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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간이역을 지나며 / 서현성

간이역을 지나며 / 서현성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때는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그리운 어머니, 보고 싶은 바다, 그리고 항상 내 마음속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남아있는 측백나무가 서 있는 간이역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해 봄은 진달래꽃이 유난히도 흐드리지게 피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이 되어 교실에 들어간 첫날부터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너도나도 수학여행은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만 해도 시골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멀리 여행한다는 것은 수학여행 말고는 거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수학여행 날짜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우리 반에서 유독 정자만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아이는 여수에서 꽤 떨어진 덕양이란 곳에서 기차 통학을 하고 있었다. 당시 몇 평이 안 되는 농사를 어렵사리 짓는 정자 아버지는, 아들도 아닌 딸을 멀리 여수의 학교까지 보낸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수학여행을 단순히 놀러 가는 것으로밖에 보지 않는 터라 바쁜 농번기에 여행은 사치라고만 여겼다.

드디어 수학여행 가는 날이 왔다. 이른 아침, 역 광장에 모여 인원을 파악하던 반장이 다른 아이도 아닌 애자가 아직 안 왔다고 했다. 여행비가 확정되기 전에 저금했던 돈을 찾아 나에게 맡겨놓고 날마다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애가 아니던가.

설마 오겠지 하는 사이에 발차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 반 아이들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차에 올랐다. 서서히 기차가 움직이자 다른 반 아이들은 전송 나온 친지들에게 목청껏 인사하며 기뻐 어쩔 줄 모르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초조하게 차창 밖만 바라보도 있었다. 그때 일제히 아이들이 애자 온다.”하고 소리쳤다.

애자가 플렛폼으로 연결된 구름다리를 허겁지겁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차창 밖으로 거의 몸을 내놓은 채 뛰어라. 애자야. 빨리와.” 하고 야단들이었다.

기차는 점점 속력을 내었고 간발의 차이로 차를 놓친 애자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모습이 차츰 멀어져갔다. 안타까운 심정은 아랑곳없이 기차는 힘차게 기적을 울리며 비취빛 바다를 옆에 끼고 달렸다. 차창 밖으로 멀리 보니 엄마섬, 아기섬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통통배는 너무나도 평화스러웠다.

즐겁게 가야 할 우리반 학생들은 모두가 우울한 채 맥이 풀려 아무것도 할 없었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해변을 지나 여수와 순천 사이의 첫 번째 간이역인 미평에 들어서고 있었다. 풀이 죽어 있던 아이들이 갑자기 선생님 저기 좀 보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믿을 수 없게도 애자가 가방을 휘저으며 기차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좀 전에 마치 자기들의 함성이 부족해서 애자가 차를 놓치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은 거의 절규에 가깝게 빨리 타 힘내. 야자야.”를 외쳐댔다. 상황을 파악한 옆 칸 학생들. 그 옆 칸의 승객들까지 모두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응원하는 바람에 기차가 쓰러질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애자는 일분도 체 정거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가까스로 내 손을 잡고 올라타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한참 울더니 간밤에 여행 가방이며 새 운동화까지 머리맡에 놓아두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밤새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에야 꽃잠에 빠져 늦었다고 했다. 바로 눈앞에서 친구들이 탄 기차를 놓치고 펄펄 뛰자, 마침 가족을 배웅 나왔던 택시기사 아저씨가 지름길로 달리면 기차를 앞지를 수 있다고 안심시켜주면서 요금도 받지 않고 태워 주었다고 한다.

기차는 언제 울고 언제 애태웠냐는 듯 노랫소리, 웃음소리를 싣고 두 번째 간이역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또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정자가 왔어요.” 밖을 보니 못 온다던 정자가 노란 보따리를 들고 서 있었다. 정자도 드디어 아버지가 허락해서 자기 고향인 덕양역에 나와 기다리고 있구나 싶어 우리는 신이 나서 외쳤다. “어서 와, 정자야. 빨리 타.”

우리를 발견한 정자는 재빨리 승강구가 아닌 창문 쪽으로 뛰어오더니 차창 너머로 손에 든 보따리를 건네주고는 쏜살같이 뒤돌아가 플렛폼에 서 있는 큰 측백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안타는 거야?” 어안이 벙벙해 있는 사이에 기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점 기차가 떠나가자 정자는 숨어있던 나무 뒤에서 조금씩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정자가 까아만 점으로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를 데려가지 못한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 때 반장이 보따리를 주며 장자가 선생님 드리라고 달걀을 가져왔어요.” 했다.

그 애는 따끈따끈한 달걀을 품에 안고 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차창 밖으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속 모르고 환호하는 친구들을 보도 얼마나 함께 가고 싶었을까? 나와 반 아이들이 잘 다녀오기를 바라며 달걀을 들고 기다려 준 정자.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있었다.

내가 말없이 엽서를 꺼내자, 이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준비했던 엽서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정차역인 순천역 우체통에 넣었다. 여수를 떠나 두 군데 간이역을 거쳐 오는 동안 우리 반은 더욱 끈끈한 정으로 묶인 한 덩어리가 된 셈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다시 여수역에는 한꺼번에 쉰여섯 통의 엽서를 받은 정자가 환한 웃음을 띠고 서 있었다. 그때 반 이이들이 그를 껴안고 팔짝팔짝 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도 그 간이역을 지나갈 때면 내 마음속에 가물거리며 멀어져 가던 정자. 언제나 단발머리 소녀로 남아 있는 정자가 측백나무 뒤에서 금방이라도 손을 흔들며 나올 것만 같아 두리번거리게 된다. 그리고 어디선가 선생님!’ 하고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환상에 젖는다.

이제는 내 품을 떠나 다들 어른이 되어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그들도 나처럼 이곳을 지나갈 때면 똑같은 감회에 젖어들겠지.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그리고 친구들과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

삭막하고 메마른 일상에서 지치고 울적할 때, 문득 떠오르는 간이역의 추억은 내 가슴에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등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