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 / 채정순
푸른 새벽 볕뉘하나 없는 거실에서 아들 방을 훔쳐본다. 주인과 함께 온밤을 하얗게 새운 방문이 오늘따라 삐죽이 열려있다. 형광등은 막 잠들었는지 어둑한 천장에 큰 담배개비처럼 떠있다. 지필묵도 피곤에 지쳤는지 책상위에서 처져있는데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바깥을 살피니 엉거주춤 화장실로 들어가는 검회색 실루엣이 보인다. 뒤가 몹시 급한지 아랫배를 슬슬 문지르며 오리걸음을 걷는다.
얼른 그 방을 허락도 없이 공기처럼 스며든다. 얼마 전부터 바뀐 녀석의 꿀꿀이에게 밥을 주기위해서다. 책상서랍이 우리인 연둣빛의 투명한 돼지를 만나기가 도둑질하기만큼이나 힘이 든다. 다행히 잠겨있지 않아 살며시 당기니 멋없이 둥그런 몸통만이 존재하는 놈이 부스스한 얼굴로 반갑다고 꿀꿀 댄다. 내 손가락 사이의 오백 원짜리 동전을 보고는 튀어나온 주둥이가 기어오를 태세다. 살을 찌울 의도뿐이어서 먹이를 줄 때마다 더 달라고 꿀꿀대지만 깔딱 요기 밖에 시켜 줄 수 없어 안타깝다. 동전 중에도 은빛이 나는 학이 양각된 것만 먹는 탓도 있지만 주인이 알면 야단이 나서다.
아들에게 여태껏 길러져서 도살된 돼지는 손가락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전까지의 꿀꿀이들의 입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었다. 특히 아들이 온몸에 패기와 자신감이 넘친 재학생일 때는 지폐는 물론 벼이삭과 탑이 든 동전마저 마구 삼켰다. 왕성한 식욕만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꿀꿀이를 잡는 향년이 벌어지는 날이면 나는 사육사의 코앞으로 손바닥을 쑥 내밀며 다리 하나 달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 사육사는 기꺼이 통통한 앞다리 하나를 나누어 주었다.
그 꿈이 물거품으로 전락된 건 녀석이 취직시험에 연이어 미끄럼을 타고나서다. 애가 탄 가족들이 눈높이나 방향을 달리해 보라고 조언을 했다. 아들이 당시엔 묵묵히 듣고 있더니 며칠 되지 않아 엉뚱한 데다 분풀이를 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다 눈 흘기듯 야윈 짐승을 요절시켜 버리고 아예 다리 없는 돼지를 사들고 와서는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 다른 돈은 본체 만 체하고 뉘에 쌀 고르듯 해서 학동전만 새로 사온 꿀꿀이에게 먹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밥도 주지 말고 다리 하나도 넘보지 말라며 쐐기를 박았다.
습관이 되어선지 나도 모르게 이순신이 박힌 백 원짜리를 주려다가 사육사에게 정중하게 거절을 당했다. 녀석이 엄마 어깨를 잡고 백발십도로 돌려 세울 때야 돼지의 편식이 상기 되었다. 또 어느 날 세종대왕과 신사임당을 생각 없이 먹였다가 하나하나 힘들게 게워 내야 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며 아들의 심중을 다치지 않으려 애썼다. 핑계야 저 짐승이지만 녀석의 눈동자에 누구의 염려도 받기 싫다는 의지가 섬광처럼 번뜩였다. 스스로 알아서 하니 돼지밥을 빌미로 자주 드나드는 것도 일종의 간섭이니 사양한다는 뜻이다.
고금을 통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비로소 실감난다. 이웃에 사는 교우가 가슴을 치며 꺼이꺼이 울던 기억이 새롭다. 의족을 딛고 미용실을 경영하면서 홀로 키운 아들이 신학생이 되어서였다. 자신은 명문대학교에 보낼 마음에 희망이 부풀었는데 본인이 한사코 신부의 길을 택하더라고 했다. 또 형님뻘인 친척은 딸이 오랜 기간 한 우물을 팠는데 아직 물은 솟아나지 않고 사람만 초로가 되었다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아들은 이미 뗄 것은 떼고 버릴 것은 버렸는지 모른다. 어쩜 지폐같은 자리의 꿈은 벅차 멀어졌고, 작은 동전은 성에 차지 않으니 생명이 길고 깨끗한 학의 존재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인지도……. 어쨌거나 제 길 선택을 말없이 표현했기에 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밖에 없다.
몰래주는 꿀꿀이 밥이기에 주인이 눈치를 챌까봐 몇 잎만 더 주고 시치미를 뗀다. 놈은 이전의 돼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희귀병환자에게 장기를 주려는 듯 까다롭게 섭생한 까닭에 얼핏 봐도 배안이 깔끔하다. 동일한 동그라미만 차곡차곡 쌓여 신성한 성체가 될 밀떡을 연상시킨다.
암행을 저지를 때마다 훤히 비치는 감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동전이 안타깝다. 더구나 그 속에 누워서 꼼짝하지 못하는 학들이 불쌍해서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저들은 본래 날개를 펴고 온 천지를 훨훨 날아다녀야 보기가 좋다. 날개를 소슬히 접고 쟁여져 있는 저 학의 처지들이 자못 애처롭다.
세상에는 여러 조건으로 생긴 저와 같은 삶이 수두룩하다. 나는 병약해서 인생의 황금기를 온전히 우울과 고독으로 보냈다. 그 때 내 몸이 재처럼 바스러질 것 같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들도 장밋빛 미래를 위해 온 종일 책과 씨름 하며 시계바늘을 돌릴 것이다. 고래 배 속에 든 요나처럼 목표를 위해 좁은 공간에서 욕망을 잠재우며 분투하는 중이라 믿고 싶다.
아들이 자리를 비우면 나도 모르게 호시탐탐 방을 엿본다. 꿀꿀이의 살을 푸지게 찌워 배를 쫙 가르면 갇힌 학들이 활개를 펴고 푸른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아서다. 학이 훨훨 나는 날 아들의 겨드랑이에서도 새 순 같은 날개가 돋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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