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 / 윤묘희
아파트 정원수를 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편안하게 느낌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들어앉아만 있다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나를 더욱 못 견디게 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억울했다. 내 나이가 아직은 아닌데, 하는 거부감이 앞서서 이 생활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뒷산을 가볍게 오르내리던 활기찬 행보, 수영장에서 만끽했던 성취감, 이런 것들이 불쑥불쑥 나를 큰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요즘처럼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안부전화가 뜸하기라도 하면 ‘신경 쓰인다’는 평생지기 벗이 있다. 그는 오사바사하거나 잔재미가 있어서 착착 안기는 그런 인물은 아니다. 늘 그 자리에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있는 여인이다. 큰아이 고등학교 때 학부모로 만나 40여 년 한결같은 친구이다. 엊그제는 모처럼 전화했더니 “김사장 외출했는데요. 안 그래도 낮에 밥상에서 요새 통 전화 없다고, 소식 없으면 신경 쓰인다고 하더라구요.” 그 남편이 받는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안부가 궁금하다기보다는 늘 내 안위가 걱정되는 것일 게다. 피를 나눈 형제들도 잊고 살기 일쑤인데, 신경 쓰인다는 말에 왜 나는 가슴 뭉클하기 까지 했을까? 멀리 사는 딸아이 소식이 없으면 자꾸 마음이 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기에 손을 뻗다가도 ‘에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고 마는 친정어머니 심정에서였을 것이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대해주는가에 따라 확연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7년 전, 큰 수술 후 깨어나니 신새벽인데도 내 머리맡에 그가 사색이 되어 떨고 서 있었다. 그녀가 내게 한 첫 말, “이 다리로 어떻게 살거나!”였다. 그 한마디가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문병객들은 날 위로하느라 그랬겠지만 머리를 안 다쳐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탑차가 앞에서 오는 나를 못보고 핸들을 잘못 꺾는 순간 백미러로 어깨를 받아서 난 교통사고에서 나도 그런 자위 아닌 자위를 했었다. 그녀인들 왜 듣기 좋은 말을 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마치 자신이 당한 일이라 여겨져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일이 막막해서 터져 나온 신음소리였을 것이다.
그 뒤로도 두 번의 수술시간 내내 그는 내 병실을 지켰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달려왔다. 탁자 위 빈 생수병으로 보아 어지간히 속을 태웠겠구나, 짐작되었다. 마침 둘째는 교환교수로 식솔을 데리고 외국에 나가 있었고 큰며느리도 아이들 뒷바라지로 나가 있던 터라 의지할 데라곤 간병인뿐이었다.
입원해있는 동안 나는 매일 밤 괴물에 시달리는 공황장애를 계속 겪었다. 교통사고 환자가 겪는 후유증이란 했다. 일흔 가까이 살면서 잔병치레는 했어도 수술은커녕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었다.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찌나 당황스럽고 겁이 나던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내게 그는 끝까지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하였다. 수시로 병실에 드나들며 크고 작은 일을 헤아려 해결해 주었다. 간식이나 필수품 등을 사오는가 하면 몰래 베게 밑에 봉투를 찔러두고 가기도 했다. 용돈도 필요할거라는 그의 배려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러니 멀리 사는 딸아이나 직장에 매어 어쩌다 들를 수밖에 없는 큰아들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뼈에 사무치게 고맙다는 말은 어런 때 하는 표현일 게다. 건강해지면 그 은혜 꼭 갚으려했는데….
나는 비교적 병 자랑을 잘 하는 편이다. 같은 연배의 지인과 대화 중, “어지럼증으로 승강기를 못 타서 아파트 마당에도 못 내려간다.” 이런 말을 무심히 했다. 그런데 “그래요?” 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탄력이 붙는 게 언뜻 느껴졌다. 잘못 들었나 싶어 그 느낌을 다시 떠올려봤지만 분명히 “그래요?”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왜곡된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는 아마 내 정황을 상상하며 승강기 안에서 무한히 감하해 할 것 같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일에는 너그럽지 못한 게, 은연중 속마음을 보이는 게 나이 든 이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쿡쿡 웃음이 나왔다. 혹시 내 전화를 끊고 승강기를 몇 번씩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며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지.
우스갯소리를 하다 보니 전에 그 친구와의 농담이 생각난다. 은행에서 마나 일보고 나오며 내가 조금은 달떠서, “노인네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역시나네요!” 했더니 “당근이지요. 오뉴월 하룻볕이 어딘데요!” 그도 한 옥타브 올린다. 의외였다. 농도 잘 받았다. 그가 권해서 부어왔던 적금을 찾은 날이었다. 그는 나보다 살짝 연상이다. 우리는 말을 놓지 않는 사이다. 아이들 일이라든지 어떤 문제에 부딪쳐 갈등할 적에 자문을 구하면 항상 정답을 말해준다. 그럴 때는 하릴없는 왕언니다. 이런 신뢰와 우정이 오늘에 이르렀다.
흔히들 사춘기 후에 만난 친구와의 우정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친구 한 사람만 곁에 있어도 잘 살은 인생이라고 하나 보다. 넘치게도 내게는 두 사람이나 있다. 언젠가 밝혔던 본의 아니게 내가 형님이 되어 버린 동갑내기 친구도 있다. 그는 매일 빠짐없이 내 안부를 챙긴다. 돌이켜보면 내 쪽에서 베푼 것보다는 순전히 이들의 넓은 품 덕분으로 반세기 가까운 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애정 어린 위로와 따뜻한 손길이 없었다면 나는 번우(煩憂)한 일상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리라. 참으로 좋은 친구들이다. 여생을 같이 하고픈 사람들이다.
오늘 따라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수가 한결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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