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 머무는 사계(四季) / 백임현
멀지 않은 고향에 조그만 텃밭이 있다. 시골길을 오르내리며 채마 가꾸는 일이 퇴직 후 우리의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어린 시절 뛰놀던 고향의 흙을 다시 만지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 우리의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채소를 심고 가꾸는 일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며 농사를 배우기 시작한지 어언 십년이 다가온다.
밭에 엎디어 흙을 만지는 일, 그 자체는 중노동이 아니어서 노인들이 하기에 크게 무리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영농기술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것도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 땅에 심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주는 것이 아니다. 기술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때를 놓치지 않고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비료줄 때 비료 주고 익은 곡식을 거둬들일 때 거두는 일이다. 이 모든 절차가 어김이 없어야한다.
요즘은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계절에 관계없이 갖가지 과일 채소를 구경할 수 있지만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농사철을 제대로 모르면 ‘철모르는 놈’으로 비하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조선시대 ‘농가월령가’는 다달이 절기에 따른 농사일정을 주체적으로 제시하고 시기에 맞춰 부지런히 일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적으나마 농사라고 흉내를 내고 있는 우리도 ‘철모르는 농부’가 되지 않으려고 계절의 변화에 남달리 민감하다.
햇살이 금빛으로 눈부신 3월이면 이 땅에 봄이 온 것이다. 옛날 선조들은 겨울이 한창인 2월 초순에 입춘(立春)을 세워 봄소식을 전했으나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봄은 3월이다. 3월이면 전국의 신입생들이 세 옷을 입고 입학식을 하면서 싱그러운 봄의 서곡을 시작한다. 도시의 봄은 아이들의 부푼 꿈이 있어 희망의 계절이게 한다. 이 때쯤이면 우리도 겨우내 던져두었던 농기구의 먼지를 털고 연장을 챙겨 밭으로 간다. 밭에 나가 무질서하게 달려 있던 폐비닐을 걷어내고 이랑을 고르며 대지의 겨울잠을 깨운다.
3월말이 다가오면 밭 가운데 심은 목련이 백옥 같은 봉우리를 부풀리고 채마밭 둘레의 쥐똥나무에서는 마디마디 좁쌀 같은 새 순이 함성처럼 일제히 솟아오른다. 아직 쌉쌀한 날씨인데도 어느새 파밭에는 언 땅을 뚫고 돋아난 생기 있는 연둣빛이 봄을 재촉한다.
우리는 채소욕심이 많다. 그래서 해마다 많이 심는다. 토마토, 가지, 고추, 고구마, 콩 등 갖가지 채소를 오백여 평 채마밭에 빈틈없이 모종한다. 무공해 채소를 좋아 하는 이웃 친지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다. 작물이 가득한 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채소가 자라고 잡풀도 자란다. 하늘은 공평하여 잡초도 독초도 자라게 하지만 농부들은 여름내 잡초와 싸우느라 땀을 흘린다.
해마다 하지가 다가오고 장마가 시작될 무렵이면 극심한 가뭄이 온다. 그래서 농촌에는 닷새 장이 깨어져야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닷새마다 비가 와야 한 해 농사가 제대로 된다는 것이다. 더하고 덜한 해는 있어도 가뭄은 통과의례처럼 찾아오는 초여름의 불청객이다. 특히 지난해 한발(旱魃)은 예년에 없는 기세로 대지를 태워 뿌리가 약한 작물은 거의 다 해를 입었다. 정성을 다해 돌보던 채소들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스러져 가는 정경은 애처롭고 안타깝다. 이렇게 애를 태우다 지쳐 농사를 포기할 무렵이면 그제야 구세주처럼 비가 온다. 죽어가던 모든 초목이 몇 모금 물을 마시고 생기를 찾아 되살아나면서 채마밭은 다시 푸르러진다. 그 때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 가뭄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하늘이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년에 한 번씩 하늘은 이런 식으로 인간의 오만을 경계하는 것 같다.
여름 내 짙푸르던 녹음이 엷은 갈색으로 물들면서 시름에 잠기면 하늘은 아득히 높아가고 텃밭 위에는 쌍쌍이 짝지어 나는 고추잠자리의 군무로 눈이 어지럽다. 어느 틈에 텃밭에 가을이 머물고 있다. 고추가 붉게 타고 산에서 들에서 흙 속에서 이 땅의 모든 열매들이 알알이 여물어 씨앗을 만들고, 풀밭에 사는 풀벌레까지도 애절한 울음을 울며 짝을 찾는 계절. 인간에게는 가을이 추수동장(秋收冬藏)의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지만 그러나 가을은 땅 위의 초록에서부터 티끌 같은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조용히 그러나 분주하게 한철의 생을 마감하는 엄숙한 계절이다.
이슬이 얼어 서리가 되는 한로상강(寒露霜降) 절기가 되면 머지않아 입동(立冬)이다. 그 때부터 텃밭은 쇠잔해 가는 모습으로 처량하다. 몇 차례의 된서리를 맞고 나무막대가 되어 서 있는 고춧대, 토마토 나무, 가짓대 등의 모습은 생명의 무상감을 느끼게 한다. 비록 초록일망정 저것들에게도 활기 넘치는 싱싱한 전성기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만물은 변한다.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있고 전성기가 있으면 쇠퇴기가 있다. 그것이 음양의 이치다. 그것이 사람이라고 다르겠는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우리의 삶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이며 인간의 숙명이다. 이 엄숙한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원리야말로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우주의 법칙이며 변역(變易)과 불역(不易)의 핵심사상이다.
추수가 끝난 텃밭은 황량하게 비어있다. 그 무성했던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원시반종(原始反終), 모든 생명은 원해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고 주역(周易)은 말한다. 자연이 성서라는 말이 있다. 우주만물의 이치와 근원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 은자들은 세속을 버리면 자연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상추 아욱 쑥갓 씨를 뿌리러 간다. 텃밭에 또 다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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