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몸살 / 윤명희
요새 얼라들은 얼매나 빠른 동, 안즉 백일도 안 된 것이 고개 세우는 것 좀 보래이. 하이고 야꼬, 다리에 힘을 보이 내일이만 뛰겠구만은. 요 쪼맨한 발이 언제 커서 세상을 돌아 댕길랑고, 살아있는 짐승이 어데를 몬 가나. 가더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 되지럴. 우짤라고 그런 일이 다 있노 말이다. 다 큰 자석을 물에 묻은 저 가심을 우짜노. 심장을 면도날로 기리만 그 반만큼이나 아프겠나….
열일곱에 시집와가 그다음 해에 첫 아를 낳았으이 그 어린 나이에 뭐를 알았겠나. 너거 시숙이 음력 9월생 아이가. 한창 추수하니라고 정신없을 때제. 요새는 해복간도 한 달 넘게 하더라마는 부지깽이 손도 빌린다는데 어데 누가 있을 수가 있었나. 시어메도 엄고, 시누부도 업시, 홀 시아부지에 셋이나 되는 시동생만 있었으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 했다고 당장 안 죽는 이상 그럴 수 없디라.
곡식이나 제대로 있나. 어데 오새매로 쌀독에 쌀 퍼서 밥하는 줄 아나. 동네에 있는 디딜방아로 빻아서 밥을 해야 했니라. 삼시세끼 밥 해 대는 것도 그렇지만 빨래는 또 어떻고. 니도 알다시피 너거 시아부지가 평생을 한복 입었잖나. 그 나이에 허연 옷을 어예 감당 했겠노 말이다. 옷이나 많나, 벗어 놓으면 바로 손질해야 하이 일을 미룰 수도 없었지럴.
남자 다섯 뒷수발에, 밭일에, 얼라 한번 맘 놓고 안아 볼 새가 업었제. 남자들이 밭에 나가머, 눈에 비는 일을 어예 가마이 보고 앉았겠노. 젖 물리고 있으머 마당에는 콩꼬투리가 아가리 벌리고 있제, 들깨도 내 좀 보라카제. 마음이 바빠서 앉아 있을 수가 있어야제. 대충 믹이고는 우는 아를 들쳐 업고 콩 털고, 깨 털고 그랬니라.
그날은 밥을 가지러 올 사람이 업서가 한 달도 안 된 얼라를 방에 제워놓고 밥을 머리에 이고는 밭에 안 나갔디나. 밭이라고 해야 산비탈을 개간한 거라 한참을 가야했니라. 여서 물미끄리 가는 것보다 더 멀지럴. 그렇다고 새댁이 어예 밥만 갖다 주고 바로 돌아오겠노. 그럴 배짱이 없었제. 이것저것 거들다 보이 저고리 고름 타고 젖이 뚝뚝 떨어졌니라. 얼라 우는 소리가 젖가슴을 쥐어 짜는 게라. 니도 아를 둘이나 키웠으이 젖이 한 바꾸 돌 때마다 온 몸이 저리는 거 알끼다. 그기 얼라가 어매 부르는 소리인기라. 겨드랑이까지 뻐근한 것이… 그렇다고 남자들이 어데 그 사정을 아나 말이다. 일하다가 보이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고, 간다 온다 말도 안 하고 고무신이 벗겨지도록 뛰었디라. 어데 얼라 낳은 몸이라 하겠노. 산비탈을 미친 듯이 뛰었제.
삽작에 들어서도 얼라 우은 소리가 안 들리는 기라. 안즉도 자는가 싶어 방문을 여이 피비린내가 확 나는 기 눈앞이 캄캄하더라. 고 쪼매난 것이 혼자서 얼매나 울었던 동 널브러져 있는데 몸띠가, 하이고 말도마라. 발뒤꿈치가 다 까이가 온 방바닥에 피였니라. 그때는 이런 장판이 어데 있었나. 덕석을 깔고 살았제. 우니라꼬 발을 얼매나 바둥거릿는 동, 손바닥만 한 요때기 밖에까정 나온 게라. 꺼칠꺼칠한 덕석에 복숭아 살 같은 두 발을 요래 비비고 조래 비비니 발뒤꿈치가 남아났겠나. 정신없이 끌어안고 적을 물리이, 힘이 없어서 빨지를 못하는 기라. 저도 울고 나도 울었니라. 언제 한번 배가 불뚝 일어나게 먹었던 적이 있었던강. 클 때까지 발뒤꿈치가 없었니라.
내가 이런데, 생때같은 자석을 허망하게 바다에 잃은 저 가심들은 어떻겠노. 밤낮없이 어매를 부를 껜데. 남은 세월을 어예 감당할라누. 이런 일이 또 있으머 안 되지럴. 안 되고 말고. 자! 인자 할애비한테 가거라.
손자며느리와 함께 앉은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예전에 열두 번도 더 한 이야기를 또 하신다. 대답이라도 하듯이 연신 눈웃음을 치는 증손자를 퇴근해서 들어오는 큰아들 손에 넘겨주었다. 손자를 안은 화갑이 넘은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빛에 아직도 남은 젖이 담겨있다. 딸을 낳고 또 아들을 낳고 그리고도 딸 둘을 더 낳을 동안 젖을 물렸지만 첫 아기에게 못다 먹인 젖은 마르지 않았던가보다. 증손자까지 두셨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젖몸살중이다.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들의 썩어가는 가슴에 핏발이 선다. 어머니는 슬그머니 텔레비전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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