꼬리뼈가 툭 불거졌고 양 볼과 등어리에는 거무스레한 솜털이 숭숭 나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가 양 손마저 벌리고 나왔다고 하니, 영락없는 한 마리 짐승새끼였던 것이다. 그 말씀에 나는 만물의 영장들 앞에 면목이 안 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모르는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내가 손을 펴고 태어난 것은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우주를 움켜쥐고 태어난 것이다! 농구공을 움켜쥐려고 해도 손바닥을 어지간히 벌려야 하는데 저 광대무변한 우주라는 공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사람들은 하나도 얻어 가는 게 없지만, 나는 하나도 잃고 가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우주를 움켜쥐고 태어나서 고스란히 우주를 움켜쥐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천고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었다.

예끼! 이 녀석. 우주발광 떨지 말고 지발 니 앞가림이나 잘혀. 쯔쯧.’

종주먹을 들이대는 늙으신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