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소통 / 박종숙
가끔씩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행복할 때가 있다. 문학을 이야기하고 여행을 꿈꾸며 자유로운 영혼의 발자취를 따라 길 떠날 수 있는 친구를 가졌다는 것이 늦복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인은 늘 시간에 쫓기는 나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외딴길을 걸어보라고 충고한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처럼 흥행하는 영화나 전시회 소식을 전해주며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것을 보면 만년 소녀처럼 사랑스럽다.
그날도 늦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함께 전시회장을 찾았었다. 최북 탄생 300주면 기념전 소식을 일간지에서 보았다는 시인은 조선 후기 중인이었던 화가에게 퍽 관심이 많았다. 시‧서‧화에 탁월했던 최북은 붓 한 자루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하여 스스로 호를 ‘호생관’이라고 지었고 메추라기를 잘 그린다고 하여 ‘최메추리’, ‘최산수’ 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광기어린 화가여서 조선의 반 고흐라고 불렸던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스승으로부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 그린다고 질책을 받자 자신을 비관하며 ‘남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 눈이 먼저 나를 저버린다.’ 하고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실명을 하게 하였다. 가난과 궁핍을 면키 어려웠던 고흐도 처절한 삶을 비관하며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듯이 최북도 고흐처럼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양반사회의 이단아였던 그가 신분의 격차에서 오는 고통도 컸겠지만 그보다 더 예술인의 정신이 투철했기에 스스로 자기 눈을 찔렀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금강산을 여행하던 도중 갑자기 구룡연 폭포에 뛰어들었다가 죽을 뻔했다는 일화도 전해지니 감정을 자제할 줄 모르는 다혈질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기인들의 행각을 나는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엉뚱하게 행동하는 것을 성숙하지 못하다고 평할 수는 있으나 깨인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등의 폭이 깊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대체로 그들은 소아적 행동을 보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직언은 세태를 비판, 비관하면서 무지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기도 했는데 그 진성성이 적중하곤 했다. 어쩌면 세상을 변화시킬 자신감을 얻지 못한데서 오는 절망감을 생뚱맞게 과장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사회의 질서가 깨져도 모르는 척 침묵하는 지성인들을 보게 되면 화가 날 때가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이러쿵저러쿵 큰소리를 하다가도 막상 칼을 빼들어야 할 시기에는 묵묵부답이거나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위선자들을 보면 그들 정체성이 의심되곤 했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대중을 향해 우스꽝스런 행동이나 제스처로 소통을 구하려는 순수한 영혼을 기인이라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중광스님이나 이외수소설가, 천상병시인을 3대 기인으로 꼽았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시대의 원효스님도 이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궁중생활도 마다하고 걸인처럼 떠돌면서 무애가를 부르며 불교사상을 심고자 했던 스님은 일생동안 저술한 책이 100여종 가까운 240여권이나 된다. 중광스님도 그 위대한 분을 흉내 내고 싶었는지 모른다. “중 사시오, 중! 나는 똥도 서 말, 내 자랑도 서 말. 참말도 거짓말도 서 말이오.”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불교사상을 펼치곤 했으니까. 또 몸을 씻지 않아 옷 위로 이가 뚝뚝 떨어졌다고 폭로함으로써 거부감을 주었던 이외수씨도 소설가로서 현재까지 독자의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유별난 행위를 순수하게 보아주는 것은 존재의 근원을 찾아 자유롭게 활보하는 의식의 존엄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리라.
바보와 천재는 백지 한 장 차이라고 한다. 사람은 교육을 받으면서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수치심을 배우게 된다. 그 분별력은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을 낳으면서 남의 이목을 중시하게 되는데 외형적 틀을 벗어 버리고 자유자재로 행동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노릇인가. 현실을 초월하거나 자신을 뛰어넘는 용기는 대범하지 못하면 어려운 일이다.
최북 역시 자기 갈등에서 오는 모순을 극복하려고 광적인 행동을 보였던 비운의 화가였다. 직업화가로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을 걸어야 했던 그는 순간순간 창작의 고통을 몸으로 삭여야 했을 것이다. 심층에서 우러나오는 욕망은 하늘을 보라하는데 자신은 땅을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으니 화선지 위에다 분풀이라도 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그의 그림은 차분하고 안정감 있었다. ‘추경산수도’의 소박함은 은자의 행복을 담았다고 할까? ‘공인무인도’를 보면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꿈을 꾼 최치원의 시를 표제로 하고 있다.
“세상의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막았네”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풍경이 그의 심사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는 친구 이현환에게 다음과 같이 속내를 털어 놓았다고 한다.
“세상엔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이 드무네. 참으로 그대 말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나를 떠올릴 수 없겠지. 뒷날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기다리고 싶네.”
그의 외길 인생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 한마디로도 짐작할 수 있다. 고립된 생활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했던 고흐가 37세 젊은 나이에 스스로 권총으로 자살을 했던 것처럼 예술의 혼을 부르기 위해 눈을 찔렀던 최북의 고통이 거기 있었다.
“글 쓰는 일도 별것 아니지요. 그러나 기력을 잃을 만큼 매달리지 않더라도 버릴 수는 없는 일이어요.”
한 시인과 나는 서로를 소통할 수 있는 사이이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우리는 그날 최북이 말하지 못했던 심리적 갈등을 그림 밖에서 공유하며 서로를 달래듯 차분하게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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