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없는 사람 / 구양근
나는 어려서부터 키가 작았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항상 맨 앞줄에 앉아야 했다. 새 학기 때 혹 운이 좋아 나보다 더 작은 아이가 들어와서 내가 둘째 줄에 앉을 때는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그런데 대학을 다니면서부터는 키대로 줄서기 없기 때문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일본에 유학을 떠난 지가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데, 그 때 내 자취방이 무코가오카 고교 라는 어느 고등학교 옆 이층집이었다. 그런데 키대로 줄서기를 우리에게 가르쳤던 일제는 그 때 벌써 그런 것이 깡그리 없어진 뒤였다. 운동장에서 조회하는 모습을 보면 키와는 아무 상관없이, 남녀 학생 구별도 없이 오는 대로 대충만 줄을 서서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키 작은 콤플렉스를 안고 부모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했던, 어쩌면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던 태산 같은 문제가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바뀌고 만 것이다.
또 나는 어려서부터 술을 못 먹는 것이 큰 콤플렉스였다. 술 한 잔만 마시면 얼굴이 벌게지는 것이 창피해서 살 수가 없었다. 남들은 술을 바가지로 마시면서 호기를 부리는데 이 못난이는 그저 술 한 잔에 백화만발하고 마니 이를 어찌 하리! 그 때 유행했던,
“술 못 마시는 사내가 그게 어디 사내냐. 내 이름은 자그마치 술독에 빠진 사나이~♪♪”
하는 노래는 마치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아서 무척 싫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외국여행을 15년간이나 하였지만 우리처럼 술을 퍼마시는 나라는 하나도 보지를 못했다. 그들은 기껏 맥주 한 잔 정도이거나 아니면 온더록 한 잔을 앞에 놓고 한 두 시간씩 이야기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정도라면 나도 충분히 세계의 사나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에서도 자동차 문화가 되면서 술을 안 마셔도 이해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더 놀랄 일은 요즈음 캠페인을 보니 술 먹고 저지른 실수는 너그러이 봐주던 옛날 관습을 깨고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이제 술 못 먹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세상이 사라지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상 나는 나의 개인적인 콤플렉스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동서 콤플렉스와 남북 콤플렉스의 두 개의 국가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동서 콤플렉스의 주범인 지방색은 과거 어느 정치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인데, 자기의 정적이 있는 지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그 지방을 푸대접하고 약을 올리면 그 지방 사람들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팔팔 뛰고 극렬한 행동을 한다. 그러면 언론매체들을 이용하여 “저기 보라!”고 그들을 비난하고 생중계하면 된다. 그러면 당선은 100% 보장되었다. 아마 그 정치가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 방법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그 방법은 그 뒤로도 계속되어 삼당 야합을 했던 어느 대권주자까지 이어졌다. 부산의 어느 복집에서 이번에도 지방색 카드를 쓰자고 노골적으로 그 지방출신의 기관장회의를 열고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당선 못시키면 ☓☓다리에서 빠져 죽자.”고 대놓고 말하였다. 그 때 한 야권주자가 그 복집을 몰래 촬영하고 녹음까지 하여 그 지방색회의의 현장을 완전무결하게 잡아버리고 만 것이다.
지방색 카드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은 그런 장면들을 생각만 해도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다행히 그 뒤로 거국적으로 “이번은 그 피해지역 주자가 당선되게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당선시켜 줌으로써 지방색이 치유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최대의 콤플렉스는 뭐니 뭐니 해도 일명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는 남북 콤플렉스다. 세계에서 가장 못난 민족! 세계가 다 해결했는데도 우리만 해결 못하고 자충수만 두고 있다. 세계에서 반공법이란 것이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구소련이 붕괴될 때까지는 우리도 많은 혼동을 하였다. 혹 공산주의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하고, 그러나 지금은 그들 자신이 실패를 인정했기 때문에 확실히 결론이 나왔다. 지금은 아무리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에게 자유를 주어도 거들떠 볼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일본 유학시절에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공산당들이 선거철이면 역전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도 서서 듣는 사람은 네댓 명에 불과했다. 일본인도 개인적으로는 공산당원이 청렴결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찍어주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런 생활을 하는 건 좋지만 그런 사회가 되는 것은 싫은 것이다. 그러니 항상 그들은 국회에서 불과 몇 석을 차지하는데 불과했다.
우리도 지금쯤 그들에게 마음껏 자유를 주어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얼마든지 자유를 주어도 한두 석 차지할까 말까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이 최소한 5~6석은 차지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외국에서 볼 때 우리 나라도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로 볼 것이다. 국가적으로도 전혀 관점이 다른 의견을 들음으로서 정책수행에 큰 참고가 될 것이고, 또 이북과 협상을 할 때 그들이 앞장서 주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풀려 나갈 것이다. 즉 국가에 큰 이익이 되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런다. 공산당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당시를 겪었던 사람의 제일성이다. 더 말을 하면 그들은 이제 이성을 잃고 만다. 그러니 그런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마음을 삭히고 이제 물러서야 한다. 레드 콤플렉스가 없는 세대에게 일단 맡기고 한 발짝 뒤에서 관망해볼 필요가 있다.
키 작은 콤플렉스가 그렇게 심하고 술 못 먹는 콤플렉스가 그렇게 심했으나, 시일이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동서갈등, 남북강등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참으로 허망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런 세상도 있었나 하고 웃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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