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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세상/좋은수필 3

[좋은수필]탱자/ 정명희

탱자/ 정명희

      

 

 

어스름 새벽녘이다. 언뜻 누가 부르는 느낌에 눈을 떴다. 아버지 같기도 했다. 대답하듯 차에 올라 천천히 달려본다. 밝은 날엔 무심코 지나쳤던 순환도로 옆 교회 종루엔 동그란 후광이 새벽의 끝자락을 베어 물고 있다. 보랏빛 여명 속 줄지어 선 가로등, 그 위를 무리지어 선회하는 새떼, 짙은 안개는 독일의 어느 거리에 온 듯 마음 설레는 풍경이다.

    

걸음의 종착지는 늘 한결같다. 댐 안 그곳 산비탈이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교복 입은 아이들이 느릿한 걸음으로 앞을 지나간다. 그 모습 속에 과거로 남은 학창시절의 일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그땐 시간이 마라톤 선수가 달리듯 빨리 가버려 어서 성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조바심은 가족들에게 더 이상 애처로움을 자아내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꿋꿋이 잘 살아감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었다.

    

주어진 공부가 즐거움을 주기보다는 넘어야 할 높은 산으로 늘 끙끙대고 있었다. 그런 딸을 위해 아버지는 새벽이면 이슬 머금은 가시 달린 탱자를 따다 주곤 하셨다. 탱자 향이 머리를 맑게 해 공부가 저절로 될 거라는 게 이유였다.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면 아버지는 환한 얼굴로 슬며시 다가와 오늘은 족집게처럼 잘 맞추는 유명한 도사를 만났다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도사가 말하기를 '치마 두른 아이 하나는 시험이라는 시험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단다.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아버지에게 눈을 흘겼지만, 그 말은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면 항상 부적이 되어 주었다. 그 믿음 때문이었을까? 때로는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하게 해주는 묘한 신통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얼토당토않게 친 시험에서 의외의 성과를 얻기도 했으니 말이다.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지레 풀죽어 있으면 "어설픈 날 새알 많이 줍는다는 얘기 못 들어봤어? 최선을 다하고 나면 하늘도 다 알아주는 법이다. 좀 기다려봐라."하며 마음 다독여 주시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하늘로 가시고 난 뒤 그런 신통력은 아버지와 함께 다 사라져 버린 듯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벌써 몇 십 년이 지났는데도 가끔 꿈속에서 끙끙대며 문제를 푸느라 도전하곤 한다. 연필 놓고 시험지 엎으며 마무리하려고 뒷장을 한번 보는 순간, 아직도 풀지 않은 문제가 빼곡히 남아 있어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꿈이다. 시뻘건 대각선 마구 그어진 채 다 틀렸다는 답안지가 보인다. 그런 꿈을 꾸고 난 뒤에는 늘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고 시린 느낌이 밀려온다. 마치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도 본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본다. 뜻 모를 허탈감이 내 삶 속으로 밀려온다. 아마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사라져 버린 황량함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만났다는 도사도, 머리가 맑아진다는 탱자의 향기도 딸을 측은하게 생각한 아버지만의 연출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탈진할 때까지 시험에 매달려 있던 시절, 그 끝 무렵 도서관 벽에 달라붙어 서걱대던 담쟁이덩굴마저도 서리 맞은 풀처럼 기죽어 보였었다.

      

이제는 아버지도, 도서관 벽을 타고 오르던 마른풀 덩굴도 빛바랜 아득한 추억으로 남은 그리운 장면들이다. 그런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을 밑거름으로 이룬 나의 꿈은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감상이 밀려들 때 펼쳐보며 위안 받는 것이 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한 R.W.에머슨의 글귀이다. 나로 말미암아 혹시 조금의 위안이나마 얻을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 꼬박 몇 십 년이 더 걸려서라도 한결같이 소망해야 이루어지는 그런 꿈 말이다.

      

산기슭 아래 동네 어귀 울타리 덤불 속에 아직도 남은 몇 개의 샛노란 탱자처럼 가슴속 불씨 하나 지피며 나의 새봄을 기다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