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은 촛불 / 조이섭
산소 봉분의 눈물 자리가 선명했다. 지난여름 폭우에 듬성듬성하던 잔디가 쓸려나갔다. 아들의 불효만큼 흙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제 잘못은 접어두고 비 탓만 하려니 가슴이 먹먹했다.
추석이 다가오자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겨끔내기로 벌초하는 날짜를 물어와 고마웠다. 이리저리 시간을 맞추고 사정을 살펴 아들 둘과 며느리, 우리 부부가 벌초에 나섰다. 가지고 간 제수를 차려놓고 절을 올린 다음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모자를 가지고 오지 않은 큰아들 내외는 그늘진 곳에 자리 잡았다. 둘째에게 묘소 근처로 우거져 나오는 검불을 쳐내라고 무쇠 낫과 톱을 쥐여 주었다. 봉분과 그 주위는 아내와 내가 맡았다.
풀을 거머쥐고 뽑다시피 하는 내 솜씨로는 낫질 시범을 보여 주지 못하고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만 거푸 할 따름이었다. 오히려 아내가 어릴 때 시골에서 꼴 베던 솜씨를 발휘했다. 큰아들은 엄마가 하는 모양을 보더니 곧바로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부모님 산소만 하는 벌초라 예초기를 따로 장만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날에 다칠까 걱정되기도 하려니와 아무래도 낫으로 하는 벌초가 더 정성스러울 것 같아서였다. 아내와 나는 힘이 있을 때까지는 그렇게 하자고 마음을 맞추고 해마다 낫 벌초를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추석은 물론이고 한식에도 나들이 삼아 함께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벌초하는데 너희를 왜 데리고 오는지 아나?”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우리도 이렇게 벌초하라고.”
내가 고개를 끄덕였더니 두 녀석이 뜬금없이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 저희 엄마 아빠가 무덤에 누워 있는 것이 연상된 모양이었다.
“울지 마라. 우리는 너희들 키가 아빠보다 훨씬 클 때까지 오래 살 거야.”
두 녀석을 양팔로 끼고 한참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들은 벌초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엄마 아빠가 자기들과 영원히 함께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어슴푸레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기가 할 일은 스스로 살피기 시작했다. 부모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허리를 펴느라 일어서서 땀을 훔치며 곁눈질을 해보았다. 며느리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낫 따로 풀 따로 놀았다. 깎았다는 자리나 깎을 자리나 그게 그거였다. 친정에서 벌초는커녕 성묘 한 번 안 가 본 처지에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만으로도 기특했다. 큰아들은 제법 맵시 있게 낫질을 하고 작은아들은 봉분 쪽으로 범접하는 검불을 힘껏 밀어내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는 마음을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제대로 쉬는 시간 한 번 없이 산소 손질을 마쳤다.
벌초는 산소 주위의 풀을 깎고 깨끗이 손질하여 선조들의 안식처를 돌봐 드리는 행사지만, 그보다 중요한 의미는 조상들을 잊지 않고 기리는 데 있다. 산소를 조상을 모셔놓은 단순한 공간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거기에다 시간과 시간,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축이 더해진 사차원의 공간으로 봐야 한다.
조상들이 비록 흙으로 돌아갔지만,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지만, 세상에 태어난 장삼이사가 한 줌 기록 남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촛불 하나가 사그라지기 전에 다른 초에 불을 옮기고 꺼졌다면, 그 촛불은 결코 꺼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거나 기억된다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우울하고 외로운 노래를 부르면 그런 기분에 젖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고단한 일이 있을 때 부모님 산소에 와서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으면 마음이 후련해진다. 좋은 일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면 봉분 마루의 잔디가 춤추듯 산들거린다. 부모님께서 살아계셨을 때와 다름없이 위로와 칭찬을 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공사장에 거푸집 못 빼는 일을 하러 다닌 적이 있었다. 고정적인 일이 아니고 그때그때 연락이 있을 때만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나갔다. 그럴 때면 가욋돈이 생겼다고 나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그 맛이 들어서 용돈이 궁하면 엄마가 요즘은 일하러 안 나가나 하는 못된 마음을 먹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떠오르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땀 흘리며 장도리 하나로 대못을 빼고 받아 온 일당 몇 푼을 노린 철없는 아들이었다. 그때는 불효막심했던 속마음을 알 리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훤히 알고 계실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면서 다시 술 한 잔을 올렸다.
오순도순 이야기하고 있는 아이들과 말끔한 산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불현듯 내가 부모님과 아들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받은 것보다 아이들한테 준 것이 턱없이 모자랐다. 부모님께 해 드린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더 잘하고 있다. 아이들이 내게 안겨주는 분수 넘치는 기쁨 모두가 여기 계신 두 분의 음덕이라 여겨졌다.
풀을 베고 나서 푸석해진 묏등의 흙을 고른 다음 산소 앞에 나란히 서서 작별 인사를 했다. 큰아들 내외에게 떡두꺼비 같은 왕자와 예쁜 공주를 하나씩 점지해 달라고 마음 모아 빌었다. 새 생명 탄생의 기구(祈求)가 적멸(寂滅)의 궁(宮)까지 닿을 것이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모랭이를 돌아들며 뒤돌아보았다. 부모님 봉분 어름에서 옛날 고향 집의 창호지 바른 창문 너머로 비치던 촛불 빛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흰옷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삽짝문에 기대서서 어여 가라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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