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 만들기 / 박세경
모양도 색도 시공도 다른 내 삶의 조각들을 꺼내본다. 오욕칠정에서 한 가지도 벗어나지 못한 삶이다. 그 조각들은 마구 뒤섞여 갈피를 잡기 어렵다. 앨범을 정리하듯 구분을 한다. 기쁨과 슬픔, 성취와 실패, 신뢰와 배신, 사랑과 미움, 등등…. 정말 많고도 다양하다. 이리 나누고 저리 섞기를 거듭한다. 내 삶의 한 살이를 오색 아니면 무지개색조각보로 만들 수 있을까?
문득 내 혼수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조각보 생각이 난다. 각양각색의 작은 조각보는 헝겊자투리 싸게, 큰 조각보는 반짇고리 보, 세모가 일정한 베보자기는 밥상보, 그 보자기들은 지금 내 손에 하나도 없다. 베보자기는 필요에 따라 오래 요긴히 쓰다 보니 낡아서 버렸고, 다른 비단 조각보 두 개는 어머니의 수공과 정성이 아까워 장속에 간직만 하다가 옛 물건을 모아 전시하는 행사에 보내서다.
이제 조각보는 우리 생활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더러 컬트라는 이름으로 아기 이불이나 요, 기타 장식품으로 만들어 쓰는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엄마들도 있지만 실용성을 우선하는 현실은, 소모적이라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대신 다양한 프린트 천이 그 아름다움을 대신한다.
며칠간 씨름을 해, 폐기와 보류, 활용으로 분류하기를 끝낸다. 활용은 기쁨 성취 사랑 신뢰 등, 색이 곱거나 모양이 반듯한 것, 내용이 충실하다 생각되는 것들이다. 방안 가득히 늘어놓고 궁리가 많다. 동그라미, 네모, 여섯모 여덟모, 우선 끼리끼리 놓아보자. 사랑만 해도 상대가 다르고 주고받는 것도 일방적인 것과 쌍방적인 것이 있다. 성취나 기쁨도 가지가지, 모아놓고 보니 자기 미화가 지나치다.
보류 무더기를 뒤적여 본다. 몇 년에 한 번 입을까말까 하는 옷, 언제 신을지 모르는 신발을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버리지 못하듯이 성취나 실패라 이름 지을 수는 없지만 애착이 가는 수많은 사연들…. 몇 가지 추려서 귀퉁이에 끼워 넣어본다. 아직 얍삽한 속내가 환히 드러난다.
폐기처분할 것들을 다시 펼쳐본다. 나태와 분노, 원망 등의 허접쓰레기들, 내 추한 모습이다. 그 외에도 내 이익을 위해 남의 손해를 외면 한 일, 절망에 미움 시기 질투, 비방까지 줄줄이다. 얼른 종량제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주둥이를 비끄러맨다. 순간 내 생의 마디마디마다 들려왔던 음성이 내 귀를 때린다. “너는 내 것이라, 고난도 기쁨도 곧 지나가리라.” 반갑다. 바로 그 음성이 기사회생의 단초가 되어 나를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지 않았던가.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소생은 순탄한 행복을 뛰어 넘는 보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풀고 헤집어 본다. 칙칙하고 큼직한 조각들을 꺼내 이곳저곳 비집고 들여 놓아 본다. 버린다고 잊힐 수 있는 것 들이 아니다. 비로소 내 모습을 닮아 간다.
어머니가 나를 쏙 빼닮았기에 애착이 생긴다. 곱고 아름다운 조각보를 모아보려던 욕심을 접고 무채색까지 어우러진 나만의 조각보를 만들기로 마음을 굳힌다.
성에 차지 않더라도 내 모습 그대로, 어머니의 마음까지 되새김질하면서 한 땀, 한 땀 이어 붙여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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