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비 / 박헌규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이른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오후나절이 다 되도록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지루하다거나 싫지가 않다. 얼마나 곱게 내리는지 창문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서야 비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문밖으로 손을 쭉 뻗어 내밀어 본다. 살갗에 와 닿는 차가움이 가을의 꽁지를 재는 듯하다.
봄비는 가을을 짊어지고 온다더니, 가을비는 지나간 삶들을 품고 오는 것 같다. 이 비 그치기 전에 누군가가 곡차 한 잔 하자며 찾아줄 것 같고, 먼 기억 속에 행복했던 시절을 그려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다. 그에 비해 오래된 추억이 흑백 사진 한 장 보는 듯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유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는 이렇게 늦가을에 내리는 비를 ‘떡비’라고 했다. 벼 타작이 끝난 늦가을, 추위가 오기 전에 마당 한켠에 낟가리가 생겨나고 김장 준비로 무, 배추를 거두어 들이고 나면 한 해 농사일은 거의 끝이 났다. 이때가 농사꾼에게는 일 년 중 가장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시기이다. 거기다가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은 바깥나들이까지 자유롭지 못하니 집안에서 온 가족이 망중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비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웠다.
그러나 비가 언제 올 거라는 예고가 멀던 시절이라 어머니는 이런 날 유독 바빴다. 서둘러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주전부리, 별미 음식을 만드느라 종일 동동걸음을 쳤다. 가족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있었기에 어머니도 이날만큼은 힘듦보다는 내심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어머니는 재바르게 쌀을 씻어 불리고 떡을 찔 채비를 했다. 불린 쌀을 디딜방아에 곱게 빻아 손품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떡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은 백설기와 비슷했지만 찰기가 모자라서인지 ‘부스러기떡’ 또는 ‘부스럼떡’이라고 했다. 잘 익은 감말랭이나 늙은 호박을 잘게 썰어 쌀가루와 버무려 솥안에 채반을 받치고 뜸이 들도록 했다. 모양은 크게 없어도 따뜻할 때 먹으면 별미였다.
떡도 떡이지만 그때 만드는 떡쌀은 좀 특이했다. 그 쌀 속에는 당시 힘들고 어렵게 살던 우리 농촌 살림살이의 한 단면이 들어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보통 쌀과는 계급이 한 단계 떨어지는 쌀이라고 표현을 해도 어긋나지 않을 것 같다.
오늘날 추수는 들판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콤바인으로 벼를 베 바로 탈곡을 하고 포대에 담으니까 모든 게 수월하다. 기계화가 되지 않던 그 시절에는 벼를 낫으로 베서 논바닥에 며칠을 널어두었다가 청풍에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묶어서 집 마당까지 옮겨왔다. 마당에서 회전기라고 하는 탈곡기에 온 가족이 달라붙어 힘들게 밟아가며 여러 날 걸쳐 타작을 했다. 이때 벼 낟알이 굵고 충실한 놈은 잘 떨어지지만 쭉정이에 가까운 미숙한 낟알은 좀체 떨어지지 않고 볏짚 검불에 붙어있었다. 곡식 한 알이 아깝고 귀하던 시절이라 그것을 그냥 버릴 리 없었다. 마당 구석자리에 따로 모아두었다.
잘 털린 벼는 마당 가장자리에 마련된 뒤주 속으로 들어가고, 설 안에 식용할 것은 가마니에 담아 방문 앞 죽담에 쌓았다. 그렇게 쌓인 곡식 가마니를 쳐다보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이른 봄부터 여름내 흘린 땀방울의 수고를 잠시 잊고는 했었다.
바쁜 가을 일이 어느 정도 숙지고 나면 검불에 붙은 벼 낟알을 털기 위해 볕 좋은 날 마당에 널어 말려가면서 아버지는 도리깨로, 어머니는 부지깽이를 잡고 힘을 다해 내리쳤다. 이때 나오는 낟알은 완전히 영글지 못해 터는데 힘이 많이 들었다. 흙 마당에서 여러 번의 도리깨 공격을 받았기에 낟알 외에 돌, 흙, 볏짚 부스러기 등 이물질이 많이 섞여 있었다.
힘든 수고에 비해 양도 적을뿐더러 질 또한 보잘 것 없었다. 도정을 해놓으면 거의가 반쭉정이 싸라기 쌀이었다. 밥을 해도 맛이 좋을 리 없었다. 요즘 같으면 아마 동물사료용으로 사용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이 떡쌀은 방앗간에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별도의 그릇에 담겨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며 창고 한 쪽 구석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떡비, 이제는 ‘떡비’라는 말조차도 듣기가 어렵다. 내리는 비를 핑계 삼아 온 가족이 자리에 모여 여름내 농사일로 겪은 고생담을 나누며 떡맛 한 번 본다고 해서 ‘떡비’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라도 먹고 싶으면 떡을 먹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가을마당 뒤끝, 비 오는 날에 어렵사리 떡 한 번 해먹는 것도 당시 큰 호사였다.
마당에는 아직도 비가 곱게 내리고 있다. 이렇게 가을비 촉촉히 내리던 날 오후에는 가족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앞에 두고 아버지는 배가 불룩한 뒤주를 바라보면서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고, 어머니는 “이제 메주만 쑤면 올해 가을 일은 끝이다.”하시던 말씀이 해질녘 내리는 빗소리에 섞여 들러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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