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팅 / 조현태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중늙은이인 내게로 다가왔다. 셀룰로이드에 포장된 새빨간 장미의 모습이 여자의 종아리만큼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호리호리한 종아리거나 싱싱한 장미이거나 투명한 재질로 포장하는 것은 그 속에 내용물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수단일 게다.
“조현태 님. 오늘 수술했죠? 얼른 나으시기를 바랍니다.”
방실 웃으면서 꽃을 건네주는 여자는 나와 전혀 일면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잘 아는 사이였으면 편한 마음으로 꽃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차림새로 보더라도 간호사는 아닌 듯 싶었다. 로고와 명찰을 새긴 병원 간호사 가운이 아니라 평범한 옷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니 병원에서 수술한다는 정보는 누구에게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 병원 가까이 살고 있는 형님에게 입원과 마취절차에 필요한 보호자 사인을 부탁하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생면부지인 사람이 “빠른 쾌유를 빈다”는 문안 인사와 꽃을 주고 갈 수도 있을까. 그것도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 남짓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의아해하면서도 일면 따뜻한 관심을 받았으니 기분은 좋았다.
그녀는 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직원이었다. 꽃 역시 흔히 꽃집에서 포장한 장미 한 송이에 불과했지만 나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첫째는 온정의 선물을 가져온 사람이 아리따운 아가씨인데 낯설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토록 빠른 방문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섬뜩하리만치 내가 노출되었구나 하는 의구심은 부정적 측면이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고마움이 앞섰다.
또 다른 감동은 장미 한 송이가 고급스러운 꽃바구니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몇 해 전, 문학상을 받을 일이 있었다. 꽃바구니를 여러 개 선물 받았는데 당시에 여자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싱싱하고 좋다 싶은 꽃바구니를 들고 시상식장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물론 축하메시지가 적힌 리본은 걷어냈기 때문에 그냥 꽃바구니였다. 환한 얼굴로 받아들고 수상식에는 갔더냐고 묻기에 혼자 선물 받기가 벅차서 나누고 싶어 가져왔노라고 했더니 금방 얼굴에 밝은 빛이 사라지고 굳어지는 표정이 엿보였다. 그 꽃바구니는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으리라. 아차, 축하 리본을 떼었다고 해서 쾌유를 빈다는 의미로 전화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설사 리본 대신 빨리 낫기를 바란다는 쪽지를 꽂았더라도 그녀를 위해 마련한 꽃이 아니라는 내포를 느껴버린 것이겠지. 크고 화려함보다 더 깊은 의미는 축하에 있었다.
얼떨결에 단 한 마디 “감사합니다”외에 아무 말도 못 했지만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고마움이 아직도 남아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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