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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옹이 / 박동조

옹이 / 박동조


 

 

나무속은 알 수가 없다.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벌레가 먹었거나 썩어서 속이 비어 있는가 하면 화려한 불꽃무늬가 화석처럼 박혀 있기도 하다. 속을 짐작 못하기는 사람이나 나무나 마찬가지다.

말 못하는 나무라고 살아온 내력이 왜 없겠는가. 따스한 햇볕 아래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가도 느닷없이 몰아친 거센 바람에 여물지 못한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혹독한 가뭄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도 있다. 병충해의 습격으로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나무는 이 모든 일상을 나이테로 기록하고 옹이로 흔적을 남긴다.

나무로 조각을 하는 남편은 옹이를 무서워한다. 그중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옹이를 제일 겁낸다. 겉으로 드러난 옹이는 미리 예측하여 설계하면 허탕을 피할 수가 있지만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숨은 옹이는 여태까지의 작업을 무위로 만든다. 거멓게 썩은 속을 멀쩡한 껍질로 감싸고 있으니 투시경을 동원하지 않는 한 한치 속도 짐작할 수 없다.

남편이 만들던 조각 작품에 문제가 생겼다. 사람의 전신상을 조각하고 사포로 문지르는 마무리 작업에서 가슴 한 중앙에 거멓게 멍이 든 부분이 드러났다. 조각을 하기 전, 나무의 겉모습은 말짱했었다. 둥치가 굵은 데다 겉으로 드러난 옹이가 없어 조각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무로 보였다. 목재가 훌륭하면 조각은 절반의 성공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좋은 나무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남편은 보물을 만난 듯 좋아했었다. 만들기도 전에 명작을 앞에 둔 사람처럼 설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랬던 나무가 거멓게 멍이든 속을 감추고 있었으니 야심찬 작품을 꿈꾸었던 기대가 일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남편은 조각품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버리자니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고가 아깝고 그냥 두자니 가슴께가 눈에 거슬렸다. 작은 흉터 하나로 잘 생긴 얼굴을 가려버린 꼴이 되어 속이 상할 만도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남편은 멍든 환부를 도려내고 새살로 채우는 수술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성공을 한다고 해도 수술한 흔적은 남을 것이 분명했다. 조각 작품에서는 치명적인 흠결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는 남편이 왜 수술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에 멍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 같아 특별나게 보인다며 그냥 두는 게 좋겠다는 내 말은 남편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수술대 위의 사람처럼 조각상을 작업대에 뉘어놓고 남편은 숫돌에다 조각칼을 갈았다. 날이 선 칼날을 확인한 뒤 땅바닥을 긁듯이 조심조심 가슴의 살점을 긁어냈다. 세포가 죽은 나뭇결은 흙처럼 퍼석했다. 상처는 의외로 깊어 처음 드러난 동전만 했던 검은 부분은 입구에 불과했다. 안으로 파고들자 조각상의 가슴은 동굴처럼 텅 비어 있었다. 남편은 수술을 하다 다른 기관에 퍼진 암을 발견한 의사처럼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술을 포기하고 환부를 봉합하는 의사가 될 것인지, 전이된 암을 마저 수술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결국 가슴 부분을 몽땅 들어내기로 했다.

헤벌려놓은 가슴은 온통 숯같이 까맸다. 검은 부분을 다 파내자 나중에는 가슴 전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가슴이 없는 조각품은 해참했다. 비록 나무로 만들어진 조각품이지만 이목구비를 갖춘 여인의 형상이라 더 섬뜩했다.

나무가 견뎌냈을 시간에 생각이 머물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무는 숯검정이 다된 속을 안으로 감추고도 바람에 이파리를 살랑거렸으리라. 햇살에 눈 맞추고, 있는 힘을 다하여 땅속의 물을 길어 올려 남은 나뭇가지들을 길러냈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그제야 참고 참았던 속 아픈 눈물을 흘렸을지 모른다.

내 속을 볼 수 있다면 다 썩고 없을 거다.”

조각상의 뻥 뚫린 가슴을 보며 시어머님께서 노래처럼 하시던 말씀을 떠올렸다. 어머님이 살아오신 내력은 어두운 밤에 소리죽여 흐르는 강물이었다.

어머님은 여유 있는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하나뿐인 오빠가 목숨을 잃자 신여성이 되고자 했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불행은 쌍으로 온다는 옛말은 비켜가지 않았다. 외아들을 잃은 슬픔을 못 이겨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거기다 당신의 뜻이 무시된 결혼은 더 깊은 불행의 늪에다 어머님을 데려다 놓았다.

여자가 많이 배운 걸 흉으로 아는 집안으로 시집간 어머님은 물 위에 기름 같이 환영받지 못했다. 차마 글자로 옮길 수 없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여자라서 겪어낸 지난한 삶의 이야기는 모두 어머님이 걸어오신 생의 여정처럼 들렸다. 며느리이기 전에 여자이기에 가슴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자식을 멀리 떠나보내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보면 그것도 어머님을 보는 것 같았다. 속 섞는 사연을 종류대로 갖춘 어머님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상처와 흔적은 옹이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머님이 겪어내신 불행 역시 겉으로는 온전히 회복된 것 같았지만 고스란히 마음 안에 옹이로 남아 시도 때도 없이 아픔으로 도졌다. 도진 상처는 약으로도 수술로도 치유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어머님께 치매가 찾아왔다. 어쩌면 옹이의 거듭된 아픔이 치매를 불렀는지 모른다. 아픔을 잊고 싶은 간절함이 머리도 마음도 텅 비게 했으리라.

어머님은 당신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자식들의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했다. 다정한 사람들의 이름도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희미한 미소를 연기처럼 허공으로 날릴 뿐이었다. 단 한 마디의 언어도, 기억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어머님의 가슴은 텅 빈 동굴이었다.

어쩌면 남편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굳이 조각상의 가슴을 살려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가슴을 살려내면 잊어버린 아들의 얼굴을 기억해내어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줄 거라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무늬와 색감이 비슷한 나무토막을 덧대어 가슴을 복원했다. 마무리를 끝낸 조각품을 자세히 보아야 덧댄 표가 났다. 그 표라는 것이 기가 찼다. 분명 결이나 색깔까지 비슷한 나무 조각으로 덧댔는데 거무레한 자취가 속에서 배어나왔다.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이지도 않는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사막의 모래를 쓸어 모아 사구를 만든다. 세월은 사람의 얼굴에 주름살을 만들며, 영원할 것 같은 바위를 풍화시켜 모래로 부순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곡절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곡절의 아픔이 몸으로 전이가 되어 눈에 보이는 병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사람이든 나무든 살면서 생긴 상처의 흔적은 신의 손으로도 원래대로의 복원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나는 차마 덧댄 자국이 배어나온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거무레한 자취는 못 본 척 당신 정말 대단해! 감쪽같다.”고 말해주었다. 남편의 표정은 멀뚱했다. 덧댄 표가 나는 것에 속이 상한 눈치였다.

세상의 어떤 장인도 원래의 모습을 재현하기는 불가능해요. 설사 똑같이 보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시간이 다르잖아요.”

위로인지 내게 한 소린지 알 수 없는 말로 남편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