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 김경순
짝, 그 느낌만으로도 정겹다. 인간사에 짝 없이는 무슨 재미로 살까.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길에 곁에 있어야 할 사람들을 챙기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친구, 학우, 동료, 이성…….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짝들 중 일생을 함께할 반쪽을 찾는 일은 그 중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밤도 나는 ‘짝’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요즘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다. 결혼을 하고 싶은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과감하게 공중파에 출연하는 모습에서부터 긴장감은 시작된다. 혼기를 놓친 남녀, 못생겼으나 능력 있는 남자, 그리고 재혼을 하려는 사람들까지 출연하는 이유와 사연도 다양하다.
짝을 찾기 위해 생판 모르는 남자와 여자들은 일주일간 외딴 장소에서 합숙을 한다. 그들은 짝을 찾으러 온 목적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온갖 감정을 소모한다. 내 눈에는 그것이 대단히 용기 있어 보인다. 자존심도 버리고 수치심도 감내하며 혼신의 힘을 쏟아 붓는 그 과정이 더러 눈물겹거나 우스꽝스러울 때도 있다.
나도 만남을 주선한 적이 있다. 지난 연말에 혼기가 꽉 찬 노처녀 노총각을 소개했다. 만남을 주선하는 일은 조심스럽기도 하고 다소 책임이 따르는 일이어서 오래 망설이다가 실행에 옮겼다. 남자는 능력이 있고 여자는 외모가 출중했다. 둘은 만나자 마자 사랑에 빠지더니 한 달도 안 돼서 결혼날짜를 잡았다.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충고를 했지만 내 말 따윈 아랑곳없이 둘은 천생연분이라며 좋아라했다.
결혼 하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만난 사이치고는 서로 어지간히 맘에 들었나 보다. 둘은 일사천리로 집을 얻어 세간을 들여놓고는 거북이걸음으로 다가오는 결혼식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첫 중매가 이렇게 쉽사리 성사될 줄 몰랐다.
그러나 결정이 빠른 만큼 난관 또한 쏜살 같이 달려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둘이 너무 맞지 않는다며 여자가 상대의 단점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자 역시 너무 서둔 것 같다며 의기소침해 있었다. 여자나 남자나 결혼에 대한 기대 뒤에는 일말의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적잖은 혼란이 오는 것 또한 어쩔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 시기에는 들뜨고 행복한 기분이 절대적이어야 하건만 둘은 정말로 심각해 보였다. 급물살을 타던 그들의 행보에 기어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입장이 난처해진 나는 인생이란 것에 대해 줄줄이 일러주면서도 괜히 소개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둘은 벽창호인 양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웠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합일점을 찾기는 요원해 보였다. 중매를 했어도 너무 깊이 관여하는 오지랖을 피하기 위해 그쯤에서 나는 침묵모드로 돌아섰다. 결론은 당사자들 몫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 후론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천생배필을 맺어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하는 동안 내 마음도 그들만큼이나 무거웠다. 혹여 결혼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한 참이어서 이제나 저제나 날아들 안타까운 결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다행히 결혼식 날이 도래하도록 별다른 기미는 없었다. 그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은 각자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으리라 짐작했다. 그렇다고 식장에 가는 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신부대기실 앞은 아리따운 신부를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서른 중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화사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신부의 멋쩍은 웃음에 애교가 가득했다. 신랑 또한 환한 얼굴로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근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둘은 행복해 보였다. 잠시 흔들리던 마음이 제자리를 찾은 모양이었다.
신혼여행 다녀와서 맛있는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은 풍선으로 뒤덮인 웨딩 카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나의 첫 중매 커플은 무사히 결혼에 골인을 했다. 싱글이 대세라고 노래 부르는 노처녀 노총각 홍수 시대에 실로 값진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나를 기쁘게 했다.
신혼의 그들에게 언제 또 다시 난제가 찾아들지 모른다. 세상에서 내 마음에 꼭 맞는 인연이 어디 쉬우랴. 매번 잘못 만난 짝이 아닌지 의심을 하는 사이 세월은 그렇게 유유히 흘러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후회하고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 아니던가. 누구보다 현명하고 지혜롭게 자신들의 행복을 지켜가길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지금 ‘짝’에서는 예쁜 여자, 잘 생긴 남자는 무조건 첫 선택의 중심에 선다. 그렇다고 그 결정이 마지막 순간까지 유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첫 인상에서 남자들의 몰표를 얻은 여자는 결국 한 남자도 차지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다반사다. 왜? 계산을 잘못한 탓이다. 가만히 있어도 달려오는 남자들을 향해 여자는 너무 느긋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저 중에 단 한 사람의 내 사람이 있겠거니 믿고 있지만 그동안 남자들은 다시 계산에 들어간다. 내가 주는 만큼의 감정이 되돌아오는 기미가 없으면 다른 상대를 찾아 나서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투명과 불투명 사이에서 남녀들은 더 한층 애가 타고 자신의 선택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단 일주일이지만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고 겪는 동안 짝의 윤곽은 서서히 드러난다. 영악하거나 현명한 남녀는 결코 외모에 흔들리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끌림에 의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순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온다는 것을 눈치 챈 그들을 위해 나는 열렬히 응원을 한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 일이니만큼 악착같은 마음으로 서로에 대해 탐색하고 밀고 당기기를 늦추지 않는 사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은 어디선가 줄을 팽팽히 당겨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은 출연자들에게 고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남녀의 마음이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궁금증과 아쉬움을 자아낸다. 마지막 결정의 날에는 당사자도 아닌 내가 더 애를 태우곤 한다. 혹 내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가 괜찮은 여자와 짝이 되는 순간에는 스스로 주인공이 된 듯 대리만족을 하는 것이다. 이 리얼한 프로그램은 나를 얼마나 젊게 하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 저들 중 몇 쌍이 짝이 될 지 알아맞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화면 밖으로 빤히 보이는 아직 덜 여문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한 혹은 결혼에 대한 심리가 나의 인생 연륜을 더해서 답으로 나오니 결혼은 인간 중심의 삶에 가장 흥미로운 주제임이 틀림없다.
절대 남자와 절대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묘한 계산법에 눈을 뜬 자만이 짝을 찾는 선두주자가 될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짝 찾기에 성공한 커플에게 박수를 보낸다. 부디 결혼에까지 성공해 방향을 잃고 헤매는 솔로들을 자극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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