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와 여우 / 김문숙
차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휘익 산모롱이를 굽어들자 헤드라이트 불빛에 산짐승이 잡혔다. 노루였다. 노루는 숲이 끝나는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아래쪽 길에서 굉음을 내고 올라오는 차 소리를 듣고 일부러 그곳으로 피해 있었던 것일까. 별안간 비쳐지는 휘호아한 불빛에 감전된 듯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뜻밖에 노루를 만나 속도를 줄이려다 덜컥 차가 멈춰 섰다. 그 바람에 노루가 차창 밖으로 팔을 뻗으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바로 눈앞에서 야생의 생생한 산짐승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황갈색의 등줄기에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크고 둥근 눈은 순했다. 송아지처럼 몸집이 컸으나 자태가 아름답게 균형이 잡혀 있었다. 내 눈 안으로 들어온 노루의 감동적인 모습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순간, 노루는 휙 몸을 틀더니 산 위로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몇 번 폴짝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이지만 노루를 본 기쁨에 들떴는데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려 한참 동안이나 산길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치 귀한 보물을 잃은 양 가슴마저 휑하였다. 이처럼 가까이에서 노루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활달해 보였고, 미끈한 외형은 건강미가 넘쳐 예전에 동물원에서 보던 맥 풀린 동물과는 선명히 대조가 되었다.
노루의 순한 모습에 정이 간다. 그 순함이 나에게 부담 없이 다가와 친근함을 유도하고, 내가 지향하는 선함과 공감을 이루며,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순함과 선함은 서로 다르지만 어원을 파고들면 바탕은 같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비록 동물이지만 정이 더 생긴다. 이른 봄부터 이 산 저 산에서 ‘커억 커억’ 하며 울어대는 소리가 들릴 때면 그러한 느낌은 한층 더해진다. 먼 골짜기의 그 울음으로 노루의 존재를 의식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처럼 노루는 가깝게 여겨진다. 이 산골 동네를 이웃집 아들이 오듯 자주 출몰하는 노루가 그래서 더 정겹다.
어릴 때였다. 추수 시기의 어느 늦가을, 할머니가 계신 큰댁에 가려고 우리 가족은 길을 나섰다. 큰 도시의 항구에서 늦은 오후 배를 타고 두어 시간 바다를 달려 큰댁 이웃 마을 포구에 내렸다. 큰댁은 그 마을을 둘러싼 노장산 남쪽 농소재를 넘어야 했다. 그 재는 큰 폭으로 구불거렸고, 가파르고 높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우리는 선착장을 빠져나와 갯마을을 뒤로 하고 산길에 접어들었다.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업고 선물 보따리를 어리에 이고 나는 어머니 뒤를 따라 걸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산길이었다. 거친 풀이 다리에 스치기도 하고, 작은 나뭇가지들이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였다. 제 마루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은 남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재를 오르는데 다리가 아팠지만 꾹 참고 어머니 뒤를 따랐다. 농소재를 넘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 중턱까지 올랐을까? 별안간 어머니가 고함을 쳤다.
“휘이 휘이, 저리 가거라. 저리 안 갈래. 말리 가거라. 못된 여시야!”
다급해진 어머니의 목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개처럼 생긴 산짐승이 는에 들어 왔다. 주둥이는 뾰족하고, 털이 수북하여 꼬리는 통통하였다. 두 마리였다. 어두운 털빛을 지닌 여우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휙휙 넘기도 하고, 옆에서 풀쩍풀쩍 뛰기도 하였다. 캥캥하며 음산한 울음소리까지 냈다. 순간 우리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머니 뒤에 치맛자락만 붙들고 와들와들 떨었다.
“이놈의 여시, 저리 못 가나. 저리 안 갈래. 훠이 휘이.”
어머니의 점점 더 다급해진 목소리는 산 아래 골짜기까지 울렸다. 고함을 질러도 쉽게 가지 않자 돌을 주어 여우를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여우들이 잠시 물러나는 듯하더니 우리가 움직이자 다시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더 크게 고함을 치고 돌을 주워 연신 내던졌다. 키가 크고 풍채 좋은 어머니의 당당한 행동에 위압을 느꼈던지 여우는 사라졌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 손으로 등허리에 업은 동생을 꼭 받치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꽉 움켜쥐고,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갔다. 또 다시 여우들이 나타날까봐 두려움에 떨며 겨우 재 마루에 오르니 땀에 온몸이 흠씬 젖었다. 이미 날을 캄캄하게 어두워져 아래쪽 바닷가 마을에는 집집마다 불빛들이 깜박이고 있었다.
그 때는 깊은 산 속에 여우가 흔히 살았다. 먹을 것을 구하러 인근 마을로 내려오거나 산을 넘어야 하는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였다. 그날의 여우의 행동은 지금도 아찔한 두려움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마을 산 어귀에서 만났던 노루는 그렇지 않다. 그리움의 여운으로 남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심성이 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성이 악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과 악, 이 두 마음이 함께 공존한다. 그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원천적 본성이다. 이 두 마음은 자신이 지닌 도덕성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표출된다. 사회 속에는 다수가 정해놓은 가치 규범이 있다. 여우와 같이 악행을 일삼을 사람보다는 노루같이 선한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젖몸살 / 윤명희 (0) | 2016.05.17 |
---|---|
[좋은수필]학 / 채정순 (0) | 2016.05.16 |
[좋은수필]떡비 / 박헌규 (0) | 2016.05.13 |
[좋은수필]스토브 리그(STOVE LEAGUR) / 김윤신 (0) | 2016.05.12 |
[좋은수필]그랭이질 / 김제숙 (0) | 2016.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