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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직박구리의 슬픔 / 백금태

직박구리의 슬픔 / 백금태 



 

 

말벌이 교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숨죽인 채 말벌을 지켜보았다. 말벌은 한참을 비행하다 들어 왔던 창문을 유유히 사라졌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아픈 기억이 겹쳐 지나갔다.

며칠 전, 수업시간이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느닷없이 직박구리 한 마리가 교실로 날아들었다. 조용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야구 배트에 맞은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홈런을 향해 날아가는 순간에 질러대던 함성처럼 와와아이들의 고함에 교실이 들썩거렸다. 놀란 직박구리가 푸드득푸드득 아이들 머리 위로 날아 다녔다. 물똥까지 찍찍 내리갈기며 빙빙 돌았다.

직박구리는 출구를 찾으려 안간힘을 써보지만 쉽지 않은 듯 허둥거렸다. 되록되록 굴리는 눈망울이 증명해 보이건만 약시라도 되는 지 도통 열린 창문을 찾지 못하고 유리에 머리를 박아댔다. 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는 직박구리를 보며 아이들도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저기야, 저기!” 아이들이 직박구리에게 길을 가르쳐주느라 교실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지르는 고함에 놀란 직박구리는 정신 줄을 놓은 듯 우왕좌왕했다. 아이들의 호의가 직박구리에게는 자신을 해하려는 위협으로 느껴졌나 보다.

교실에서 나가지 못해 헤매는 직박구리를 보며 일명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문제아도 처음부터 문제아로 태어나진 않았다. 가정 사정에 의해, 또는 교우관계나 실수로 인해 나쁜 곳으로 발을 잘못 들여놓을 수도 있다. 그것을 아이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늪에 빠진 아이들도 직박구리처럼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늪의 깊이는 생각보다 깊었을 수도 있다. 신발을 빼면 오른발이 빠지고, 오른발을 빼면 왼발이 점점 더 수렁 깊숙이 빠져 들어갔으리라.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얼마나 절망했을까? 교실의 아이들이 직박구리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듯이 사회는 그들에게 이해나 배려도 없이 비난만 퍼부으며 몰아붙이지 않았을까. 주위에서 참고 기다려주고, 조금만 거들어준다면 아이들은 늪에서 쉽게 발을 뺄 수도 있었으리라.

온 교실을 헤매며 날아다니던 직박구리가 힘이 빠졌는지 높은 창문턱에 한 쪽 발을 걸친 채 헐떡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즐은 큰 구경거리가 생긴 듯 너도나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댄다. 더 선명하게 담고 싶어 플래시까지 터트렸다. 사회의 질타에 어딘가로 숨고 싶었을 아이들처럼 직박구리도 얼른 아이들의 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하니 두려움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겠지. 공포에 떨던 직박구리는 있는 힘을 다해 다시 날기 시작했다. 교실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는 듯 힘차게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직박구리가 교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창문 유리에 머리를 박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바닥에 널브러진 직박구리는 온몸을 부르르 떨다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광경에 교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직박구리 옆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직박구리가 죽었다.”

한 아이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고함을 많이 질러서 직박구리가 놀랐나 봐요. 우리가 직박구리를 죽였어요. 불쌍해요. 직박구리한테 정말 미안해요.”

아이들이 울먹거리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교실이 순식간에 을음 바다가 되었다. 직박구리 몸이 싸늘하게 식어 갔다. 우리는 직박구리를 땅에 묻어주기로 했다. 하얀색 한지에 직박구리를 조심스럽게 싼 후, 종이상자에 눕히고 뚜껑을 닫았다. 한지는 직박구리의 수의가 되고, 종이상자는 관이 되었다. 그것을 들고 운동장 가의 화단으로 갔다. 호미로 흙을 파고 있는 주위로 아이들이 빙 둘러섰다. 고개를 푹 숙인 아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훌쩍거리는 아이, 연신 손두덩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아니 등 모두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살길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이도 눈에 띄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아침나절에 말벌 한 마리가 교실로 들어왔다. 한 아이가 겁에 질려 고함을 질렀다.

, 가만히 있어! 말벌도 직박구리처럼 죽으면 좋겠어?”

아이들이 합창이라도 하듯 떼거리로 고함을 지르며 그 아이를 몰아세웠다. 직박구리의 죽음의 그림자가 아이들의 뇌리에 선명히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직박구리가 훨훨 날아 자유로운 세상으로 가길 원했던 아이들은 그날의 참상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말벌은 아이들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교실이 자신의 텃밭이라도 되는 양 유유히 여유를 부렸다. 천정에서 빙빙 돌다 어느새 아이들을 슬쩍 건드리며 지나가기도 했다.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는지라 아이들은 벌을 무척 무서워한다. 어쩌다 벌이 교실에 들어오면 소리를 지르며 교실 여기저기로 우르르 피해 다니느라 교실은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오늘도 왜 무섭지 않을까. 그것도 말벌의 출현인데…….

소리 지르던 아이도 다른 아이들의 타박에 입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소리를 두 손으로 틀어막으며 안간힘을 썼다. 공포에 덜덜 떨다 눈을 감아버리는 아이도 보였다. 아예 벌을 보지 않는 게 덜 두려우리란 생각에서였다. 아이들의 심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말벌은 도통 밖으로 나갈 생각도 없이 온 교실을 헤집고 날아 다녔다. 선풍기 위에도 앉아보고, 형광등 가에도 기웃거리고, 창문에도 붙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거리는 것을 보니 말벌도 분명 나갈 구멍을 찾지 못해 고민하는 눈치였다. 직박구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눈알을 되록되록 굴리며 불안에 떨던 모습과 흡사했다.

한참 후, 말벌이 열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날아갔다.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말벌이 살았다는 기쁨과 참고 기다려주었기에 말벌을 살렸다는 뿌듯함이 함께 했으리라.

아이들은 직박구리의 슬픔을 보며 말벌한테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사회는 어떤가. 구렁텅이에 빠져 허덕거리는 아이들을 따뜻이 보듬어 주는가. 이해하려 애쓰는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얼려고도 않은 채 결과만으로 덜덜 볶지 않는가.

직박구리의 슬픔이 바로 늪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의 슬픔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