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토피아 / 김향남
뒷산 중턱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가끔 산에 오르고는 하지만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모처럼 나온 길이니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 좋으련만 그저 부산하게 오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가 보기에 안 됐던지 이따금씩 다람쥐가 달려 나와 작은 눈을 빛내기도 하고 산새들이 종알거리기도 하였으며 비 갠 뒤의 솔향기나 연분홍 진달래, 선홍의 단풍들도 심심찮게 아는 체를 하곤 했다. 그래도 오래 머물지는 못 하였다. 무엇에 쫓기듯 노상 잰걸음이었다.
그날은 해질녘에야 산에 갔다. 종일 혹사당한 머리를 좀 쉬고 싶었다. 숲은 조용했고 마침 운동기구들도 비어 있었다. 나는 비스듬히 놓인 긴 의자에 가서 누웠다. 발을 건 다음 등을 바닥에 대고 머리를 아래로 둔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러자 밑으로만 쏠렸던 혈액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어 그동안 미치지 못했던 저 뇌수 끝까지 속속들이 흘러들었다. 내 피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짜릿한 파동,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깊숙한 흐름에 기대었다. 가늘게 바람이 지나갔다. 젖은 빨래처럼 나는 늘어져 있었다. 누습한 내 몸 위로 다시 또 바람이 지나갔다. 나를 거풍하듯이 사부자기 불고 갔다.
눈을 뜨자 머리 위에는 푸른 솔, 또 그 위에는 드넓은 하늘을 이불처럼 덮고 납작 등을 붙인 나는 그 정지의 순간을 깊이깊이 호흡하였다. 내 머릿속은 한결 개운하고 편안해졌다. 산을 내려와서도 그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이후 나는 그것을 ‘비스드미’라 이름 붙이고는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갈 때마다 누웠다. 누울 때마다 오우, 쾌재라! 몸 둘 바를 모르면서…….
그런데 어쩐다? 그것은 산속에 있고 밤이 되면 갈 수도 없었다. 비가 오가나 눈이 와도 곤란했다. 욕심이 생겨서 집으로도 들이고 싶었다. 갸륵한 마음까지 더해져서 식구들 생각도 났다. 길은 어디에나 있고 구하면 얻는 법, 때마침 그와 비슷한 기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목을 고정시키고 머리가 아래 쪽으로 향하도록 거꾸로 매달릴 수 있게 한 운동 기구인데, 여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검색어를 넣으니 화면은 온통 그에 대한 정보로 가득했다. 사용자들의 후기는 나를 더욱 고무시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니 가히 만병도 다스릴 만했다. 자자한 찬사에 주저 없이 구매버튼을 눌렀다.
몇 개의 화분들이 자리를 옮겨가고 그 자리에 제2의 ‘비스드미’가 등극하였다. 근육질의 단단한 몸매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나는 바짝 그 위에 누워 예의 쾌재를 다시 불렀다. 그런데 웬걸 솔바람도 없고 건조한 회벽만이 밋밋하게 가로놓였을 뿐인 베란다의 그것은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쇠붙이의 차가움은 냉정한 현실처럼 소름이 돋게 하는데다 벌집 같이 무수한 구멍 속에 기우뚱하게 누워 있는 내 모습이 새삼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무슨 사단인가, 여차하다가는 애물단지가 되게 생겼다.
설상사상이라더니 좋아할 줄 알았던 식구들은 시큰둥했고 이어 겨울이 오고 있었다. 날씨까지 추워지니 찬밥 신세가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겨울이 깊어서는 아예 잊고 지냈다. 냉기 가득한 베란다 한쪽에서 허옇게 먼지 쌓여 가는 것을 그대로 버려 둔 채 무심히 지나칠 뿐이었다. 그러자고 구입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의 성급한 성질머리와 게을러빠진 습성은 그 자자한 쓸모들을 지레 외면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 밤, 풀리지 않는 과제를 붙들고 한참을 낑낑대다가 불쑥 베란다로 나갔다. 머릿속이 꽉 막힌 깡통 속처럼 답답하였다. 갈수록 까무룩해져만 가는 내 머릿속은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채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자구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나는 냉큼 그 위에 누웠다. 아직 추위가 느껴지긴 했지만 아랑곳없었다. 그동안의 홀대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삐그덕 하고 잠깐 놀라는 것도 같았지만 이내 군말 없이 나를 떠받쳐 주었다. 문득 겨우내 방치해 둔 것은 베란다의 이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언제든 쓰일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나를 방기한 채 잔뜩 웅크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 팔을 번쩍 들어 기지개를 켰다. 비스듬하게 알맞은 각도로 조정된 그 위에서 나는 서서히 균형을 잡아갔다. 긴장이 풀리고 차차 이완의 나른함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어? 달이다! 무심코 밖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장밖에 달이 떠 있던 것이다. 내 머리 이의 달님은 딱 알맞은 각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고 탐스럽고 인자하고 밝고 무엇보다 매혹적이었다. 대뜸 그때가 떠올랐다. 새해 첫 날, 해돋이는 못 보고 해넘이라고 보자고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드라이브를 하다 바다로 잠기는 해를 보았다. 떠나는 해를 배웅하는 일은 숙연했다. 바다 위의 노을은 더없이 아름다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쓸쓸했다. 해는 바다 밑으로 스러지고 무망중에 길을 잃은 나는 가뭇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해넘이를 보다가 공연히 울적해져 오던 밤, 놀랍게도 크고 둥근 달을 가까이서 보았다. 때마침 보름이거나 보름을 살짝 지났을 것이다. 잠잠한 어둠 사이로 자랑처럼 환한 달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마치 나를 위로하러 온 전령처럼 달은 침울한 내 마음을 일시에 바꿔버렸다. 나는 갑자기 희망에 부풀었다. 아무렴, 달님도 저렇게나 열띤 응원을 해 주고 있는데 가라않아 궁색할 필요가 뭐 있겠나!
어둠과 달과 나의 유토피아. 나는 한참동안 거기 누워 있었다. 두 팔을 벌리고 순하게 투항하는 자세였다. 눕는다는 것은 끝없이 희구하고 쟁취하려는 서있는 세계에 대하여 잠깐 휴지(休止)를 청하는 것이다. 수평 아래로 납작 기울어져 누운 나는 욕심도 고민도 다 내려놓은 무욕의 순간을 흔쾌히 향유했다. 겨우 등을 뉠만한 좁은 판대기 위, 궁벽한 벌집 한구석에도 달빛은 은은하였다. 저 둥실한 달 뒤에는 또 별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낙원이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의 한 틈바구니, 잠깐의 휴식, 비스듬히 누운 그 정지의 순간에 언제나 있었던 것이다. 흐붓이 달빛이 쏟아질 때는 가히 최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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