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 임만빈
굴비는 굽는 냄새를 풍기면서 먹어야 제격이다. 연기 속에 숨어있는 생선 굽는 비릿한 냄새가 에피타이저(appetizer)처럼 식욕을 돋운다. 변변한 반찬이 없던 시절, 굴비 하나를 구워 온 집안 식구들이 밥을 해치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집들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어 굴비를 굽는 냄새가 온 집안을 채워도 옆집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의 아파트 생활에서는 다르다.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고 굴비의 참맛을 즐기기가 힘들어졌다. 아무리 환기를 잘해도 굴비 굽는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고 위층과 아래층으로 번지곤 한다. 이웃들은 비릿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린다. 특히 서양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런 냄새를 싫어한다. 굴비 구운 냄새가 몸에 배면 학교에서도 놀림 받기가 십상이다.
어머니가 도시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시던 날, 문득 어릴 적 부엌 천장에 짚으로 묶어 매달아 놓았던 굴비들이 떠올랐다. 동지나 푸른 물결에 황금빛 비늘을 씻다가 어느 날 교접의 본능을 따라 헤엄쳐 올라왔던 영광 칠산 앞바다, 그곳에서부터 굴비의 뼈져린 삶의 고통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달빛으로 화장化粧한 교접 상대자의 빛나는 몸매에 홀려 무작정 따라나섰던 삶의 여정, 미래에 다가올 고난은 조금도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정신없이 삶의 길을 내딛다가 걸려든 어부의 그물 속, 갈무리 중 몸을 파고들어 한없이 조이는 소금의 짠맛, 결국 빛나던 조기의 몸은 소금에 절려 쭈글쭈글해지고 비늘은 생기를 잃었을 것이다.
열일곱 나이로 열다섯 신랑을 따라와서 터를 잡았던 고향집, 그곳에서부터 당신의 뼈저린 고통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삶이라는 그물에 걸려, 여리고, 맑고, 흰 피부는 소금물보다 더 짠 삶의 각박함에 절여 점점 검고, 투박하고, 주름이 생기고, 그리고 주름의 골은 세월에 따라 자꾸만 깊어갔을 것이다. 땀에 젖은 베적삼에서 맡던, 비릿하기도 하고 약간 역겹기도 한, 소금에 절인 듯한 삶의 냄새가, 점점 당신의 몸에 배어 갔을 것이다.
자식 집에 들른 당신은, 그 냄새를 맡고 코를 잡고 도망치는 손자, 손녀들을 붙잡지 않았다. 소금에 절인 듯한 역한 냄새가 당신의 삶을 쥐어짜낸 냄새라고 우기면서 아이들을 혼내지도 않았다.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인고忍苦의 세월의 아픔이 어디 손자, 손녀의 애교 섞인 멸시의 눈초리와 비교할 만큼 가벼웠겠는가? 앙증스런 손동작으로 코를 막고 도망치는 손자, 손녀의 밉살스런 행동보다 견디기가 쉬웠겠는가?
그렇게 당신은 굴비같은 삶을 살아왔다. 조기가 동지나 깊은 바닷속 깨끗한 물만 마시듯 당신은 열 길 넘는 깊이의 고향집 우물물만 품어 올려 마시면서, 조기가 영광 법성포 해변의 맑은 일사광선으로 몸을 말리듯 당신은 고향의 오염되지 않은 햇빛으로 몸을 말리면서, 조기가 법성포 해변의 깨끗한 냄새만 맡으면서 굴비가 되듯 당신은 고향집 울타리 뒤 소나무 맑은 솔잎의 냄새만 평생 마시면서 살아온 것이다.
아내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굴비를 굽고 있다. 이웃에게는 미안해도 굴비 굽는 냄새가 최대한 창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성장해서 집을 떠나서 집안에는 아내와 나뿐이다. 저녁 밥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앉았다. 밥상 위 접시 위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운 굴비가 단정하게 놓여있다. 한참 동안 물끄러미 굴비를 바라보다가 젓가락으로 뱃가죽을 들치고 뱃속을 들여다보았다. 내장이 고스란히 제자리에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둥지나 바닷속 해맑은 먹이만 삼키고 깨끗한 해풍만 들이 마신듯 내장도 깨끗하고 폐도 맑다. 껍질을 들어 올리니 햅쌀 밥알 같은 하얀 근육 살이 골을 이뤄 나타난다. 젓가락으로 살점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약간 짜고 담백한 맛이 혀끝에 감긴다. 씹으니 쫄깃하다. 오래전 아파트를 떠난 당신의 속살도, 소금물 같은 삶의 짠맛으로 쪼그라진 피부를 들치면 영광 참조기 굴비 살같이 깨끗하고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굴비의 머릿속을 헤친다. 젓가락에 잡히는 딱딱한 돌, 그래서 석수어라고 불리게 했다는 작은 돌, 조심스럽게 끄집어내어 들어올린다. 봉숭아 씨만 하고 사리같이 굳어진 흰 돌, 문득 당신의 머릿속을 상상한다. 팔십 평생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 새겨 녹여야 하고, 얼마나 많은 한을 씹고 씹어 소화시켜 핏속으로 밀어 넣었어야 했을까? 당신의 머릿속에도 분명 그런 이야기와 한을 뭉치고 뭉쳐서 굴비가 가지고 있는 돌과 똑같은 돌을 가지고 계시리라. 흰 살을 발라먹으니 뼈만 남는다. 남은 것은 뼈 밖에 없다. 물끄러미 뼈를 바라본다. 아직 코끝에는 굴비를 구운 냄새가 남아있다. 그렇게 밖으로 내보내려고 애를 태웠어도 집안을 쉽게 떠나지를 못하고 냄새는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어머니가 아파트인 우리 집을 마지막 떠나던 날 이방 저방을 둘러보던 모습을 기억한다. 어머니가 떠나가신 후 기거하던 방 안에 한동안 혼자 서 있다. 소금에 절인 듯한, 땀에 젖은 베적삼에서 나던 냄새가 계속 코끝으로 스며든다. 굴비를 구운 냄새처럼 훌쩍 떠나지 못하고 이 방 저 방을 헤매고 있는 듯도 했다. 눈물을 찔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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