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간방을 떠나 / 류영택
처음 이 집에 이사 오던 날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했는지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신혼부부가 이사 온다는 말에, 혼숫감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 같았다.
이삿짐은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뜯지도 않은 종이 상자에 든 비키니 옷장과 붉은 상표가 붙어 있는 양은냄비, 작은 이불 보따리, 처녀시절 아내가 입던 옷과 자질구레한 세간이 전부였다. 대문 안으로 물건을 들여 놓을 때마다 사람들은 쭉 빼고 있던 고개를 갸웃 거렸다. 뭔가 잘못 된 것 아닌가. 결혼식을 올리긴 올린건가. 쑥덕거리는 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이삿짐을 나르면서 자꾸만 얼굴이 붉어졌다. 아내도 땅만 내려다보며 짐을 날랐다.
집 주인은 의기소침한 아내와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부뚜막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짐 정리를 하는 우리 부부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위로의 말인지 참 말인지 몰라도, 문간방에 이사 오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것이다. 전에 살던 사람도 그 전에 살던 사람도 하나 같이 전셋집을 얻어 나갔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듣기 좋은 거짓말이라고 해도, 재수 좋은 참말로 믿고 싶었다.
문간방은 말 그대로 대문을 들어서면 제일 첫 집이다. 화장실이 제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화장실을 들고 나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릴 때마다 코를 틀어막아야 한다. 어쩌다 갈치 냄새라도 풍기는 날에는 수많은 눈들과 마주쳐야 하는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래서 문간방은 그 집에서 제일 방값이 싸다.
아내와 나는 달동네 그 집에서 한동안 살았다. 산허리를 돌아 긴 골목을 오를 때마다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살다보니 그 집도, 문간방도 살만한 곳이었다. 다들 막노동을 하거나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직업이라 직책 대신 김 씨, 이 씨, 호칭을 불러야 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 스스로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자존심이며 행여 남에게 무시당할까봐 나름대로의 방어수단이었다.
'문간방 유 씨' 나는 그 집에서 최고로 따라지 호칭을 부여 받았다. 나는 날마다 문간방 탈출을 꿈꾸었다. 앞이 암담해져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간방에서 전셋집으로 이사 갔다는, 재수 좋은 문간방이라는 주인아주머니의 했던 말을 떠올리며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
얼마 전 그 집 앞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빌라에 가려져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 집 앞에 서서 아내와 나는 얼굴을 마주봤다. 그 옛날 주인아주머니 말처럼 우리는 문간방에서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 집 대문을 나서던 날 아내의 등에는 갓난아이가 업혀 있었고, 이사 들어 갈 때 한 수레도 되지 않던 짐을 화물차에 실어야했다.
"정말, 하이타이 거품처럼 살림이 일었는데."
아내는 지난날을 회상한다.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도 그곳에는 지난 날 나와 청소부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그리고 연탄불에 된장국을 얹어놓고 골목을 서성이던 내 아내와 사진을 걸기 위해 벽에 못질을 하는 아주머니 같은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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