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영원하다 / 김선희
진압군의 대포는 바로 앞까지 다가왔고, 같이 일어설 것이라 생각했던 시민들은 고요하기만 하다. 이제 저 대포만 발포되면 엉성한 바리케이트는 무너질 것이고, 한줄도 안 되는 혁명의 도당들은 그들의 피로 파리의 보도를 적실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긴박한 바리케이트 안, 혁명군 지도자인 앙졸라는 모인 사람들에게 마지막 선택을 권한다. 죽음을 강요할 수 없기에 개죽음을 원치 않으면 누구든 떠나도 좋다고 한다. 노부모나 부인과 이이들이 있는 사람은 현실로 돌아가라는 마지막 탄원에 분위기는 숙연하다. 앙졸라의 결연한 표정,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의 팽팽한 긴장감 사이로 가녀리고 맑은 어린아이의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너는 듣고 있느냐
분노한 민중의 노랫소리를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민중의 음악을
너의 심장소리가 북소리와 하나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
이 어린 부랑아 가브로슈의 노래에 한두 사람이 가세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온 바리케이트 안이 하나가 되어 힘차게 노래한다. 죽음 앞에서 더 선명해지는 혁명의 의미가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고, 짓누르는 두려움과 공포의 분위기는 결연한 의지로 숭고해진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삶은 시작되고’ 민중의 고통스런 삶은 끝나리라. 다시금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곧 이들 모두 무자비하게 진압 당한다. 이들이 흘린 피와 그들을 죽인 총검은 그들이 부른 또 다른 노래의 선명한 색체처럼 강한 대비를 이룬다.
빨강, 분노한 이들의 피
검정, 지난 과거의 어두움
빨강, 여명의 밝아오는 세상
검정, 마침내 물러가는 어둠
영화 <레미제라블>의 전편을 통해 흐르는 노래들은 이처럼 호소력이 짙다. 선동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인물들의 갈등과 고뇌가 잘 표현된 스토리라인과 적절하게 배치된 감동적인 곡조들이 화면 전체를 압도한다. 작사가 알렌 부불리와 작곡가 클로드 미셀 쇤버그의 아름다운 노래 덕분이기도 하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또한 한몫 했다.
영화는 뮤지컬의 이야기 전개를 그대로 따라서 ‘송 쓰루Song Through’방식(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지금까지 송 쓰루 방식으로 완성된 무지컬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이니 상당히 낯설고 당황스런 형식이다. 마돈나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 역을 맡았던 영화 <에비타>와 이 영화 정도이다. 뮤지컬을 제작한 카메론 매킨토시가 영화의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배우들에 대한 믿음과 뮤지컬에 대한 존경을 담아 송 쓰루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앤 해서웨이 분)이 앞자리를 잃고 길거리의 여자로 전락했을 때, 그 절망적인 실정을 담아 ‘I Dreamed a Dream’을 부를 땐, 밑바닥 인생이 너무 절절하게 다가와서 똑바로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앤 해서웨이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평가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에뽀닌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한 ‘On My Own’, 혁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의지와 이를 막으려는 자베르의 다짐,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장발장의 고뇌까지 한 곡에 담고 있는 ‘One Day More’, 앞서 얘기한 가브로슈와 혁명군이 함께 부른 노래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까지 기억에 남을 명곡들을 명연기로 표현해 냈다.
노래 한 곡이 흐르는 동안 배우의 모습만이 화면 전체를 채우며 인물의 내면과 감정변화를 모두 담아내야 한다. 웬만한 연기력이 아니면 어렵다. 놀랍게도 주연 배우들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디테일한 감정변화를 잘 표현하며 흡인력 있는 연기와 노래로 감정 전달에 성공한다. 어떤 배우는 노래가 썩 뛰어나지 않았지만, 진정성이 느껴져서 더 몰입할 수 있다. 노래 실력의 부족이 흠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첫 장면은 죄수들의 노래 ‘Look Down’이 울려 퍼지면서부터 시작한다. ‘무덤’같은 배 위에서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하는 죄수들의 비참한 위로 사뭇 대비되며 울려 퍼지는 웅장한 노래. 가슴이 고동친다. 생각이 시작되기 전에, 이성이 작동하기 전에 이미 마음이 잔응하기 시작한다. 감성이 감응하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데는 이성이 필요치 않을 때도 있다. 의식하기 전에 이성이 판단하기 전에 뜨거워진 마음이 알아본다. 의식 이전의 눈물과 감동이 위험할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기분 좋은 감응이다. 이런 감각적인 감동은 작곡가의 역량 덕도 있지만 많은 부분 원작 소설의 낭만성에서 온다.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답게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는 당대 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낭만적 추구가 짙게 드러난다. 19년간 감옥살이, 주교와의 만남, 한 도시의 시장이자 공장주로의 극적인 변화, 한 아이의 구세주, 등이 장발장이라는 한 인간에게 구현돼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있을 법하지 않다. 당시 일군의 자연주의자들에 의해 비난받을 만도 하다. <레미제라블> 출간 당시(1862년) 공쿠르 형제는 “거짓투성이”라고 비난했고, 보들레르 또한 “추잡하고 하찮은 책”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고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위고에게는 이 영웅적이고 고귀한 인간상은 버릴 수 없는 소재였다. 끝까지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과 분노를 사랑과 화해로 변화시킨 한 인간의 삶은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래 프랑스인들의 자신감은 드높았다. 역사를 이끌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 소설의 배경이자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사건인 1832년 혁명의 정당성에 대해 위고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프랑스는 항상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나라이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지배자가 쓰러질 때는 모든 나라에서도 지배자가 쓰러진다.”
요컨대 프랑스가 인류의 가장 앞에서 진보의 첫걸음을 떼는 나라라는 의식이 강하게 있었다. 인간의 끝없는 이상 추구와 정신의 고양은 이 시대의 사명이었다. 위고는 그 사명을 이 거대한 소설에서 이루어냈고, 프랑스와 함께 인류도 그 유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됐다. 뒤이은 시대의 에밀 졸라나 공쿠르 형제들이 보기에 낡은 시대정신일 수도 있었으나, 이 거대한 낭만의 유산은 지금도 유효해서 절망에 빠진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어두운 현실을 위로한다.
어린아이의 꿈이 비현실적이라고 해서 누구도 그것을 가치 없다고 하지 않는다. 꿈과 이상은 현실을 살아갈 힘을 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바꿀 힘도 준다.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소설은 인간의 포기할 수 없는 이상과 꿈을 낭만적으로 잘 표현한 걸작이고, 영화 또한 그 긴 소설의 뼈다귀를 잘 간추려 감동적으로 엮어낸 수작임에 틀림없다.
'수필세상 > 좋은수필 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수필]시간혁명 속에서 / 정목일 (0) | 2016.06.28 |
---|---|
[좋은수필]일등주의 / 김근혜 (0) | 2016.06.27 |
[좋은수필]왕언니 / 윤묘희 (0) | 2016.06.25 |
[좋은수필]짝 / 김경순 (0) | 2016.06.24 |
[좋은수필]A형 남편과 B형 아내 / 김민지 (0) | 2016.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