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 칸 / 손훈영
날이 차다. 하늘은 곧 눈이라도 내릴 듯 가까이 내려와 있다. 난방 온도를 조금 더 올린다. 이런저런 동작들을 하는 내 손 끝에 더도 덜도 아닌 만족스러움이 묻어난다. 이 방에서 느끼는 평화가 너무 소중해 문득 코끝이 찡해진다.
며칠 전 병원 신생아실을 들여다보았다. 강보 밖으로 조막만한 얼굴만 내민 아기들은 마치 고치에 싸인 애벌레 같았다. 엄마의 자궁이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방을 막 벗어 난 작은 생명들이 애틋하고 눈물겨웠다. 신생아실에서 웃고 있는 아기는 아무도 없었다. 아기들은 모두 울었다. 눈을 질끈 감고 주름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붉은 입안을 환히 드러낸 채, 있는 힘껏 울었다.
그 울음은 나를 왜 이 세상에 떨어뜨려 놓았느냐는 신생아들의 강력한 항변처럼 들렸다. 방금 떨려져 나온 자궁 같은 방 하나 구하기 위해 이 세상을 헤매며 고군분투해야 하는 자신들의 일생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뭔지 모를 먹먹함이 가슴 가득 번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세상에 내던져지던 그 날을 생각하게 했다. 너무도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신경증적 피해 의식에 젖어있는 불안한 어머니 사이에서 시작되던 내 첫날을 떠올려 보게 했다. 나도 저 신생아처럼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실락원의 두려움을 본능적 울음으로 저항했었을까.
아들 낳을 때까지 자꾸 더 낳을 수도 있었지만, 딸 둘 고생 안 시키려고 아들 낳기를 포기했다는 말은 술 드신 아버지의 단골 레파토리였다. 대부분의 이웃들이 네 다섯 명의 자식이 일반적이던 그 당시로 봐서 달랑 딸 둘로 미련을 접은 아버지의 가족계획은 가히 개혁적이었다.
덕분에 학비 걱정 옷 걱정 같은 물질적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부모가 서로를 알뜰히 사랑하는 집이었다면 문제는 달랐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던 집에서 태어난 우리들에게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이 나쁜 부모가 불러일으키는 풍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에는 딸 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형제가 최소한 너 댓은 되는 친구들의 집은 부모들의 싸움도 똘똘 뭉쳐 말린다고 했다. 부모가 불러일으키는 전쟁 통 한가운데서 여기저기 터지는 폭탄 파편들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숨겨주며 안전한 심리적대피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많은 자식이 아니어서 오히려 집중된 부모의 관심이 심리적 올가미가 되어 어린 우리들의 마음을 죄어 왔다. 도무지 숨을 곳이 없었다. 오늘 터질까 내일 터질까 조마조마 시한폭탄 같은 부모 밑에서의 유년은 말 그대로 지뢰밭을 건너던 시절이었다. 화합하지 못하는 부모가 지배하는 암울한 집안 분위기에 우리 두 자매의 마음은 언제나 위축되어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창 너머로 귀가하는 아버지의 구둣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굳어진 얼굴로 숟가락을 놓고 일어서곤 했다.
아버지에게 대놓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부부싸움 끝에 이모 집으로 가버린 엄마가 돌아 올 날만 기다리며 밥상을 차렸다. 단 한 번의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누가 봐도 모범생의 모습을 한 채 춥고 어두운 마음 깊숙한 곳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를 키우고 있었다.
집은 더 이상 나의 의지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었다. '십분만 더' 학창시절 친구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아버지의 존재감으로 눌려 있을 무거운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털고 일어나려는 친구들을 '십분만 더' 붙잡곤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방에 대한 내 유난한 강박이 시작된 것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몸과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은 그곳이 어디든 내 집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어느 때든 환영 받을 수 있는 곳, 내 소유처럼 무람없이 드나들 수 있는 장소는 당연하게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신의 활기를 돌이킬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컸다.
혼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처음 찾아간 음악 감상실 필하모니는 나의 목마름을 채워 주기에 더할 나위없는 방이었다. (OPEN)이라고 적힌 종이팻말이 걸린 묵직한 나무문을 밀치고 들어섰을 때,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음악소리는 바로 신세계가 열리는 소리였다.
필하모니가 보유하고 있던 음향 기기들의 성능은 뛰어났다. 영국제 스피커가 듬직했었고 디제이실에는 거의 엘피판만을 듣던 그 당시로는 최신이라 할 수 있는 시디들이 즐비했었다. 잡음 없는 고가기기로 듣는 베토벤과 바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변치 않는 지고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맛보게 해주었다.
조갈 들린 몸이 물을 찾듯 틈만 나면 그곳으로 갔다. 이런저런 일로 한동안 가지 못하면 마음이 황폐해지고 울화가 치미는 금단현상 비슷한 것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내 시간은 그곳에 있는 시간과 그곳 아닌 곳에 있는 시간으로 나뉘었다. 친구들은 애써 나를 찾지 않아도 되었다. 나를 보려면 그곳으로 오면 되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나를 보호해 주던 피난처가 또 어디 있었을까. 조용한 귤빛등불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푹신한 소파가 온 몸을 포근히 감싸주던 곳, 나에게 그곳은 편안하고 따스한 '동굴'이었고 어느 신화학자가 말한 '마음의 성소'였다. 음악에 탐닉하며 뭔가를 끄적이노라면 불행한 나는 사라지고 예술의 아름다움에 한껏 고양된 나만 남았다.
세월따라 필하모니도 문을 닫고 다시 마음의 방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대는 시간들이 흘렀다. 그곳은 영화관이기도 하고 도서관이기도 하고 때론 자동차 안이기도 했다.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책을 읽던, 몇 년간이나 지속된 습관으로 이명이라는 달갑잖은 병을 훈장으로 붙이게 되었다. 그 이명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았었다는 육체적 증거로 남게 되었다.
고즈넉한 방안에 앉아 호젓이 자판을 두드린다. 고적한 공기를 톡톡 건드리며 말을 거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이 살아 움직인다. 창밖에는 겨울나무들이 한 폭의 수묵화로 서있다. 잎을 다 떨구어 낸 뒤 의연히 서 있는 겨울나무들을 바라본다. 빈가지 사이를 희끗한 눈발이 싸고돈다. 눈발이 진해질수록 방안 공기는 더 훈훈해진다.
오랜 세월 내 모든 수고는 이 방 하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태초의 자궁 같이 따스하고 물처럼 스며들 수 있는 방 하나를 구하기 위해 긴 시간 찬바람 부는 먼 곳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불안과 두려움이 이 방을 향해 다가오는 과정이었다면 고통의 생을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어리석음과 시행착오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오백 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 버지니아 울프는 되지 못했지만 이 방이 오래 내 소유이기를 바래본다. 삶이 주는 모욕과 상처를 씻기 위해 글을 쓰고 살아내느라 으깨어진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래지지 않는 충족감이 돌연 신과의 통로를 열어 주기도 하는 방. 이 방이 내 삶의 종착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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